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토부 권고에도 ‘피로위험관리’ 도입 항공사 ‘0곳’
[불안한 이륙 LCC] ③
국내 FSC·LCC 모두 ‘FRMS’ 도입 안해
“안전 비용 때문에 투자 기피하는 문화 개선돼야”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비행기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글로벌 항공사들이 도입한 ‘피로위험관리시스템’(FRMS)을 한국 항공사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본지 취재 결과 밝혀졌다. 한국의 국토교통부도 이 시스템 도입을 권고하고 있지만 실제 도입을 한 국내 항공사는 전무하다.
1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대형항공사(FSC)와 국내 9개 저비용항공사(LCC) 가운데 승무원들의 피로를 관리하는 FRMS를 도입해 활용하는 항공사는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FRMS는 조종사 및 승무원의 피로도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항공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기존 단순한 근무시간 제한 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피로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FRMS는 크게 ▲피로 위험 식별 ▲피로 위험 평가 ▲위험 통제 및 완화 ▲지속적인 성과 평가 등 4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주로 조종사 및 승무원의 수면 패턴·근무 일정·피로 수준을 데이터로 수집해 이를 바탕으로 피로 위험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데 활용된다.
FRMS는 조종사의 피로로 인한 사고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피로도가 높은 조종사의 경우 적절한 비행 일정 조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항공 안전에 있어 피로도 관리는 필수다.
한국항공우주의학회지 연구에 따르면 항공사고의 발생 원인의 약 70%가 인적 오류에 기인하고, 이 중 피로가 약 15∼20%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피로도 관리가 항공 안전에 있어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인 셈이다.
해외 항공사의 경우 FRMS를 도입해 안전 관리에 힘쓰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에어 뉴질랜드 ▲이지젯 ▲핀에어 등이다. 이들 항공사는 FRMS를 활용해 조종사 및 승무원들의 항공 스케줄을 탄력적으로 조율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개정된 항공안전법 제56조에 따라 항공운송사업자 및 항공기사용사업자 등이 승무원과 운항관리사의 피로를 관리하도록 의무화했다. 해당 법안은 2020년 8월 개정됐는데, 개정에 따른 입법 행정 예고도 이뤄졌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항공사는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한 승무 시간 및 근무시간 제한 기준을 따르는 방식과 FRMS를 마련해 운영하는 방식 중 하나 이상의 방법을 선택해 승무원 피로도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 같은 개정은 장시간 비행 및 연속 근무로 인한 승무원 피로가 항공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보다 체계적인 피로 관리 체계를 도입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문제는 최근 연달아 발생한 LCC 관련 사고에도 불구하고 FRMS를 도입한 LCC가 단 한 곳도 없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가 이를 도입하기 위한 제반 근거를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아울러 FRMS를 도입할 경우 최대 승무 시간을 초과하는 비행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내걸었음에도 국내 항공사 모두가 외면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FRMS를 도입한 국내 항공사는 현재 없다”며 “도입 및 활용을 위한 법령은 이미 마련됐는데, 이를 시행하는 항공사도 없고 여러 요인으로 인해 쉽사리 도입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안전에 투자하지 않는 국내 항공업계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연이은 항공 사고에도 불구하고 안전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FRMS 도입에 대해 법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지만, 연이은 사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도입하지 않는 것은 항공업계의 비용 절감을 위한 것”이라며 “안전에 대해서는 더 큰 비용을 투자하고 아끼지 않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항공사의 경우 의무 사항은 잘 지키지만, 권고는 외면하는 양상이 있다”며 “권고 사항을 마치 비용 문제로 해석하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안전과 직결된 권고 사항은 비용이 일정 부분 들더라도 지키는 게 좋은 흐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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