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한 서민경제 구하기[EDITOR’S LETTER]

[이코노미스트 권오용 기자] 최근 창원시 진해구에서 50대 여성이 마트에서 5만원 상당의 소고기 한 팩을 가방에 넣어 가져갔다가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이 있었는데요, 생활고를 겪던 이 여성은 암 투병 중인 자녀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지난 1월에는 77세 여성이 빌라 복도에 놓여있던 옷 가방 3개를 유모차에 실어 훔쳤다가 붙잡혔는데, 버린 것인 줄 알고 고물상에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78세 노인이 생활고에 한 개 2000원짜리 단팥빵 두 개를 훔쳤다는 소식도 있었는데요, 고물가와 경기 침체 등으로 서민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지면서 생계형 범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릴 정도로 서민들의 주머니가 텅 비어가고 있다는 것은 급전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국내 9개 카드사의 카드론 잔액은 42조9888억원으로, 역대 최다였던 1월 말 잔액(42조7309억원)보다 약 2500억원 증가했습니다. 서민층 급전 수요가 카드업계에 집중되면서 잔액이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여기에 카드론을 갚지 못해 카드론을 빌린 카드사에 다시 대출받는 대환대출 잔액은 1조6843억원으로 1월 말(1조6110억원)보다 늘었고, 현금서비스 잔액도 6조7440억원으로 전월(6조6137억원)보다 증가해 서민들의 채무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들이 연 수백~수천%에 달하는 고금리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20대 청년은 자취방 보증금이 부족해 불법 사채 20만원을 빌렸는데, 한 달 만에 상환해야 할 돈이 1900% 증가한 400만원으로 불어났다고 합니다. 이처럼 감당하기 힘든 불법 사채를 이용하는 서민은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의 불법 사금융 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52만명으로 추산되던 불법 사채 이용자는 2022년 82만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는데요, 이후 경기 악화로 더욱 증가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서민경제는 바닥인데, 경제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달러 강세와 정치 불확실성 등의 영향으로 환율이 최근 1470원 선을 돌파하는 등 다시 요동치고 있고, 물가도 뛰고 있습니다. 특히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라면은 물론이고 만두·과자·맥주·커피 등 주요 먹거리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어 서민에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할 기회는 더욱 줄어들고 있는데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채용을 줄이고 있어 최악의 취업 한파가 몰아치고 있고, 중견·중소기업 중에는 파산하는 경우도 종전보다 많아졌습니다.
이럴 때 서민들의 버팀목 역할은 정부가 해줘야 하는데, 현재 국정 최고 책임자의 공백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어 지원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야정 협의체가 속도를 낼 것 같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도 지지부진하면서 서민경제의 위기 경보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다른 계산하지 말고 할 일을 지체 없이 해야 서민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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