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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현악기 줄 풀리듯”…초기 진단 중요한 조현병 [이코노 헬스]

조현병, 양성·음성 외에도 다양한 증상 나타나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기도…가족 도움 필요해

지난 1월 24일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광주송정역에서 시민들이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상욱 원장] 조현병은 과거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블로일러(E. Bleuler)가 1908년 만든 원어명(schizophrenia)을 그대로 옮긴 탓이다. 그리스어 어원으로 스키조(schizo-)는 ‘갈라지다’라는 뜻이고, 프렌(phren)은 ‘분열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에 질병을 뜻하는 어미 이아(-ia)가 붙었으니, 그야말로 ‘정신+분열+증’이다. 단어 자체만 놓고 보면 정신분열증은 원어의 충실한 번역이다. 온전하게 통합돼야 할 정신 기능이 분열된 상태로 있으면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하지만 번역에 충실하다고 좋은 작명은 아니다. 실제 정신분열증은 오랜 기간 대중의 오해를 샀다. ‘분열’이라는 단어가 지닌 강한 어감 탓에 이 질환을 향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했다. 다중인격장애의 사례(예컨대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정신분열증의 예시로 잘못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조현병이라고 이름지어진 것은 한참 뒤인 2011년이다.

‘조현병’이라는 이름은 신경구조에 이상이 생겨 마치 현악기가 조율되지 못한 모습이라는 뜻에서 붙었다. 다만 조현병의 개념과 정의, 원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합의되지 않은 듯하다. 그만큼 조현병은 이해와 진단, 처방이 어려운 질환이다. 조현병은 흔하게 발생하고 오래가는 질환이기도 하다. 평생 유병률은 100명 중 1명꼴이고, 10대 후반에서 20대 사이에 시작해 만성적 경과를 보인다.

조현병 증상은 크게 양성과 음성으로 나눈다. 건강한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지만, 조현병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증세를 ‘양성 증상’이라고 한다. ▲환각(hallucination) ▲망상(delusion) ▲사고 과정의 장애 등이 대표적인 양성 증상이다. 조현병으로 없어야 할 증상이 생기는 경우가 양성 증상이라면, 있어야 할 심리 기능이 사라진 것은 음성 증상이다. ▲무언어증(alogia) ▲무쾌감증(anhedonia) ▲무욕증(avolition) ▲정서적 둔마(affective flattening) 등 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조현병의 음성 증상은 양성 증상보다 치료가 어렵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약물을 쓰더라도 치료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 약물 치료로 양성 증상에서 벗어났다고 함부로 안심할수도 없다. 심한 급성기에서 벗어난 이후 잔류기에도 음성 증상, 인지기능의 장애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잔류 증상’이다.

20대 남성 A씨가 그랬다. A씨는 군대에서 겪은 가혹행위 탓에 심한 조현병 증상을 보였다. 집 밖에는 항상 검정 자동차가 세워져 있고, 그 안에 타고 있는 남자들이 군에서 가혹행위를 했던 선임과 그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다.

A씨의 양성 증상은 상담을 진행하면서 점차 호전됐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잔류기에 그에게서 음성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집 밖으로 나갈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고 했다. 선임이 쳐다볼까 두려워 창문에 검은색 천을 붙이거나, 밖에서 누가 쳐들어올까 방문을 닫았다. 이런 것들은 그가 방 밖을 나가지 않게 하는 장애물이었다. 가족들이 A의 생각과 마음을 읽을 수 없어 답답해한다는 이야기도 A씨는 덧붙였다.

A씨는 “집 안에 틀어박혀 있으니 감정 표현도 의사소통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이전에는 (현실에) 없는 선임이 나를 괴롭혔는데, 이젠 내가 이유도 없이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조현병의 증상으로는 분열 증상도 있다. ▲생각 정리 ▲정보 학습 ▲집중력 유지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다. 과거 피해의식과 환청 등으로 고생한 40대 여성 B씨가 그랬다. B씨는 약물 치료를 겪으며 양성 증상에서 벗어났지만, 일을 다시 하기엔 여전히 무리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기억력이 좋지 못해 간단한 지시도 메모를 하지 않으면 잊어버렸고 문제 해결력이 떨어져 업무조차 수행이 어려웠다. 결국 B씨는 휴직하면서까지 치료에 전념했다.

가족·지역사회 등 역할이 질환 극복에 도움 

조현병은 무엇보다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초기 단계에서는 약물 치료만으로 조현병 증상을 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질환이 만성화할수록 치료나 완치가 어려워진다. 그나마 최근에는 항정신병 약물 중 음성 증상까지 개선할 수 있는 약제들이 많이 나왔다. 환자에게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약물치료가 능사는 아니다. 주변 환경도 조현병 치료에 대단히 중요하다. 가족이나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는, 이른바 정신사회적인 치료가 함께 이뤄지면 환자가 질환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치료 순응도’ 측면에서 보호자가 큰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치료 순응도란 쉽게 말해 환자가 의사의 지시를 얼마나 잘 따르는지를 말한다. 복약 시간, 내원 주기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조현병 증상이 있는 환자 중에서는 병식, 즉 자기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인식조차 없는 환자가 있다. 자신이 환자라고 인식하더라도, 치료를 끈기가 있게 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두 경우 모두 가족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 역할을 할 수 있다.

A씨와 B씨가 상담을 꾸준히 받은 배경에도 가족이 있었다. A씨는 남편, B씨는 부모님이 이들이 치료받고, 상담을 이어가는 데 도움을 줬다. 현악기를 배우는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악기를 조율할 때까지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듯, 질환도 자기 스스로 치료에 나설 수 있기 전까지 주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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