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배 불리는 통화 부양책의 종말 - 이코노미스트

Home > >

print

부자 배 불리는 통화 부양책의 종말

부자 배 불리는 통화 부양책의 종말

재정지출로 경기 부양 가능성 … 일본 부양책, 유로존 불안 등도 변수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월 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랜초미라지에서 정상회담 중 산책하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월 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랜초미라지에서 정상회담 중 산책하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 의장의 6월 19일(현지시간) 기자회견 발언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을 꼽는다면 이것일 것이다. “내년 상반기 말쯤에 양적완화를 종료할 것이다. 그 때 미국의 실업률은 7%쯤 될 것이다.”

연준의 기존 정책 지침을 뒤집는 발언이었다. 경제 상황에 맞춰 통화정책 부양 기조를 정하기로 한 기존 지침대로라면 버냉키 의장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실업률이 7%로 떨어질 때까지 양적완화를 계속할 것이다. 그 시기는 내년 상반기 말쯤 될 것이다.”



양적완화에도 美 실물경기 글쎄버냉키 의장의 발언을 통해 시장 참여자들은 연준이 양적완화를 없애기로 날짜까지 미리 잡아놨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경제와 무관하게 양적완화를 끝내기로 한 것이다. 뭔가 ‘다른 이유’가 이번 결정에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연준은 왜 양적완화를 끝내기로 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효과는 별로 없었는데 금융 거품 같은 부작용은 날로 커져 급기야는 효과를 능가할 정도가 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5월 실업률은 7.6%였다. 지난해 9월 제3차 양적완화를 결정할 당시의 8.1%에 비해서는 분명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주로 다른 기술적 요인 덕에 포장된 수치에 불과했다. 실망한 구직자들이 대거 고용시장을 이탈하면서 마치 실업자 수가 감소한 듯 비친 것이다.

미국의 고용상황을 좀 더 광범위하게 보여주는 취업률, 즉 전체 노동가능 인구 가운데 취업자 수가 차지하는 비율은 58.6%다. 3차 양적완화 결정 당시(58.4%)보다 그다지 개선된 게 없다. 미국의 취업률은 2009년 9월 이후로 단 한 번도 59%를 넘지 못한 채 횡보 중이다.

통화부양 정책에도 실물경제가 왜 살아나지 않았을까. 자산 가격이 올랐는데도 왜 소비·투자·고용이 크게 늘지 않았을까. 통화정책과 실물경제의 연결고리가 단절된 건 미국의 구조적인 문제가 작용했다. 그 기원은 약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오르던 미국의 노동소득 분배율은 1980년대 초 들어 다시 빠른 속도로 떨어져 이제 사상 최저 수준이 됐다.

대신 기업에게 돌아가는 몫은 빠른 속도로 커졌다. ‘주식회사 미국’이 벌어들인 돈이 직원보다는 주주들에게 갈수록 더 많이 배분되는 추세가 심화된 것이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단지 정치·제도적 문제뿐 아니라 다양한 기술적·경제사적 요인도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수십 년 이어져 온 소득의 불균형은 부(富)의 격차로 귀결됐다. 그리고 자산이 중산층·서민들에게 광범위하게 분포되지 않고 소수의 계층에 집중된 상황에서는 자산 가격을 끌어 올려봐야 소비와 투자가 그다지 늘지 않는다. 부자들은 원래부터 잉여소득이 많기 때문에 자산 소득이 증가한다고 돈을 더 쓰지는 않는다.

중산층·서민들의 지갑에 쓸 돈이 없다는 사실은 기업들에게도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수요가 늘어나지 않아서다. 이 때 기업들의 가장 상식적인 대응은 투자를 자제하는 것이다. 설비·고용·생산을 늘려봐야 팔린다는 보장이 별로 없다.

따라서 미국의 기업들은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종전과는 ‘전혀’ 다른 투자행태를 보여왔다. 이익이 빠른 속도로 계속 증가했는데도 불구하고 투자를 그렇게 늘리지는 않았다. 1980년대초 국내총생산(GDP)의 14%에 달했던 기업들의 투자 비중이 지금은 10%로 작아져 버렸다.

