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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가 부른다⒖ 마약의 통로 - 아프리카 공항에서 짐 운반 부탁 조심

아프리카가 부른다⒖ 마약의 통로 - 아프리카 공항에서 짐 운반 부탁 조심



8월 말, 한국 여고생 한 명이 아프리카 케냐에서 마약범으로 몰려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여학생은 통역 분야 취업 상담을 위해 케냐를 방문했다가 귀국 비행기를 타려고 나이로비 국제공항으로 이동하던 중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그의 가방에 있던 3개의 목각인형 속에서 3.4kg의 히로뽕이 발견됐다. 동행하던 케냐인 1명과 나이지리아인 1명도 함께 체포됐다.

한국 여학생은 케냐 방문에 앞서 인터넷을 통해 이들 2명과 통역 관련 업무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목각인형은 이들로부터 “서울까지 운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사건 발생 직후, 주 케냐 대한민국 대사관은 홈페이지에 ‘마약 소지범으로 오인 받지 않도록 주의를 요망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올렸다.

주 케냐 대한민국 대사관은 “한국이 마약 청정국으로 알려지면서 거꾸로 불법 마약의 중간 경유지가 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한국인을 통해 마약을 운반하려는 마약조직의 시도가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주의를 당부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공항에서 짐이 많은 탑승객으로 가장해 자기 짐 중에서 하나를 들어달라고 하는 경우▶한국으로 입국(또는 한국에서 출국)하려는 사람에게 짐 좀 부탁하자면서 운송해 달라고 하는 경우▶현지 취업을 미끼로 인터뷰를 위해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한 후, 인터뷰를 마친 뒤 선물을 주거나서울로 짐을 전달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대사관 측은 “마약이 들어있는 짐이라서 검사에서 적발된다면 본인의 짐이 아니라고, 혹은 마약이 들어 있는 줄 몰랐다고 변명해도 인정되지 않는다”며 “모르는 사람의 짐은 절대 들어주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 여고생 마약범으로 몰려 체포되기도아프리카가 마약 중간 유통지로 악용되고 있다. 주로 남미에서 생산돼 최대 수요처인 유럽으로 운송되는 마약이 단속을 피하기위해 아프리카를 통과하고 있다. 이와 관련,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7월 19일자에서 “마약 생산지인 남미에서 유럽으로 직접 운반하는 것보다 아프리카를 거쳐 우회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르몽드는 “특히 아프리카 중에서도 서부 지역이 마약 유통로로 각광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산하 유엔마약범죄국(UNODC)은 2007년 10월, 서부 아프리카 지역이 마약 밀매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데 대한 위험성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UNODC는 ‘서부 아프리카 지역 코카인 밀매 현황에 관한 보고서(COCAINE TRAFFICKING IN WESTERN AFRICA, SITUATION REPORT)’를 통해, 서부 아프리카가 유럽으로 밀반입되는 코카인의 중간유통지로 이용되는 세 가지 이유를 지적했다.

우선 카리브해 주변 지역과 유럽에서 마약단속이 강화되는 바람에 마약조직들이 다른 루트를 개발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남미에서 유럽으로 밀반입되는 마약은 주로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거쳐 유럽에 유통됐다. 특히 스페인은 남미 마약조직에게는 더없이 좋은 중간 기착지였다. 남미 마약조직들은 스페인이 긴 해안선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미와 역사적·언어적 연대가 있다는 점도 활용했다.

단속 실적만 봐도 스페인의 ‘활용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2005년 한 해 동안 스페인에서 압수한 코카인만 48t으로, 전체 유럽에서 단속한 코카인의 45%를 차지한다. 이는 그 해 스페인 경찰이 북쪽 해안지대 단속을 강화한 결과로, 2004년 대비 압수 물량이 거의 50% 가량 늘었다.

네덜란드도 유럽으로 들어오는 코카인의 주요 밀반입 통로였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2000년대 중반부터 특정 남미국가에서 보내진 항공우편물에 대해 100%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으로 반입하던 마약의 전통적인 통로 두 곳이 막히자 남미 마약조직들은 다른 길을 뚫어야 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선택한 장소가 바로 아프리카다.

두 번째 이유는 서부 아프리카의 지리적 위치다. 남미에서 유럽 내 주요 마약 시장으로 보내기 쉬운 이상적인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남미에서 생산돼 유럽으로 보내지는 코카인은 주로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에서 출발한다. 이들 나라들과 서부 아프리카 국가들 사이에 최단 경로는 대략 북위 10도선과 일치한다. 그래서 이 지점은 마약조직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의미에서 ‘10번 고속도로’라 불리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서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마약조직이 활동하기에 좋은, 만만한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부패가 만연해있고, 법집행시스템도 허술해 붙잡힐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설령 체포된다 하더라도 뇌물을 써서 빠져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서부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국 영토를 단속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6년 9월 기니비사우 당국은 두 명의 남미인을 체포해 670kg의 코카인을 압수했지만 이내 이들을 풀어줘야 했다. 증거로 압수한 코카인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힘든이 사건은 이듬해 우연한 계기로 수사가 재개됐다. 다른 마약 사건을 조사하다 기니비사우 정부 고위 인사가 1년 전 코카인을 빼돌리는데 연루됐다는 진술이 나왔기 때문이다.

