SK 향한 노태우의 '무형적 기여' 있었다는 재판부…특혜일까 아닐까
[대법원에 간 SK성장사]④
2심 재판부가 특정한 세 가지 법리적 쟁점
SK의 청와대 시연, 무선통신사업 성장 발판이었나
[이코노미스트 김정훈 이지완 기자] “SK그룹이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노태우 등 피고(노소영) 측은 최종현이나 SK그룹에 대해 일종의 보호막 내지 방패막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노태우 등 노소영 측이 SK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 형성 등에 관해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무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2심 판결문 中>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상고심이 이달 열리는 가운데 향후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낼지 관심이 쏠린다. 특히 2심 재판부는 노소영 관장의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그룹 성장에 유·무형적 기여를 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유형적 기여는 재판부가 법리적 판단을 내리기 쉽지만 무형적 기여는 실체가 없어 객관적 판단이 어렵다. 또한 근거를 찾기 쉽지 않아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2심 재판부가 판단한 무형적 지원에 대한 법리적 쟁점을 짚어봤다. 재판부가 특정한 무형적 지원은 크게 ▲최태원 회장의 청와대 이동통신 기술 시연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대통령 해외 순방 시 SK그룹 경영진 동행 등이다.
무선통신사업, 사실상 SK가 선두 주자?
첫 번째 쟁점은 최태원 회장의 청와대 이동통신 기술 시연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특혜 여부다.
2심 판결문에 따르면 노소영 측은 “1991년경 다른 업체와 달리 청와대에서 직접 노소영과 함께 무선이동통신 통화를 시연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최태원 측은 “시연은 제2이동통신 사업권 이야기가 나오기 훨씬 이전인 1990년 초에 한 번 이뤄졌으며, 이동통신 사업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대통령 사위가 아닌 일반적인 기업인의 경우 청와대에서 시연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갖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시연 이후인 1991년 7월 10일 노태우 정부는 정부 제안으로 전기통신사업법을 발의하고 여야 합의를 거쳐 개정했다. 해당 법은 4대 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을 제한했다. 최태원 측과 노소영 측 집안의 인척 관계가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쟁점을 법리적으로 판단하려면 당시 청와대가 무선통신 시연에 SK그룹을 선택할 만한 이유가 있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국내 이동통신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이미 상용화된 상태였지만 SK를 제외하고 이 기술을 특화한 기업은 사실상 없었다. 1980년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을 신성장산업으로 전면 배치하기 위해 ‘통신산업 경영체제 개선방안’ 정책을 추진했다. 1984년에는 한국이동통신서비스(현 SK텔레콤)를 출범시켜 차량 전화와 무선호출 등 무선통신 서비스를 전담하도록 했다. 당시 국내에서 무선통신 기술을 선도하던 기업이 SK였던 셈이다.
이와 관련해 SK그룹 측은 "기술시연은 제2이동통신사업권과 시기도 내용도 무관하며, 대통령의 식견을 넓혀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SK그룹을 위한 법 개정이라는 전기통신사업법도 여당이 아닌 야당의 입김이 더욱 셌던 것으로 알려졌다. 송언종 당시 체신부 장관은 1992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오히려 야당이 주장해 처리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영삼(YS) 정부下 ‘역사 바로 세우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대법원은 “선경그룹을 다른 경쟁기업보다 우대한 흔적은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SK그룹 측은 "(전기통신사업법은) ‘여야 만장일치’로 개정됐으며, 통신장비 제조사의 통신서비스 사업 제한은 당시에도 글로벌 스탠다드였다"고 했다.
해외 순방 특혜? "기업인 동행 일반적"
SK그룹이 노태우 정권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대통령 해외 순방 시 SK그룹 경영진의 동행 사실 때문이다. 2심 판결문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은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노태우의 미국·일본·캐나다·멕시코·중국 등 해외 순방 일정을 함께 했다.
2심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의 대통령 해외 순방 동행 사실과 더불어 SK그룹이 1991년 한국 기업 최초로 베이징 지사 설립 허가를 받은 점 등을 특혜로 봤다.
다만 대통령 해외 순방 시 기업인이 동행하는 것은 일반적이고, SK그룹만의 특혜라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례로 1991년 7월 대통령의 캐나다 순방 시 현대·대한항공 사장 등도 함께 했다.
1991년 9월 UN 방문 당시에도 현대·삼성·LG 등 5대 그룹 회장이 동행했다. 1991년 9월 대통령의 멕시코 방문 당시에는 현대·삼성·삼양사·한진·극동정유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SK그룹 측은 당시 해외 순방 동행에 대해 “다른 기업인들도 동행했으며, 민관협력을 통한 국가경제 시너지 창출을 위한 ‘One Team’ 활동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물론 과거에도 대통령 해외 순방 시 경제인 동행은 매우 일반적인 일이었다는 얘기다. 또 판결문은 SK만 혜택을 받은 것처럼 표현했지만, 실제는 다수 기업인들이 동행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는 있다.
이와 관련해 재계 관계자는 “다른 기업인들도 동행했지만 당시에는 누가 봐도 사위(최태원)를 데리고 갔으니 특혜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당시 동행한 기업들이 이후 해외에서 추진한 사업들도 모두 특혜고 무형적 기여로 볼 수도 있다. 법리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운 문제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SK그룹은 노태우 정권에서 ‘얼마나’ 성장했을까? 이 지표도 재판부가 주장하는 무형적 기여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SK그룹의 1987년 매출은 5조3000억원이다. 1992년에는 9조4000억원으로 1.8배 늘었다. 매출 성장률은 77%다.
다만 같은 기간 당시 지표상 10대 그룹의 매출은 평균 2.5배 늘었다. 이 기간 대우·기아·롯데·현대·LG 등 주요 그룹은 각각 333%, 292%, 169%, 151%, 105%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대통령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SK그룹의 매출 성장률은 10대 그룹 중 9위에 불과했다.
본지는 노소영 관장 측에도 이번 2심 재판부가 강조한 무형적 기여 핵심 쟁점들에 대해 질문을 던졌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골절’도 예방이 됩니다”…가족력 있는 여성은 골다공증 관리해야
2美 메가밀리언 복권 잭폿 1조2500억원 돌파…연말 당첨 기대감 ↑
3선관위, ‘이재명은 안 됩니다’ 현수막 금지…‘내란 공범’ 표현은 허용
4美 셧다운 위기 넘겼다…‘트럼프 요구’ 부채한도 제외 예산안 통과
5 美 상원 임시예산안 통과, 바이든 서명 앞둬…셧다운 모면
6“임원도 이코노미 타라”…LG에너지솔루션, 위기경영 체제로 전환
7“닛케이 밸류업 이유 있었네”…日기업 올해 ‘역대 최대’ 자사주 매입
8“젊은 대원에 1110만원 지원”…日 자위대 인력난 ‘허우적’
9권한대행 체제 속 韓美 외교장관 첫 통화…굳건한 동맹 재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