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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보호 vs 경영 위축’, 상법 개정 논란… 韓 증시 밸류업 가능할까

[상법 개정안 논란]①
최대주주 견제·소액주주 권리 확대 기대
경영권 침해 가능성·기업 경쟁력 훼손 우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한 시민이 전광판 앞을 지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올해 자본시장에서 논란이 뜨거웠던 ‘상법 개정’을 두고 찬성과 반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소액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뒤 연내 처리하겠다는 입장인 가운데, 재계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너무 커 ‘자본시장법’ 개정이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맞서고 있다. 정부도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재계 측에 힘을 싣고 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의 핵심으로 꼽히는 내용은 ‘이사 충실의무 확대’다. 이는 현재 상법이 규정하는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범위를 ‘회사’에서 ‘회사를 포함한 주주’까지 넓히는 것을 말한다. 상법 개정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그동안 일부 기업이 최대 주주나 오너의 이익을 위해 소액주주의 피해를 외면하는 물적 분할 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모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재계에서는 모든 주주의 이익을 보장하는 결정은 사실상 불가능 하다면 주주들이 이사들에게 손해배상 청구나 배임죄 형사고발 같은 소송을 남발할 우려가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도 중요한 내용이다.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사내외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대주주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인사에게 감사위원의 독립적인 지위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하는 ‘3% 룰’이다. 3%룰은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특정 주주의 의결권을 최대 3%까지만 보장하는 것이다. A 기업 지분을 50% 가진 최대 주주와 3%만 보유한 주주 모두 감사위원 선출 시 똑같이 3%만 의결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감사위원은 이사의 직무집행 감사, 재산 상태 조사 등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을 다룰 수 있다. 이 때문에 감사위원의 독립성이 강화할수록 대주주의 영향력을 줄어들게 된다. 이를 통해 소액주주의 권리를 더 보호하겠다는 게 상법 개정안 찬성 측 논리다. 반면 외부 세력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권이 흔들리거나, 기업의 중요한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갈 우려가 있다는 게 반대 측 논리다.

집중투표제도 빼놓을 수 없다. 집중투표제란 여러 명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에게 주어진 의결권을 모두 합쳐 한 사람에게 몰아서 투표할 수 있는 제도다. 현재 상법에 따르면 ‘1주 1의결권’에 따라 1주당 의결권 1개만 행사할 수 있다. 만약 B 기업 주식 10주를 가진 주주가 이사 5명 선임 안건에 투표한다면 이사 후보 한 사람당 10표씩만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집중투표제가 시행되면 총 50주의 의결권을 받게 되고. 특정 후보에게 50표를 모두 줄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일반 주주들이 힘을 모으면 지배주주와 표 대결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대주주와 경영진을 견제할 힘이 생긴다. 다만 소액주주의 이익만 대변하는 이사가 나올 경우 기업 경영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논란의 상황에서 정부와 재계가 제안한 카드가 ‘자본시장법 개정’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명문화하겠다고 지난 12월 2일 밝혔다. 소액주주 보호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상장사에 한정해 명확한 사안에 대해서만 규제하는 ‘핀셋 규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가 공개한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을 보면 상장법인이 ▲합병 ▲중요한 영업·자산 양수도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분할·분할합병을 할 때 이사회는 합병 등 목적, 기대 효과, 가액의 적정성 등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공시하는 등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된다.

김 위원장은 ‘일반주주 이익 보호 강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을 설명하며 “적용 대상 법인을 상장법인으로 한정하고 상법 개정으로 인해 모든 다수 회사와 상장법인이 아닌 비상장 중소·중견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법 개정의 가장 큰 차이는 해당 법의 규제를 받는 기업의 범위다. 상법이 규제하는 대상은 국내 120만에 달하는 대부분의 기업이지만, 자본시장법은 상장사 2400여곳으로 국한된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앞서 두산 합병 논란에서 불거진 계열사 간 합병 시 가액 산정기준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을 담기로 했다. 또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할 때 대주주를 제외한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공모 신주중 20% 범위에서 우선 배정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할 예정이다.

다만 민주당은 금융위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반대했다. 민주당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는 2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임시방편적 대책으로 소액주주의 권리 보호와 자본시장의 공정성 회복을 위해 상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했다.

상법 개정, 국내 기업 밸류업 이끌까?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상법 개정 찬성 측은 상법 개정이 이뤄지면 국내 증시도 살아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11월 28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대한민국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 현장 간담회’에 참석한 이재명 대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경제 정책 부재 ▲불공정한 시장 ▲지배주주의 경영권 남용 ▲안보 위기를 꼽았다. 이 대표는 “정부가 명확하게 의지를 드러내고 제도적 개선을 이뤄내면 코스피 지수가 4000(포인트)까지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거래소가) 자본시장에서 일어나는 불공정 행위를 적발하는 데 적극 나서달라”며 “물적분할과 모자회사 동시상장에 더 엄격한 절차와 기준을 적용해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재계는 이 법이 통과할 경우 기업 경쟁력이 훼손되고 증시 밸류 다운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지난 11월 21일 ▲한국경제인협회 ▲삼성 ▲SK ▲현대차 ▲LG 등을 비롯한 16개 그룹 사장단은 상법 개정 추진을 저지하기 위해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이 주요 기업들과 공동 성명을 낸 것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시절인 지난 2015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사장단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많은 기업이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 자본의 공격에 시달려 이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지고, 신성장 동력 발굴에도 상당한 애로를 겪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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