같은 기간 기업이익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에서 11%로 치솟았는데도 기업들은 설비를 늘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의 장부에는 현금이 쌓였다. 그래서 초과 이익은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더 많이 배분됐다. 이는 노동소득(근로자)이 기업 이익(주주)으로 더 이전되는 악순환을 낳았다.

이런 거대한 구조변화 뒤에 나타난 초저금리 환경은 기업들에게 ‘실물’보다는 ‘금융공학’에 주력하도록 만들었다. 빚을 내서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를 끌어 올리는데 열중한 것이다. CEO들의 이 같은 행태는 매우 상식적인 것이기도 했다. 올 1분기 미국 S&P500 기업의 총자산이익률(ROA)은 2.5%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회사채 금리는 평균 2.8%였다. 그리고 주식의 이익률(시가총액 대비 순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은 6%에 달했다. 당신이 CEO라면 빚을 내서 자산(설비)을 늘리겠는가 자사주를 사겠는가. 저금리는 부채를 늘려 자본을 소각하도록 유인했을 뿐 투자와 고용을 자극하지 못했다.



오바마와 시진핑의 ‘대중노선’6월 17일, 그러니까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통화정책 방향 결정을 하기 이틀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TV 인터뷰 발언이 전파를 탔다. 내년 1월 임기가 만료되는 버냉키 의장의 연임 가능성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음, 글쎄요, 벤 버냉키는 미 연방수사국(FBI)의 밥 뮬러 국장과 좀 비슷해요. 본인이 원한 것보다, 혹은 사람들이 대략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그 자리에 있었어요.”

이번에는 교체하겠다는 걸 시시하는 듯했다. 그런데 표현이 묘했다.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일했다’고?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버냉키는 전 정권인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공화당원이다. 그런 사람이 돈을 마구 찍어대서 월가의 부자들만 더 잘살게 됐고, 서민들은 여전히 곤궁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갈아치우려 한다.”

6월 18일, 그러니까 오바마 대통령의 인터뷰 방송이 전파를 탄 지 몇 시간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 역시 의미 심장한 발언을 했다.

“당원들은 (1949년 이전) 혁명기 때 수행한 대중노선을 받아 들여야 한다. 당과 정부의 많은 관리가 여전히 인민과 괴리돼 있다. 인민의 지지를 잃느냐 얻느냐는 당의 존립 문제다. 당은 인민들에게 헌신하고 역사적 진보를 인민들에게서 구할 때만이 유지될 수 있다.”

지금 중국의 은행 간 단기 자금 시장은 극도의 경색에 빠져 있다. 고금리를 줘도 돈을 구하기 어렵다. 인민은행이 돈줄을 바짝조여서다. 중국의 고도성장을 지원한 것으로 여겨진, 하지만 적어도 올 들어서는 실물경제와 괴리돼 오로지 자산 거품만 야기하는 ‘그림자 금융’을 손보는 작업이 중국에서 진행 중이다. 따라서 시진핑 주석의 발언은 버냉키와의 정치적 절연(絶緣)을 암시한 오바마 대통령의 말과 중첩된다. 대중(실물)과 괴리된 자산시장 부양금융정책과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이 같은 전환은 전 세계적인 조류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2007년 대통령 경선에 나섰을 때는 ‘줄푸세’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겠다는 약속이었다. 이는 1980년대 초 미국 레이건과 영국 대처 정권의 근간을 이룬 자유주의 정치 이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선거를 앞두고는 당의 이름을 바꾸고, 보수정당의 상징인 파란색 로고를 버렸다. 빨간색 로고를 선택한 뒤로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1980년대 이후 진행된 불균형 성장의 누적된 모순이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전 세계 정치 지형을 바꾼 것이다.





돈줄 죄면 나타날 5가지 변화미국과 중국에서 나타난 대대적인 정책 전환 배경으로 단기·중기·장기적으로 점검할 다섯 가지 체크 포인트를 생각할 수 있다.

