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싸게, 더 싸게”...중국風이 빚은 ‘철의 만리장성’

[한반도 덮친 중국風]③
철강과 자동차, 가격 인하 현상 뚜렷
과잉 생산 철강...자동차 가격에도 영향
불어오는 중국風에 속수무책 韓제조업

중국 동부 저장성 항저우의 한 공장에서 수출용 강철 기계를 제조하는 공장의 작업자가 장비를 연마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중국이 저가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과잉 생산된 제품을 대량 수출하며, 낮은 가격으로 한국기업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풍(風) 현상은 중국의 철강, 자동차 등 전통적인 주력 산업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중국의 이들 산업군은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높은 가격 우위를 점하고 있다.

중국발 저가 철강에 고민 깊어진 韓 철강업계

중국은 세계 철강 산업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철강협회(WSA)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철강 생산량은 10억 510만 톤(t)으로 집계됐다.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의 53.4%를 생산할 만큼 압도적인 물량을 자랑한다.

철강은 고정비 비중이 높은 산업 중 하나다. 특히 철강 산업은 고정비인 초기 설비 투자와 유지 비용이 높다. 다만, 생산량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단위당 고정비는 줄어든다.

중국의 규모의 경제는 여기서 힘을 발휘한다. 통상 제철소 가동 시 설비 유지와 에너지 비용, 노동비 등이 투입된다. 여기서 철강 생산량이 많아질수록 t당 부담 비용은 낮아지게 된다. 대규모 생산을 하는 중국 철강업체들이 다른 국가보다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중국의 수출 전략도 주효하다. 중국은 규모의 경제로 생산 원가를 낮춘 뒤, 수출 가격을 경쟁국 대비 낮게 설정하는 ‘시장 점유율 확대 전략’을 사용한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철강 수출 가격은 경쟁국 대비 톤당 10~20% 저렴하다. 지난해 중국의 철강 단가는 t당 755.34달러(약 110만원)로 형성됐다.

이처럼 대량 생산을 기반으로 한 중국의 가격 경쟁력은 한국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를 부추기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과잉 생산된 철강재가 글로벌 시장으로 대거 유출되면서 한국 철강업체들의 경쟁력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중국은 경기 침체와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해 내수 소비가 위축되면서, 자국에서 소화하지 못한 철강 제품을 대량으로 수출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중국의 총수출액은 지난 2023년 7월부터 2024년 3월까지 전년 대비 4.7% 감소했으나, 수출량은 6.2% 증가했다. 이는 중국 업체들이 가격을 대폭 낮추며 수출을 확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중국발 공세는 한국 철강업체들의 실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주요 철강사의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9.9%와 50.3% 감소했으며, 국내 철강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수출 시장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저가 철강재는 한국의 수출 시장뿐만 아니라 내수 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024년 1~4월 기준 한국의 대중국 철강 수입량은 전년 대비 33% 증가했다. 한국 조선·건설업계에서 중국산 철강재를 채택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국내 철강업체들의 판매량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차값까지 저렴한 中, 위기의 韓 전기차

자동차도 방향을 잃었다. 중국산 전기차의 한국 시장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전기차 업체들은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산 전기차는 가격을 앞세워 국내 시장에 진출하고 있으며, 지난해 한국의 전기차 수입량 중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대비 42% 증가했다. 중국산 전기차는 평균적으로 한국산 전기차보다 20~30%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중국산 자동차 가격이 낮은 것은 철강과도 연관이 있다. 중국이 과잉 생산으로 철강 가격을 낮추면서, 이를 사용하는 자동차 제조사들이 원가 절감 효과를 얻고 있다. 물론, 자동차 가격 형성에는 ▲반도체 ▲배터리 ▲인건비 ▲물류비 등 다양한 요소가 존재하지만 통상 자동차 1대당 약 900~1500kg의 철강이 사용되는 만큼 철강의 가격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중국승용차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승용차 시장에서 총 195개 모델의 가격이 인하됐다. 이는 2023년 150개 모델과 2022년 95개 모델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배터리 전기차(BEV)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PHEV) 등 신에너지차 모델에서 가격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BEV의 경우 69개 모델의 가격이 평균 2만 3000위안(13.5%) 인하됐고, PHEV는 29개 모델이 평균 2만 4000위안(13.7%) 줄었다.

중국산 철강을 활용해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은 주로 중국 내 자동차 제조사들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제조사로는 ▲상하이자동차그룹(SAIC Motor) ▲비야디(BYD) ▲지리(Geely) ▲창안(Changan) ▲체리(Chery)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은 중국산 철강을 활용해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는데, 일부 모델은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 전체 생산 원가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철강이 저렴하다 보니, 중국 자동차의 가격은 저렴할 수밖에 없다”며 “단순히 저가 철강뿐만 아니라, 중국은 규모의 경제를 갖춤과 동시에 자동차 생산의 수직 계열화를 구축했기 때문에 이 같은 가격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한진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초빙 교수는 “산업 전반에 걸쳐 한국이 중국에 추월당할 수 있다는 우려는 오래 전부터 계속 제기됐다”며 “기업과 정부는 핵심 기술 투자, 인재 육성, 산업 생태계 구축, 국제 협력, 제도 개선에 자금과 정책 역량을 강화하고 특히 AI, 반도체, 통신 등 혁신 기술 R&D와 전문 인력 양성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홍준표 "대선 열리면 시장직 사퇴"

2“저출생 극복” 정진완 우리은행장, 릴레이 챌린지 동참

3LH, 올해 19조 규모 공사·용역 신규 발주 추진한다

4토스플레이스, 출시 2년 만에 가맹점 수 10만개 돌파

5與 권성동 "이재명과 1:1 무제한 끝장 토론 찬성"

6“매월 급여이체 시 혜택”…하나은행, ‘달달 하나 컴퍼니’ 오픈

7코스피, 美 경기 둔화 영향에 휘청…2640대로 후퇴

8 국민의힘 "이재명과 일대일 무제한 토론 동의. 주제 자유"

9글로벌 반도체 중심을 넘어 '용인르네상스'를 그린다

실시간 뉴스

1홍준표 "대선 열리면 시장직 사퇴"

2“저출생 극복” 정진완 우리은행장, 릴레이 챌린지 동참

3LH, 올해 19조 규모 공사·용역 신규 발주 추진한다

4토스플레이스, 출시 2년 만에 가맹점 수 10만개 돌파

5與 권성동 "이재명과 1:1 무제한 끝장 토론 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