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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ment - 인생 2막의 낙(樂) 마쓰리(지역 축제)마저 불황

Retirement - 인생 2막의 낙(樂) 마쓰리(지역 축제)마저 불황

장수사회 고립 문제 해결한 생활공동체 사양길 … 노인의 사회 참여 기회 줄어
일본 도쿄의 갓바바시 마쓰리. 은퇴 노인이 손쉽게 참여하던 유력한 지역공동체이던 마쓰리가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일본은 ‘마쓰리(祭り)’의 나라다. 일상에서 이걸 빼곤 설명하기 힘든 일본적 키워드다. 한국말로 바꾸면 ‘지역 축제’ 쯤 된다. 거의 모든 동네에 지방색을 녹여낸 마쓰리가 있다. 일본에선 1년 365일 마쓰리가 열린다는 말까지 있다. 본격 시즌은 여름이지만 나라 모양이 길쭉하니 겨울 축제도 수두룩하다.

경기침체로 축소·폐지된 마쓰리가 늘었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역사는 길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교토의 기온마쓰리(祇園祭)는 869년에 시작됐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요즘엔 확실히 대중 축제로 바뀐 분위기다. 열혈 참가자는 마쓰리를 기준으로 1년 일정표를 정할 만큼 인기다. 마쓰리에 필수인 대형 가마의 끈을 나눠지고 화합을 외치는 풍경은 일본인에게 중요한 삶의 요소다.



마쓰리는 화합 북돋는 대중 축제마쓰리의 출발은 농촌사회였다. 풍년을 기원하거나 재해를 극복하는 집단 에너지를 모을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마쓰리로 연결됐다. 최근엔 도시 마쓰리도 성황이다. 도시화로 전입 인구가 늘자 1970년대부터 도심에서도 특정 동네 성격을 반영한 마쓰리가 속출했다. 시공간을 넘어선 자생적 변형이다. 농촌과 달리 신앙·종교적인 색채는 옅다. 이는 많은 참가자를 흡수한 원동력이 됐다. 지역사회 구심점 역할을 자처하는 상점조합이 주체로 활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마쓰리는 단순 축제가 아니다. 그 안엔 많은 노림수와 기대 효과가 있다. 경제 효과를 비롯해 지역 단합은 물론 저성장·고령화의 트렌드를 이겨내려는 목적도 강화됐다. 길어야 일주일인 마쓰리는 단기간에 엄청난 수요를 발생시킨다. 축제 기간 인근 지역의 상권 매출은 평소보다 6배로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는 통계도 있다. 도호쿠(東北) 6대 마쓰리에서만 1800억엔의 경제 효과(2009년)가 계측됐다. 단 2~3일에 수백만이 찾는 마쓰리도 흔하다.

또 다른 마쓰리 개최 효과는 지역유대 강화다. 어쩌면 이게 경기 부양보다 훨씬 큰 승수효과를 발휘한다. 지역사회의 끈끈한 연대 부활로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웃과 관계 복원으로 지친 심신을 위로할 수 있다. 죽은 동네 상권을 되살리는 데도 한 몫 한다. 동네 인근의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로하는 역할도 한다.

특히 ‘잉여(剩餘) 인간’으로 전락하기 십상인 은퇴 인구를 위한 안전망이다. 공동체의 부활에 도움이 된다. 현역 은퇴 후 고독에서 벗어나려면 지역사회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의 온갖 피로·갈등 문제는 공동체 차원에서 해결하는 게 실질적이고 합리적이다. 정부 재원이나 복지 체계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마쓰리를 네트워크 파워, 즉 지역력(地域力)을 되찾는 유력한 방안으로 보는 이유다.

그럼에도 전망은 밝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쓰리는 쇠퇴하는 모습이다. 주요 언론이 기획기사에서 마쓰리 부활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상황은 녹록잖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찬물까지 끼얹었다. 협찬금을 비롯한 비용 마련이 어려워졌다. 일부 대형 마쓰리는 여전히 엄청난 집객력을 발휘해도 중소 도시의 마쓰리는 대부분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

이에 따라 지역사회의 활력을 되살려 내수 부양을 꾀하려는 일본 정부가 마쓰리 부활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전 세계를 지배한 이후 사회안전망이 적잖이 깨졌다는 점에서 복지 차원에서라도 지역력 복원이 절실하다. 각종 비영리 민간단체를 위시한 사회단체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시장실패 탓에 살맛을 잃은 고령 인구를 비롯한 복지 사각지대의 사람을 껴안으려는 작업이다. 다만 성과는 별로다. 한번 깨진 네트워크를 되돌리기란 그만큼 어렵다. 도시화와 개인화로 네트워크가 끊어진 인구도 급증세다. 이들이 상호부조의 공동체 울타리에 들어서기란 만만찮다. 뚜렷한 대안이 없는 만큼 저성장·고령화의 파고를 넘어설 긴요한 카드로 마쓰리가 성공해야 하는 이유다.