❶ ‘대중노선’으로의 전환이 경기 부양의 종료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전환의 과정을 완충할 더욱 적극적인 부양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그 주된 수단은 더 이상 통화금융 정책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적극적인 재정지출이 통화 부양책을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 화폐는 오로지 이윤이 더 높은 곳으로만 움직이지만, 재정은 의도에 따라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이는 조세정책에도 큰 변화를 의미한다. 재정을 늘릴 돈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불균형을 시정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기업 은닉 자금 색출 작업은 정책 전환의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단, 그런 대전환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강력한 정치적 저항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주요국의 경제를 전망하는 과정에서 정치 구도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미국처럼 정치가 실종된 곳에서는 전환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다시 화폐발행에 의존하거나 저성장을 감수하는 양자 택일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중국이 과연 재정 부양에 나서 경기를 연착륙시킬지 여부는 우리에게 특히 더 중요하다. 중국에 대한 우리 경제의 의존도가 지극히 높아서다.

❷ 당장은 미국 금융시장의 전개 양상을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주가와 금리의 상관관계에서 움직이는지가 핵심 포인트다. 지난 4년여 간은 채권과 주식 가격이 같이 올랐다. 즉, 금리는 떨어지고 주가는 올랐다. 대개 금리와 주가는 반대로 움직이지만 그동안은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다.

금리가 인위적인 힘에 의해 떨어지면서 주가를 끌어 올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왜곡을 바로잡는 과정에 들어가 있다. 앞으로 이 정상화 과정은 ‘주가와 금리가 동반 상승’하는 모습을 가져야 진성(眞性)이다. 그래야만 미국의 실물경제가 통화부양 축소 충격을 극복하고 정상궤도로 성장해 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❸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 연준의 행보다. 연준은 머지 않아 시장의 ‘조기 금리 인상’ 우려를 불식시키는 노력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연준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연준이 양적완화를 내년 상반기에 끝내기로 한 건 경기가 정말 그만큼 좋아질 것으로 봐서만은 아니다. 양적완화의 부작용이 더 크다고 우려한 결과다.

그렇기에 연준은 ‘제로금리’라는 부양 정책의 기본 수단은 좀 더 장기간 지속하겠다고 약속해 양적완화 종료가 실물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다만, 연준에 대한 시장의 신뢰에 금이 가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변수다. 연준 의장 교체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은 이 변수를 더욱 증폭시키는 변수다.

❹ 미국·중국 중심의 통화정책 전환은 일본에게 큰 딜레마다.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화폐 증발에 의존하는 국가로 남을 수 있다. 이는 엔화의 가치가 급격히 절하될 위험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일본은 세 자릿수의 환율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달러·엔 환율이 100엔선을 다시 훌쩍 넘어서도록 일본 당국이 용인할 지, 그래서 세 자릿수 환율에 안착할 지 여부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일본 정부가 엔화의 절하 추세를 수용한다면 일본과 신흥시장 증시가 함께 살아날 수 있다. 이 추세의 지속 가능성과 건전성 여부는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마취제 역할을 할 수 있다.

❺ 유로존은 여전히 잠재 위험 요소다. 그리스의 재정수지 구조조정 작업이 여의치 않자 채권단이 지갑을 닫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급한 그리스 정부가 구조조정에 가속페달을 밟으려 하자 이제는 정치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구성한 그리스 연합정권이 갈라지려는 모습이다. 그리스 집권 정부가 위태로워지면 ‘그렉시트(Grexit,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이슈가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이 문제는 유로존 채권 국가의 추가 지원 필요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9월로 다가온 독일 총선이 심각한 장애물이다.

- 국제경제 분석 전문 매체 Global Monitor 특약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비은행 금융회사가 취급하는 고수익·고위험 금융상품을 뜻한다. 선진국에서는 헤지펀드·사모펀드·투자은행·페이퍼컴퍼니(서류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 등이 그림자 금융의 핵심 세력으로 간주된다. 금융시장이 성숙하지 않은 중국에서는 투자신탁회사·사채업자 등이 그림자 금융회사에 해당된다.

중국 인민은행이 그림자 금융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돈 줄 죄기에 나서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충격에 휩싸였다. 그림자 금융은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이런 불확실성 탓에 단기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심화됐다. 그림자 금융은 특히 단기 자금을 융통해 장기 투자처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 ‘만기 불일치(maturity mismatch)’ 위험에 취약하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중국의 그림자 금융회사가 제공한 자금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40%에 버금가는 21조 위안으로 추정된다.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는 중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저해하는 주요요인으로 그림자 금융을 지목했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