서부 아프리카로 반입되는 마약은 대부분 어선이나 화물선을 이용해 남미에서 들어온다. 마약을 은닉하는 장소는 배의 연료 탱크를 개조한 비밀 공간이 주로 이용된다. 소형 개인 요트로 운반되는 경우도 있다. 단속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서부 아프리카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스페인이다.

사전에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남미를 출발한 마약선이 아프리카에 도착하기 전, 주로 대서양 해상에서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스페인 해군은 2006년 모두 27차례 외국 선박을 검사했다. 이 중 마약을 적발한 경우가 18번이나 됐다. 영국도 해군 함정을 동원해 아프리카로 밀반입되는 마약을 단속하고 있다.



마약조직이 악용하는 10번 고속도로바닷길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자 마약조직들은 하늘 길 이용을 대폭 늘렸다. 소형 비행기를 이용해 남미에서 서부 아프리카로 실어 나르는 것이다. 2007년 5월, 모리타니의 작은 도시 누하비두의 공항에 세스나기 한대가 착륙했다. 비행기를 급습한 마약 단속반은 기내를 수색한 끝에 코카인 630 kg을 찾아냈다. 수사 결과 모리타니 관리도 몇 명 연루된 사실이 밝혀졌다. 비행 기록을 살펴보니 출발지는 베네수엘라에 있는 소형 활주로였다. 마약 운반에 경비행기용 비밀 활주로를 이용하기도 한다.

기니비사우에서 그런 사례가 확인됐다. 기니비사우 정부는 마약을 운반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정체 불명의 경비행기 착륙이 잦아지자, 해안에서 50km 가량 떨어져 있는 비자고스 군도에 대공포를 설치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에 반입된 마약이 유럽으로 이송되는 루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체포된 사례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UNODC는 마약조직이 주로 배를 이용해 유럽으로 옮기는 것으로 추정한다. 드물긴 하지만 고속정을 사용하다 붙잡힌 사례도 있다.

2006년 12월 30일, 스페인해군은 북부 갈리치아 해변 인근 해상에서 쾌속보트 한 척을 붙잡았다. 모로코 카사블랑카를 출발한 이 보트는 남미에서 출발한 배와 해상에서 합류해 코카인을 옮겨 실은 직후였다. 3t 가량의 코카인이 그 배에서 발견됐다. 체포 당시 그 배는 스페인 당국의 추격이 시작되자 대부분의 코카인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갈리치아에 있는 밀수조직원 28명을 추가로 체포하고, 코카인 1.8t을 압수했다.



동부 아프리카에서도 마약거래 늘어마약조직들은 또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들어오는 정기 항공편을 이용하기도 한다. 아프리카와는 달리 유럽에는 비밀활주로도 없고 경비행기를 이용하기도 쉽지 않아 사람이 직접 마약을 몸에 지닌 채 공항 통과를 시도하는 것이다. 2006년 유럽 내 공항에서 발각된 코카인 밀반입 사례 822건 중에서 13%에 해당하는 122건이 아프리카발 항공기를 탄 사람에게서 적발한 것이었다. 122건 중 96%에 해당하는 117건은 서부 아프리카 국가에서 출발한 비행기 탑승객에게서 찾아낸 것이었다.

정기 항공편을 이용해 마약을 운반하는 것은 나이지리아 마약조직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이다. 여러 명의 운반책을 동원해 작은 용량(대략 0.8 kg)으로 마약을 나눈 뒤 특정 항공편으로 반입한다. 2006년 12월 네덜란드 경찰은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동일 항공편을 타고 온 32명의 운반책을 무더기로 검거했다. 운반책들은 기니비사우를 출발, 모로코 카사블랑카를 경유해 네덜란드로 들어왔다. 그중 두 사람은 수화물에 마약을 숨겼으며, 나머지 30명은 작은 봉지에 나눠 삼킨 후 입국을 시도했다. 32명중 28명이 나이지리아 사람이었다.

2007년 7월에는 감비아에서 네덜란드로 들어오는 항공편에서 16명의 운반책이 체포됐다. 8명은 감비아에서 출국 수속을 받던 중 반줄 공항에서 붙잡혔고, 8명은 스키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됐다. 최근 들어 아프리카 내 마약 운반 루트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전통적인 중간 기착지 서부 아프리카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자 동남부로 경로가 다변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8월 케냐에서 한국 여고생이 마약 조직에 이용당한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체포 당시 서부 아프리카 국가인 나이지리아 사람 1명과 동부 아프리카 국가 케냐 사람 1명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그러한 추정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남미에서 가져온 마약을 나이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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