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ESG에 ‘진심’이 돼야 할 때 [대신경제연구소 ESG 인사이트]
‘기업실사’ 원청사 좋자고 하는 것 아냐
공급업체 스스로 ESG 리스크 점검·예방해야
[오현주 대신경제연구소 공급망ESG센터장·행정학 박사] “이거 원청사 좋자고 하는 거지 우리한테 무슨 이득이 있는 거죠?”
수천 개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활동을 평가하고 지난 2년 동안 약 500회 가까이 중견 및 중소기업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면서 종종 들었던 말이다.
글로벌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인권경영에 대한 요구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알고 있지만 중소 공급업체에 불과한 본인들과는 크게 상관이 없으며, 다만 원청사가 평가를 받으라고 하니 응할 뿐이라는 것이다.
ESG에 관한 많은 기사나 칼럼들이 대기업 즉 원청사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공급업체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SG 경영은 ‘기업이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문제에 책임감을 갖고, 직원·주주·소비자·협력사·지역사회 등 내·외부 이해관계자에 좋은 영향을 미치며, 법과 윤리를 준수하는 경영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기업들은 ESG를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경영패러다임으로 활용하고 있다. ESG 경영 현황 진단 및 평가는 기업 활동의 부정적인 영향을 확인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 ‘실사(Due Diligence)’ 개념이 등장한다.
기업 실사란 ‘기업의 운영이나 사업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들을 파악해 방지 및 완화하는 과정’이다. ‘공급망 실사’는 자사·자회사·협력사를 포함하는 공급망(Supply Chain)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방지 및 완화하는 ‘리스크 관리’ 과정으로서 평가와 분석, 개선조치 및 모니터링 등의 활동이 포함된다. 이때 부정적 영향은 실제적 영향뿐만 아니라 잠재적 영향까지 포함한다.
2024년 7월 25일 EU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이 발효돼, EU에서 영업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은 자사와 협력사의 활동이 인권과 환경 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조사하고 시정해야 하며, 그 결과를 2028년부터 공개해야 한다. 협력업체들은 이를 위한 정보 제공 요청에 응하고 부정적 영향의 예방 및 완화 조치에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여기에 EU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CBAM)에 대한 설명을 추가하면 ESG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CBAM은 탄소규제가 약한 EU 역외지역으로 생산시설이 이전할 경우 EU의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탄소비용이 더해져 생산 단가가 높은 유럽 제품이 수입 제품과 경쟁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인식에서 도입한 제도다. 수입품목의 탄소배출량에 일정한 요금을 부과하여 ‘불공정’을 시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2026년부터 본격 적용될 예정이며(현재는 전환기간), 시멘트·철강·알루미늄·비료·전기·수소 제품을 시작으로 향후 유기화학제품과 플라스틱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여러분이 만드는 부품에서부터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수출해봤자 안 팔립니다. 그럼 이게 원청사만의 문제일까요?”
이어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사례까지 안내하면 ESG를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도입 이후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사장님의 구속 리스크’에 대해 공포감을 갖고 있었지만 예상보다는 처벌이 약하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사 현장에서 ‘작년 12월에 대표이사가 실제로 감옥에 가게 된 최초 사례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리면 임직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이후 “개인안전보호구 꼭 지급하고 실제 착용하는지까지 감독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보통 다음과 같은 언급이 이어진다.
“현장 사고를 보면 솔직히 근로자 잘못도 많아요. 마스크 해라, 안전띠 해라, 안전모 써라 해도 귀찮다고, 덥다고 안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그렇다. 대부분의 안전사고는 사측의 관리 소홀과 근로자 개인의 부주의가 결합돼 발생한다. 하지만 최근 산업재해 판결 동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전대와 안전모 미착용 상태에서 아파트 외벽 도색작업을 하다 추락해 사망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사망한 근로자의 부주의도 일부 인정했지만 법령상 ‘보호구 지급 의무’는 근로자가 실제 착용하는 것까지 관리·감독할 것을 요한다면서 안전보건 총괄책임자(상무)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필자가 “지급대장부터 관리하셔야 한다. 국소배기장치 잘 작동하는지 언제 마지막으로 확인하셨냐. 스프레이 작업자들이 방독마스크 안 쓰고 있더라, 하청근로자의 안전도 관리해야 한다” 등을 안내하면, 이제서야 실사를 시작할 때의 “원청사 좋으려고 하는 거 아닌가요?”라는 말은 “지금 실사받기를 잘했습니다”라는 말로 바뀐다.
원청사의 제품이 좋은 평가를 받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공급망 내 수많은 기업들의 부품 및 중간재가 좋은 품질을 유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근로자들의 인권과 안전이 전제돼야 한다. 글로벌 기업 N사도 1990년대 말 협력업체에서의 독성물질 유출로 많은 근로자들이 건강상 위협에 노출되고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으로 주가가 반토막나는 사태를 겪은 바 있다. 그 여파는 다시 공급업체들에 미칠 수밖에 없다.
올해 6월 현대차그룹이 1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ESG 평가 결과를 입찰 조건으로 담은 표준계약서를 마련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공급업체 스스로 인권과 안전, 환경 등에서의 리스크를 점검하여 예방조치를 취하고, 원청사는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제, ‘진심으로’ ESG를 해보자.
