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악순환 고리’... ‘LCC 치킨 게임’의 부작용
[불안한 이륙 LCC]②
항공 정비 인프라 풍부한 美 LCC
조종사·승무원 피로도 관리도 밀려

‘제1원칙’을 대하는 韓·美 LCC의 차이
먼저 정비 인력 부족이다. 항공기 정비는 고도의 기술 작업으로 안전과 직결돼 있다. 항공기 정비에는 ▲라인 정비(출발 전 검사) ▲베이스 정비(주기별 엔진·랜딩기어 점검) ▲전기·전자 시스템 점검(전자 장비 및 항법 시스템 유지) ▲기체 점검 및 구조 정비(기체 외부 점검 및 균열 확인) 등의 일련의 과정이 포함된다.
국토교통부가 권고한 항공기 1대당 정비사는 최소 12명이다. 이는 국제 항공(ICAO)·미국 연방항공청(FAA)·유럽항공안전청(EASA)의 권장 기준과 유사한 수준이다. 문제는 국내 LCC들의 자체 정비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국토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 등에 따르면 이 기준을 지난 8년간 충족한 LCC는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단 두 곳뿐이다. 문제는 이들조차 매년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제주항공은 지난 2019년 12.04명을 기록한 뒤 계속해서 요건에 미달했다. 이스타항공도 2021년과 2023년 두 차례만 기준을 충족했다.
LCC 업계 전반으로 보면 더욱 심각하다. 주요 LCC 5개사(제주항공·진에어·에어부산·이스타항공·티웨이항공)의 항공기 1대당 정비사 수를 평균으로 보면 ▲2016년 6.54명 ▲2017년 9.30명 ▲2023년 10.94명 등으로 집계됐다. LCC 업계 전반에 걸쳐 국토부의 최소 권고기준에 못 미치고 있는 셈이다.
정비사 수가 부족하면, 정비 품질 저하는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정비 품질이 저하될 경우 항공 안전사고 가능성은 높아진다. 악순환이다. 이를 증명하듯 정비 오류로 인한 사례도 존재한다. 2018년 라이온에어 610편 추락 사고와 2019년 보잉 737 MAX 사고가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정비 미흡 및 오류가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바 있다.
항공기 정비의 외주 의존도 문제다. LCC의 경우 2023년 기준 국내 정비 비중이 28.9%에 불과하고, 나머지 71.1%는 해외 정비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비 문제로 인한 비행 지연 건수는 2019년 1755건에서 2023년 3584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해외는 다르다. 미국을 대표하는 LCC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항공기 정비를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기술 운영 부서’를 통해 항공기 정비를 직접 관리하고 있다. 해당 부서에는 ▲항공기 정비 기술자 ▲외관 기술자 ▲유지 보수 컨트롤러 ▲엔지니어링 ▲품질 관리 검사관 ▲자재 전문가 ▲항공기 데이터 기록 등 다양한 역할이 포함돼 있다.
정비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정비 역량 강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볼티모어·워싱턴 국제공항 ▲덴버 국제공항 ▲피닉스 스카이 하버 국제공항 등에 정비 시설을 구축하거나 확장했다. 이를 통해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총 8개의 항공기 정비 격납고를 운영 중이다. 같은 LCC지만, 안전에 대한 투자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정비 인프라는 뒤처지지만, 운항 시간은 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제주항공의 월평균 운항 시간은 418시간, 티웨이항공은 386시간이다. 이는 대한항공(355시간)과 아시아나항공(335시간)보다 최대 20% 많다. 높은 운항률은 조종사 및 승무원의 피로도 증가로 이어진다. 피로도는 안전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관리가 중요하다.
국내 항공사들은 주로 항공안전법에 명시된 승무원 근무 시간 제한 규정을 준수해 조종사의 피로를 관리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규제는 주로 근무 시간의 제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따라 조종사의 개별적인 피로 상태나 다양한 운영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피로도 관리 측면에서도 해외 LCC에 밀린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 LCC 이지젯이다. 이지젯은 조종사와 승무원 피로 관리에 최선을 다한다. 실제 조종사들의 피로 누적으로 인해 비행이 취소된 사례도 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정인 셈인데, 이지젯은 ICAO가 권고하는 피로위험관리시스템(FRMS)를 도입해 피로도를 체계적으로 관리 중이다. FRMS는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승무원의 피로 위험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더 있다. 기령(나이)다. 국내 주요 LCC의 평균 항공기 기령은 2023년 기준 11.2년이다. 대한항공(9.3년)이나 아시아나항공(8.7년)보다 오래된 기체를 운항하고 있다. 노후 항공기는 유지 보수 비용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정비 기간이 길어져 운항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2023년 LCC 항공기의 정비 지연률은 4.3%로, 대형 항공사(1.7%)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노후 기체 운영과 정비 인력 부족이 합쳐져 발생한 문제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LCC간 가격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특히 제주항공 참사 이후 국내 LCC들은 국내선 주요 노선에서 초저가 항공권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무리한 가격 경쟁은 장기적으로 항공사의 재정 부담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필수적으로 투자해야 할 부문에 자금이 흐르지 않게 된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LCC 업계 간 가격 경쟁 치킨 게임으로 인해, 정작 비용이 투입돼야 할 안전 관련 투자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가격 경쟁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안전에 대해 등한시하게 돼고, 이는 또 다른 대형 사고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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