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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한파 건설사에도 직격탄] 추진위(뉴타운재개발추진원회)에 빌려준 돈 떼일까 전전긍긍

[뉴타운 한파 건설사에도 직격탄] 추진위(뉴타운재개발추진원회)에 빌려준 돈 떼일까 전전긍긍

지난해 9월 경기도 부천 소사 뉴타운 기공식 장면. 소사 10B구역은 최근 주민투표 결과 반대 여론이 많아 뉴타운 추진이 유보됐다.

서울 상계 뉴타운 한 구역에서 재개발사업을 추진 중인 A건설사는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각종 소송에 얽혀 인허가가 지연되고 있는 데다 조합원 사이에서 ‘뉴타운 반대’ 여론이 거세지면서 사업 추진에 애를 먹고 있어서다. A사 관계자는 “일부 주민은 본사까지 찾아와 사업을 백지화시켜 달라고 호소하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걱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만약 서울시가 주민 의견을 수렴해 이 뉴타운의 지구지정을 해제할 경우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가장 큰 문제는 A건설사가 조합에 빌려준 사업추진비 회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뉴타운으로 지정된 곳에서 재개발추진위원회를 구성할 경우 시공사가 추진위에 운영비를 빌려주는 게 관례다.

A건설사는 이 구역 재개발추진위와 2008년 가계약을 맺으면서 약 30억원을 사업추진비 명목으로 빌려줬다. 문제는 대여 당시 추진위원장과 추진위원들의 재산을 담보로 잡았지만 형식적인 계약이라 문제가 발생하면 사실상 회수가 힘들다는 것이다. A사 관계자는 “뉴타운 반대 여론과 잇따른 지정 해제에 따른 위기감으로 걱정이 많다”고 토로했다.



잇따른 지정 해제에 건설사 위기감건설사가 앞다퉈 뛰어들었던 뉴타운 사업 때문에 건설사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서울·경기 뉴타운 상당수가 뉴타운 추진 찬반을 놓고 ‘싸움판’으로 바뀌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를 중심으로 뉴타운 사업을 취소하는 지구지정 해제가 늘고 있다. 뉴타운 사업에 손을 대고 있는 건설사 대부분은 “뉴타운 사업이 초기에는 새 수익 창출원으로 기대가 컸지만 지금은 골칫거리로 전락했다”며 “사업이 지연되면서 시간과 인력 낭비,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이자 등의 금융비용 발생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사업을 마쳐도 부동산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수익이 기대에 못 미칠 것이라는 불안감도 적지 않다. 뉴타운 추진 초기 건설사들은 총 사업비의 30%를 최대 수익률로 추정했다. 대형사인 H건설의 주택영업팀 관계자는 “당시 수익률을 20% 이하로 잡은 건설사는 차라리 그 돈으로 다른 사업을 하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뉴타운에 거는 기대가 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집값이 떨어지고 미분양이 늘어 건설사의 예상 수익률은 속절없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조만간 일반분양이 진행되는 전농 뉴타운에서 사업을 추진한 모 건설사의 수익률은 약 10%로 알려졌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뉴타운 사업이 난항을 겪는 이유를 주로 ‘부동산 경기 침체’에서 찾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뉴타운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부동산 투자자문업체인 세중코리아의 김학권 사장은 “부동산 경기 침체가 뉴타운 사업에 제동을 건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뉴타운 사업 주체들에게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서 사업 주체란 지방자치단체, 지역구 국회의원, 조합원, 건설사를 말한다.