오현주 대신경제연구소 공급망ESG센터장·행정학 박사 | 필자는 공급망 내 ESG 평가와 현장실사, 교육 및 컨설팅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원청사의 체계적인 공급망 관리와 협력사의 ESG 경영에 대한 인식 제고 및 실행 지원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공급망 벤치마크 분석, 온실가스 관리, CDP SC 및 EcoVadis 대응 등 공급망 관리 영역에서 맞춤형 심화 컨설팅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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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개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활동을 평가하고 지난 2년 동안 약 500회 가까이 중견 및 중소기업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면서 종종 들었던 말이다.
글로벌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인권경영에 대한 요구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알고 있지만 중소 공급업체에 불과한 본인들과는 크게 상관이 없으며, 다만 원청사가 평가를 받으라고 하니 응할 뿐이라는 것이다.
ESG에 관한 많은 기사나 칼럼들이 대기업 즉 원청사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공급업체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SG 경영은 ‘기업이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문제에 책임감을 갖고, 직원·주주·소비자·협력사·지역사회 등 내·외부 이해관계자에 좋은 영향을 미치며, 법과 윤리를 준수하는 경영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기업들은 ESG를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경영패러다임으로 활용하고 있다. ESG 경영 현황 진단 및 평가는 기업 활동의 부정적인 영향을 확인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 ‘실사(Due Diligence)’ 개념이 등장한다.
기업 실사란 ‘기업의 운영이나 사업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들을 파악해 방지 및 완화하는 과정’이다. ‘공급망 실사’는 자사·자회사·협력사를 포함하는 공급망(Supply Chain)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방지 및 완화하는 ‘리스크 관리’ 과정으로서 평가와 분석, 개선조치 및 모니터링 등의 활동이 포함된다. 이때 부정적 영향은 실제적 영향뿐만 아니라 잠재적 영향까지 포함한다.
2024년 7월 25일 EU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이 발효돼, EU에서 영업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은 자사와 협력사의 활동이 인권과 환경 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조사하고 시정해야 하며, 그 결과를 2028년부터 공개해야 한다. 협력업체들은 이를 위한 정보 제공 요청에 응하고 부정적 영향의 예방 및 완화 조치에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여기에 EU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CBAM)에 대한 설명을 추가하면 ESG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CBAM은 탄소규제가 약한 EU 역외지역으로 생산시설이 이전할 경우 EU의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탄소비용이 더해져 생산 단가가 높은 유럽 제품이 수입 제품과 경쟁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인식에서 도입한 제도다. 수입품목의 탄소배출량에 일정한 요금을 부과하여 ‘불공정’을 시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2026년부터 본격 적용될 예정이며(현재는 전환기간), 시멘트·철강·알루미늄·비료·전기·수소 제품을 시작으로 향후 유기화학제품과 플라스틱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여러분이 만드는 부품에서부터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수출해봤자 안 팔립니다. 그럼 이게 원청사만의 문제일까요?”
이어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사례까지 안내하면 ESG를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도입 이후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사장님의 구속 리스크’에 대해 공포감을 갖고 있었지만 예상보다는 처벌이 약하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사 현장에서 ‘작년 12월에 대표이사가 실제로 감옥에 가게 된 최초 사례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리면 임직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이후 “개인안전보호구 꼭 지급하고 실제 착용하는지까지 감독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보통 다음과 같은 언급이 이어진다.
“현장 사고를 보면 솔직히 근로자 잘못도 많아요. 마스크 해라, 안전띠 해라, 안전모 써라 해도 귀찮다고, 덥다고 안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그렇다. 대부분의 안전사고는 사측의 관리 소홀과 근로자 개인의 부주의가 결합돼 발생한다. 하지만 최근 산업재해 판결 동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전대와 안전모 미착용 상태에서 아파트 외벽 도색작업을 하다 추락해 사망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사망한 근로자의 부주의도 일부 인정했지만 법령상 ‘보호구 지급 의무’는 근로자가 실제 착용하는 것까지 관리·감독할 것을 요한다면서 안전보건 총괄책임자(상무)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필자가 “지급대장부터 관리하셔야 한다. 국소배기장치 잘 작동하는지 언제 마지막으로 확인하셨냐. 스프레이 작업자들이 방독마스크 안 쓰고 있더라, 하청근로자의 안전도 관리해야 한다” 등을 안내하면, 이제서야 실사를 시작할 때의 “원청사 좋으려고 하는 거 아닌가요?”라는 말은 “지금 실사받기를 잘했습니다”라는 말로 바뀐다.
원청사의 제품이 좋은 평가를 받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공급망 내 수많은 기업들의 부품 및 중간재가 좋은 품질을 유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근로자들의 인권과 안전이 전제돼야 한다. 글로벌 기업 N사도 1990년대 말 협력업체에서의 독성물질 유출로 많은 근로자들이 건강상 위협에 노출되고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으로 주가가 반토막나는 사태를 겪은 바 있다. 그 여파는 다시 공급업체들에 미칠 수밖에 없다.
올해 6월 현대차그룹이 1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ESG 평가 결과를 입찰 조건으로 담은 표준계약서를 마련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공급업체 스스로 인권과 안전, 환경 등에서의 리스크를 점검하여 예방조치를 취하고, 원청사는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제, ‘진심으로’ ESG를 해보자.
오현주 대신경제연구소 공급망ESG센터장·행정학 박사 | 필자는 공급망 내 ESG 평가와 현장실사, 교육 및 컨설팅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원청사의 체계적인 공급망 관리와 협력사의 ESG 경영에 대한 인식 제고 및 실행 지원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공급망 벤치마크 분석, 온실가스 관리, CDP SC 및 EcoVadis 대응 등 공급망 관리 영역에서 맞춤형 심화 컨설팅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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