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전산 오류, 또?”…‘주당 1건꼴’ 연간 100건 터졌다
- [증권사 전산 오류의 민낯] ①
반복되는 전산장애…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민원 급증하고 있지만…증권사 징계·과징금은 10% 미만

[이코노미스트 송현주 기자]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는 개인투자자에게 단순한 거래 수단이 아니다. 시세 확인부터 주문 체결, 잔고 관리 등까지 모든 투자 행위의 중심이 된다. 만약 주문이 지연되고, 잔고가 0원으로 표시되며, 체결 알림이 수 분 뒤에 도착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특히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나 단타 종목처럼 초단위로 시세가 급변하는 종목에서는, 단 몇 초만의 전산 장애에도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잔고 오류 ▲주문 누락 ▲접속 장애는 더 이상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투자자 자산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리스크라는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런 장애가 반복되고 있다. 증권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5월까지 증권업권 전산장애는 총 475건이나 발생했다. ▲2020년 66건 ▲2021년 85건 ▲2022년 78건 ▲2023년 100건 ▲2024년 100건으로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여왔다. 누적 장애 시간은 무려 2만6498시간(약 3년)에 달했다. 소비자 피해 보상과 시스템 복구 비용 등으로 발생한 직접 피해액은 262억8293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단일 사고 기준으로는 2020년 키움증권 시스템 오류가 47억원의 손실을 남기며 최악의 사고로 기록됐다. 뒤를 이어 미래에셋증권(2021년), 한국투자증권(2022년)도 각각 수십억 원대 손실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올 상반기에만 46건의 전산사고가 발생했다. 주요 증권사 별로 보면 3월 키움증권이 특정 종목의 실시간 체결 정보 표출이 10분 이상 지연되어 투자자의 불만이 폭발한 바 있다. 4월에는 미래에셋증권이 SOR 오류로 11건의 민원이, 5월에는 NH투자증권에서 잔고 데이터 오류로 수천 건 이상의 민원이 접수됐다. 이어 6월 6일 메리츠증권 이용자들은 미국 주식 거래 지연 사태를 겪었고, 6월 9일에는 토스증권이 대체거래소 넥스트트레이드(NXT) 애프터마켓 시간대에 약 14분간 접속 장애를 일으켰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하반기까지 포함하면 2024년도 전산사고 건수를 초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원도 1년간 매 분기 8건 이상”…신한·미래·유안타 최다
전산 오류에 대한 투자자 불만은 해마다 누적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4년 1분기부터 2025년 2분기까지 60개 증권사에 접수된 전산장애 민원은 총 185건에 달한다. 가장 많은 민원이 접수된 곳은 신한투자증권으로 총 39건이다. 2024년 3분기 10건, 2025년 1분기 11건, 2분기 8건 등 최근 1년 동안 매 분기 8건 이상 민원이 발생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총 26건의 전산장애 민원이 발생했다. 특히 2025년 2분기에만 21건이 집중됐다. 유안타증권은 총 25건, 이 중 15건은 2024년 4분기에 몰렸다. 이 외에도 ▲하나증권(16건) ▲메리츠증권(15건) ▲삼성증권(12건) ▲유진투자증권(12건) ▲토스증권(11건) ▲KB증권(9건) ▲NH투자증권(5건) 등도 전산장애 민원이 다수 발생했다.
협회 통계에 반영되지 않은 민원도 존재한다. 키움증권의 경우 2025년 4월 초 단 이틀간 발생한 시스템 장애로 약 1만8000여건에 달하는 민원을 자체 접수했으나, 해당 수치가 금융투자협회 민원 공시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HTS·MTS 시세 지연과 주문 체결 오류가 동시에 발생하며 역대급 민원 폭증이 발생했다. 하지만 공시 기준의 한계로 인해 실제 피해 규모가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투협 관계자는 “민원 공시 제출 마감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증권사별로 시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제출 기준과 관련한 내부 규정은 담당 부서에서 확인 중”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산장애의 근본 원인으로 ▲시스템 노후화 ▲테스트 부족을 꼽으며 “거래량이 급증하는 경우 트래픽을 감당할 서버 자원이 부족하고, 정기적 모니터링보다는 외주 점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신규 기능을 도입하면서 충분한 검증 없이 운영에 들어가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쉽게 말하면 개발 인력 부족과 비용 절감 기조가 맞물려 발생하는 것이다. 심지어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증권사도 예외가 아니다. 아마존웹서비스(AWS) 기반 시스템을 도입한 신한투자증권도 전산장애를 겪은 것이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AWS 자체 장애는 없었으나 외부 요인이나 사용자 환경 문제로 발생한 지연까지 민원으로 집계된다”고 해명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장애가 발생해 사용자들의 피해가 발생해도 대부분의 보상은 수수료 면제나 포인트 적립에 그치는 것이다. 전산장애로 사용자의 피해가 발생해도 증권사가 징계를 받는다는 이야기도 듣기 어렵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매년 수십 건의 전산사고가 보고되지만 실제 징계나 과징금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10% 미만”이라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산 사고의 피해액을 명확히 추정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한계”라며 “예컨대 투자자가 주문을 넣지 못한 상황에서 그 거래가 실제로 성사됐을지, 손해가 발생했는지 증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은 불편함에 머무르고, 명확한 금전적 피해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보상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징계나 시정명령은 원칙적으로 내부통제 기준 미준수에 대한 대응인데, 장애가 반복되면서도 제재가 약한 이유는 증권사들의 책임을 강하게 묻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용자 보호 관점에서 사고 예방 역량에 대한 강한 인센티브와 투자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국회 정무위 소속 강민국 의원은 “금감원은 반복적으로 사고를 일으킨 증권사에 대한 IT 실태 점검을 강화하고 강력한 제재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산 사고 발생 시 금융당국이 실시간으로 공시를 의무화하고, 사고 원인 및 복구 소요 시간, 재발 방지 대책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전산장애 민원 공시 역시 증권사 자율에 맡겨져 있어, 장애 발생 사실조차 투자자에게 실시간 공유되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금융IT 전문가도 “단순한 트래픽 지연이나 접속 불량도 실시간 거래 플랫폼에서는 ‘재난’ 수준의 사안”이라며 “전산 인프라는 투자 신뢰의 핵심으로, 단순 운영 비용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 리스크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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