김학권 사장은 “표만 바라보고 공약을 남발한 국회의원, 명확한 기준 없이 개발계획을 남발한 지자체, 주거환경 개선보다 자산 증식에 목적을 둔 조합원, 수주 증가와 수익 창출만을 위해 별다른 검토 없이 뛰어든 시공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며 “특히 안정적인 수주를 위해 건설사와 조합원이 만든 ‘가계약’이라는 제도에 칼을 대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적으로 뉴타운 추진 과정에서 시공사 선정은 조합설립 인가 후에 이뤄져야 한다. 뉴타운 구역 조합원들의 동의를 75% 이상 받은 조합이 공사를 할 건설사를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조합이 선택한 건설사는 향후 뉴타운 취소 같은 문제가 발생해도 손해배상 청구 등의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지에서는 조합설립 전 단계인 추진위 과정에서 건설사 선정을 사실상 마친다. ‘가계약’을 맺는 것이다. 향후 조합 설립 후 정식 절차에서 시공사로 뽑아 줄 것을 미리 약속 받는 것이다.

예컨대 추진위 단계를 밟고 있는 한 뉴타운 구역에 A건설사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하자. 건설사는 시공권을 획득하기 위해 다양한 영업활동을 펼치겠지만 A건설사는 내심 경쟁 건설사에 사업권을 뺏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이때 A건설사는 초기 사업비용 제공과 추진위 활동 지원 등을 조건으로 가계약을 요구한다. 가계약을 하면 A건설사는 공식적인 시공사는 아니지만 해당 뉴타운 구역을 사실상 수주 사업장으로 여긴다.

주민 간 찬반 대립으로 뉴타운 공사가 멈춘 곳이 많다. 사진은 은평 뉴타운 공사 당시 모습.

건설업계에서 뉴타운 가계약은 이미 ‘상도’인 양 굳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계약이 끝난 사업지에 다른 건설사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상도에 어긋나는 일로 여겨진다고 한다. 가계약을 마친 건설사는 총 사업비의 약 5%에 해당하는 금액을 추진위에 사업 초기비용으로 빌려주고 조합원들의 환심을 얻기 위한 영업비로 쓴다. 건설업계에서는 이 상한선을 최대 80억원으로 보고 있다. D건설사 주택영업팀 관계자는 “총 사업비가 1500억원이든, 2000억원이든 약 80억원이면 사업비용은 물론 조합원 상대 영업까지 끝낼 수 있다”며 “80억원 이상의 금액은 과도한 지출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이 가계약 관행이 건설사에 부메랑이 돼서 돌아오고 있다. 적지 않은 영업비를 쓰고 사업을 완료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사업 도중 지정지구 해제 한파를 맞으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만약 추진위 단계에서 가계약으로 시공사 선정을 마친 뉴타운 사업지가 지정지구 해제를 당했다면 더 이상 사업진행이 불가능해진 건설사는 그동안 쓴 영업비를 만회하기 위해 각종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조합·지자체 상대 소송 힘들어이 경우 건설사는 사업비용을 빌린 추진위에 상환을 요구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업금 대여 당시 건설사들은 대부분 차용증서조차 쓰지 않기 때문에 추진위원장과 추진위원이 나 몰라라 해버리면 받아낼 재간이 없다. 일부에서는 추진위 측에 담보를 걸기도 하지만 이 역시 형식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사업비용 지원 등의 정황을 잘 모르는 조합원들에게 청구하는 것 역시 녹록지 않다. 지구지정 해제를 내린 지자체 상대의 손해배상소송 청구도 사실상 어렵다는 게 건설업계의 얘기다. 조합이 결성된 이후 공식적으로 시공사로 선정됐다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건설사와 추진위의 약속인 가계약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어 패소가 불 보듯 뻔하다. H건설사 주택영업팀 관계자는 “소송에 이길 확률이 있다고 해도 건설사들은 쉽게 나서지 못한다”며 “관련 소송이 시작되는 순간 해당 지자체가 발주하는 공공 공사 입찰에 더 이상 발을 들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재국 서일대 건축과 교수는 “건설사들의 수주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친 가계약 제도가 건설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조합설립 단계에 이르지 못한 사업지에서 활동 중인 건설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뉴타운 35곳 245개 구역 중 125개 구역에 아직 조합이 설립되지 않았다. 돈을 떼일 수 있는 곳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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