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짓누르는 좀비기업에 칼 빼든 당국 “구조조정 본격화”
[좀비기업퇴출]①
요건은 강화하고 절차는 간소화하는 데 초점
단계적 제도 시행…“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 기대”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금융당국이 이른바 ‘좀비기업’ 퇴출을 위한 강도 높은 제도 개선에 나선다. 상장폐지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상장기업들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감사의견 미달 기업에 대한 퇴출 요건도 강화할 방침이다. 자본시장 ‘기업가치 제고’(밸류업)를 위한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퇴출 대상으로 삼는 좀비기업이라고 불리는 한계기업이란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을 하회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이 비율이 1 미만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즉, 정상적인 영업활동으로는 채무를 상환할 수 없어 사실상 외부 차입에 의존하는 기업들이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따르면 한국의 한계기업 비중은 지난해 3분기(7~9월) 기준 19.5%(2260곳 중 440곳)로 집계됐다. 한국의 한계기업 비중은 2016년 7.2%에서 2024년 3분기 19.5%로 12.3%포인트(p) 증가했다. 이 기간 한국의 한계기업 수는 163곳에서 440곳으로 8년 새 2.7배로 늘었다. 이들 기업 상당수는 부실한 재무구조와 낮은 수익성으로 인해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기존 제도하에서는 적자 기업도 상장폐지를 면하는 경우가 많아 구조조정이 지연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좀비기업, 500여 곳 달해…상장폐지 요건 강화

이에 금융당국은 자본시장의 질적 성장을 목표로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선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금융투자협회·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 1월 21일 오전 여의도 거래소에서 열린 ‘지속적인 자본시장 밸류업을 위한 IPO 및 상장폐지 제도개선 공동세미나’에서 이 같은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날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시장 신뢰를 저해하는 기업들이 원활히 퇴출될 수 있도록 요건을 강화하고 절차를 효율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우선 금융당국은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유지를 위한 시가총액 요건을 50억원에서 최대 500억원으로, 매출액은 50억원에서 최대 300억원으로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한다. 코스닥에서는 시가총액 기준을 4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매출액은 3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상향할 방침이다.
다만 잠재력은 있지만 매출액이 적은 기업을 고려해 최소 시가총액 요건(코스피 1000억원, 코스닥 600억원)을 충족하는 경우 매출액 요건을 면제하는 완충장치도 2027년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아울러 감사의견 미달(적정이 아니라 한정·부적정·의견거절 등)과 관련한 조치도 대폭 강화된다. 지금까지는 감사의견 미달 시에도 다음 사업연도 감사의견이 나올 때까지 개선기간을 부여해 상장폐지 심사가 장기화됐다. 이 때문에 즉시 상장폐지 요건인 ‘자본잠식’을 숨기기 위해 고의로 감사의견 미달을 선택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앞으로는 감사의견 미달 사유 발생 후 다음 사업연도의 감사의견도 미달할 경우 즉시 상장폐지하는 식으로 제도를 개선한다. 다만 회생·워크아웃 기업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추가 개선기간 1년이 허용된다.
이와 함께 상장폐지 심의 절차를 간소화하고 소요기간도 대폭 줄인다. 현행 제도상 코스피는 최대 ‘2심 + 개선기간 4년’, 코스닥은 최대 ‘3심 + 개선기간 2년’으로 운영돼 상장폐지 심사가 비효율적으로 장기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당국은 코스피는 최대 4년에서 2년으로, 코스닥은 2년에서 1년 6개월로 기간을 단축할 방침이다. 특히 코스닥은 심의 단계를 3심제에서 2심제로 축소한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증시의 한계기업 증가로 인한 우려 요인으로 한국 증시 투자 매력도 저하, 경제 내 부정적 전이효과 등을 꼽았다. 그는 “현행 재무 관련 퇴출 요건은 지나치게 낮은 편”이라며 “기업의 회생 가능성도 중요하지만 증시 경쟁력과 시장 신뢰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계기업 문제 개선을 위해 다각화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실기업 정리가 본격화하면 우량 기업에 대한 투자금 유입이 늘어나고, 증시의 전반적인 신뢰도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코리아디스카운트 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와 연결되면서 국내 증시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부실기업이 정리되지 않은 채 시장에 남아 투자자 피해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조치는 증권시장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우량 기업 중심의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준이 너무 급격히 강화될 경우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중소형 상장사의 경우, 시가총액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비자발적 상장폐지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당국의 모의실험 결과,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면 코스피 62개사(8%), 코스닥 137개사(7%)가 상장 요건에 미달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기준을 적용할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조치를 통해 자본시장의 건전성 강화와 투자자 보호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투자자 보호와 기업 건전성 강화를 위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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