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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LITERATURE - 문학작품일까 통속소설일까

culture LITERATURE - 문학작품일까 통속소설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소설 발매에 즈음해 그의 인기를 넘어 작품의 예술성을 둘러싼 논란을 되짚어 본다



한 남자가 상념에 잠기고자 마른 우물 바닥으로 내려간다. 남자는 생각이 많다. 키우던 고양이가 사라졌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 고약한 소녀가 우물 밖에서 밧줄을 끌어 올리는 바람에 남자는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남자는 위에서 듣고 있는 소녀에게 자신과 아내가 어떻게 “빈 터에 새 집을 짓듯이” 함께 새 삶을 시작하며 자아를 재설계하려고 했는지 설명한다. 소녀는 남자에게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세상이나 자아를 만들었다고 믿더라도, 옛날의 너는 항상 그자리에 있어. 다만 수면 아래에 잠겨 있을 뿐이지. 무슨 일이 생기면 반갑게 인사하면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 거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태엽 감는 새’의 한 장면이다.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무라카미의 작품은 이런 장면들로 가득하다. 소설가 조너던 프란젠은 이런 장면을 마주했을 때 마음이 움직인다고 말한다. “나는 바쁜 현대 생활 속에서 중년기를 보냈다”고 프란젠은 말했다. “오직 밤에 특정 책을 읽을 때에만 황홀한 장소로 이어지는 터널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태엽 감는 새’는 그를 ‘터널’로 이끄는 책 중 하나다. “그 책을 읽을 때면 세상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고 그는 말했다. “그것이 내겐 위대한 소설을 가늠하는 지표다.… 내 생각에 ‘태엽 감는 새’는 지난 30~40년 간 전 세계에 출간된 소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다.”

일본에서는 무라카미의 새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발매되면서 마니아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아마존 재팬의 최단 시간 판매기록을 경신했다. 한국에서는 7월 1일 출간됐으며 미국에서는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무라카미의 소설 여러 편을 번역했던 필립 가브리엘이 이번 작품의 일어-영어번역을 맡았다. ‘1Q84’ 때처럼 제이 루빈과 공역한다는 일부 보도와 달리 이번에는 혼자 번역한다. 출판사측에 따르면 미국에서 무라카미의 가장 최근작인 ‘1Q84’는 아직도 거의 50만부 가까이 출간 중이다.

폭발적인 인기와 달리 무라카미에 대한 평단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특히 무라카미의 작품들을 두고 호평과 혹평이 엇갈렸던 뉴욕타임스도 대표작 ‘태엽 감는 새’에 대해서는 혹평 일색이었다. “무라카미는 혼란스럽고 파편화된 미지의 세계를 묘사하려다가 혼란스럽고 파편화된 책을 썼다.” 1997년 비평가 미치코 가쿠타니가 남긴 평이다.

보다 최근에는 뉴욕타임스의 다른 비평가 자넷 마슬린이 “‘1Q84’는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고 혹평하며 작품에 남겨진 풀리지않는 의문들, 일부 작중 인물의 가슴에 지나치게 집작하는 괴벽 등을 지적했다. 이 책에서 ‘리틀 피플(무라카미가 ‘1984’의 ‘빅 브러더’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형상화한 감시자들)’은 어떤 존재일까? 마슬린은 이렇게 썼다. “내용으로 미뤄볼 때 아주 현명한 존재들이지만, 그들이 하는 말이라곤 ‘호호’가 고작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무라카미가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는 아니다.” 소설가 너대니얼 리치는 말했다. 리치는 무라카미가 어색하고 상투적인 문장을 쓰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무라카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다. 그건 예술적인 시도다. 내 생각에 그는 예술을 창조한다.” 리치는 그가 뛰어난 스토리텔러라고 말한다.

“때로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소설가 찰스 백스터는 말한다. 그는 뉴욕 리뷰오브 북스에 기고한 서평을 통해 ‘1Q84’를 호평했다. “결점이 없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 결점이 바로 매력의 일부다. 나는 다른 작가들의 깔끔한 성공보다 무라카미의 실패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낀다.… 그는 가공할 상상력과 뛰어난 지성을 가졌다. 그런 작가는 평범함에서 심하게 멀어지는 실수를 범하게 돼 있다.”

무라카미의 작품에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특정 모티프들이 있다. 가끔 그로 인해 조롱을 당하기도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고양이, 우물, 야구, 재즈 같은 것들이다. 주제로 살펴보면 무라카미의 작품은 인간관계의 복잡성, 섹스, 자아발견, 서양 문물이 일본에 미친 영향, 폭력,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반향 등을 다룬다. “거대한 폭력 행위로부터 발생하는 현대사회의 기괴함과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고 문학잡지 그란타 편집장 존 프리먼은 말했다. “그의 작품은 괴물들과 지진으로 가득하다.”

프리먼은 무라카미가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거나 평단의 호평을 받기 어려운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로 그의 이야기는 즉흥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런 것처럼 여겨진다. 둘째로 “그의 작품에는 익살과 해학이 있는데, 그런 요소를 가진 작가들은 단기적으로 항상 저평가된다.”

일본의 많은 무라카미 팬들은 2012년 노벨문학상이 중국 소설가 모옌에게 돌아갔을때 실망을 표했다. “다른 아시아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차지하기까지 수 년은 걸릴 것”이라고 번역가 필립 개브리얼은 내게 말했다. “그러나 4~5년 내에 무라카미가 유력 후보자로 나오더라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워싱턴 포스트의 서평 전문칼럼니스트 마이클 더다는 “노벨문학상 수상에 불리한 점이 없진 않다”고 말했다. 일단 무라카미는 다른 작가에 비해 비교적 젊다. “아마 그보다 더 큰 장애물은 그의 소설이 아주 인기가 많고 읽기 쉽다는 점일 것”이라고 더다는 분석했다. “그러나 무라카미가 지속적으로 질 높은 작품을 써낸다면 결국 언젠가는 노벨문학상을 받으리라고 본다.”

무라카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려면 설명 없이 끝나는 사건들을 얼마나 참아낼 수 있는지가 관건일지도 모른다. LA타임스의 평론가 데이비드 울린은 무라카미가 “누구나 겪게되는 일반적인 부조리를 짚어내기 위해 이야기 속에 특수한 부조리를 삽입한다”고 생각한다. “삶은 이상하고 이해 불가능하며 부조리한 일은 항상 일어난다.”

조너선 프란젠이 말했듯이 무라카미에게는 “강렬한 상상력”이 있다. 그러나 이는 그의 한 극단적 일면일 뿐이다. 또 다른 일면은 “아주 조용하고 일상적이며 흔한 일본식 이야기 전개”다. 그는 무라카미의 작품 일부는 한쪽 면에 지나치게 치우쳤지만(초기 작품들은 너무 강렬하다) ‘태엽 감는 새’에서 균형을 이뤘다고 평했다.

그 작품은 프란젠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 속 응어리들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됐다. “나는 인간 심리를 깊이 파고드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런 소설을 읽으면 내가 극복했다고 생각한 과거를 사실은 전혀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프란젠은 말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일들을 발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 그 대신 나는 내면을 파고든다. 마음 깊은 곳의 구멍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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