일본 사회는 원래 끈끈한 네트워크의 전형이다. 공동체 의식이 상당했다. 서로 도우며 문제를 해결하는 공고한 지연(地緣)을 자랑했다. 집단주의로 불리는 공간적 구분 의식이 상당히 강해 집단 구성원으로서 역할과 만족감이 대단했다. 집단에서 빠진 개인은 살아가기 힘들었다. 개인보다 집단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지배적이었다. 개인 능력보다 회사 간판을 따지는 건 지금도 여전하다. 거래처 담당자를 부를 때 이름 대신 ‘도요타씨’니 ‘미쓰이씨’니 하며 회사 이름에 사람 호칭을 섞어 부를 정도다.

좀 더 나아가면 국가·사회 자체를 하나의 집으로 보는 가부장적(천황→관료→국민) 종적(縱的) 체계도 공동체적 지연에서 비롯됐다. 이는 전쟁 발발의 근거로 작용한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다. 결국 일본에선 혈연 못지 않게 지연(조직)을 중시한다. 집단을 중시하니 튀면 곤란하다. 이들에게 지역사회란 집단과 일체감을 확인하는 장소다.

혈연보다 중요한 지연 조직이 붕괴되면 그만큼 위기의식이 커진다. 게토(중세 이후 유럽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거주지역)처럼 분리된 채 가족·지역과 연결고리·연대감이 약화되는 것이다. 예컨대 고독사야말로 지연·공동체 파괴의 대표 사례다. 더구나 공동체 붕괴는 시골 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화·폐쇄화·고립화는 지역 불문하고 열도 전체의 공통 문제다. 안타까운 건 정확한 진단 파악조차 어렵다는 점이다. 가령 고독사도 정확한 정의와 통계가 없다.

희박한 연대감은 무연(無緣)사회의 확산 우려를 심화시킨다. 이미 일본 사회는 주민 스스로 통감할 정도로 지역연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 어느 지역이든 화두는 크게 두 가지다. 홀로 사는 고령인구 증가와 이들을 중심으로 네트워크에서 제외된 친교·연대 부족이 그렇다. 때문에 관습적인 상호부조는 이미 옛 일이 됐다. 자랑거리였던 지연 기반 생활공동체의 상징인 마쓰리의 불황이 가속화하면서 장수대국의 불안이 위험 수위에 달했다.



이웃과 교류 갈수록 줄어은퇴 이후 지역사회와 유대를 강화하는 건 장수사회의 고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긴요한 장치다. 일본에서는 마쓰리가 그런 역할을 했다. 현역 시절 경험·노하우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면서 인생 2막을 즐기는 무대가 됐다. 마쓰리의 붕괴로 노인의 사회 참여기회는 더욱 줄었다.

일본 노인의 사회 참가는 빈도·열의가 감소 추세다. 『고령사회백서(2010년)』를 보면 이웃과 교류는 갈수록 준다. 친하게 지낸다는 응답은 1988년 64%에서 2008년 43%로 줄었다. 그 대신 간단한 인사 정도만 나눈다는 사람은 31%에서 51%로 늘어났다. 인사는커녕 교류조차 없다는 응답도 6%다.

대안은 취미 활동과 연계된 적극적인 사회활동 참가다. 그나마 다행인 건 60세 이상 노인그룹의 60%가 외부 활동에 참가한다는 통계다(2008년). 1998년 답변(44%)보다 16%포인트 늘어났다. 내용은 건강·스포츠(31%), 지역 행사(24%), 취미(20%), 생활환경개선(11%), 교육·문화(9%) 등 다양하다. 집단 모임이 삶의 만족을 높인다는 입소문 덕분이다. 다만 지역 이슈에 관심이 많은 비영리 민간단체는 아직 참가율이 낮다. 참가율이 4%에 머물며 ‘관심은 있지만 잘 모르겠다(43%)’와 ‘관심 자체가 없다(37%)’는 답변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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