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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PLOMACY - 풍랑 속의 한일 관계

DIPLOMACY - 풍랑 속의 한일 관계

일본과 중국은 반드시 충돌한다. 한국의 선택은?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10일 브루나이 인터내셔널 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 리커창 중국 총리와 함께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먼저, 두가지 예를 통해 안보와 관련된 한국의 위상과 현실인식의 정도를 알아보자.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Collective Self-Defense)을 행사할 경우 세계 각지의 활동에서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월 16일 알려진 호주 외무장관 줄리 비숍의 발언이다. 도쿄에서 이뤄진 기자회견을 통해 밝혀졌다. 미국에 이어 호주 정부도 일본이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말은 최신 시사용어처럼 와닿는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일본의 동맹국인 미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도 함께 행동에 나선다’ 로 압축될 수 있다. 평화헌법에 묶여 열도 주변을 지키는 자위 수준에 그치던 과거의 일본군이 아니다. 동맹관계인 미국을 돕기위해 세계 구석구석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겠다는 것이 집단적 자위권의 핵심이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미국은 현재 전세계에 전선을 가진 나라이다. 멀리는 중동, 아프리카, 남미, 유럽부터 가까이는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수십,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전선을 갖고 있다. 미국을 도와 글로벌 차원의 작전에 들어가겠다는 것이 일본의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범주에서, 어떤 작전을 펼칠지는 앞으로 미일 협상을 통해 구체화될 것이다. 전반적인 상황을 볼 때, 미국은 일본의 역할에 대해 큰 기대를 갖고 있다.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집단적 자위권을 발휘해 달라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한국에서는 우향우의 화신 아베 신조 총리가 군사대국에 앞장 선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좀더 거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은 섬하나를 탈환하기위해 수천명의 희생자를 감수해야만 했다. 일본의 재무장에 대해 가장 염려하고 조심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일본 재무장은 미국의 지지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스스로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오래 전부터 시작된 미국의 요청에 맞추는 형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집단적 자위권을 미국이 공식 지지한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한국 신문·방송의 반응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왜 미국이 일본을 지지하는가?’라는 식의 반응이 주류이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상황을 안다면, 집단적 자위권의 배경에 미국이 있다는 것은 너무도 상식적이다. 굳이 놀란다면, 새삼스럽게 미국이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언급했다는 점이 이상스러울 뿐이다.



다이아몬드 구상필자의 예측이지만, 가까운 시일내에 또 하나의 아시아의 대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할 것이다. 한국 언론이 또 놀랄지 모르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상황이다. 주인공은 인도다.

인도는 아시아 제국 가운데에서도 일본과 가장 가까운 나라 중 하나다. 일본이 세운 괴뢰국 만주를 가장 먼저 승인했고, 태평양 전쟁 후 전승국 논리에 의한 전범처리에 반대한 나라가 인도이다.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시 ‘동방의 등불’의 저자인 타고르는 친일 인도인의 대명사이다. 백인에 맞선 전쟁을 성전(聖戰)으로 극찬한 시인이다. 언제부턴가 한국은 일본 연예인이나 한물간 우익 인사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위터를 통해 식민지를 찬미하는 글을 남긴 일본 만화가에 관한 기사가 신문 지면을 도배하는 판국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도 쉽게 넘어간다. 인도가 왜? 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최근의 국제 정세를 보면 이미 그 답은 나와 있다. 한국 언론의 관심 밖에 있는 ‘다이아몬드(Diamond) 구상’이 정답이다.

원래 ‘민주주의에 기초한 다이아몬드 전략(Democratic Security Diamond)’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아베가 2007년부터 부르짖은 새로운 군사전략이다. 간단히 말해 미국 하와이, 일본, 호주, 인도 네 나라를 엮는 군사 방어망이다(위 그림 참조). 미국의 동맹국이자, 다이아몬드 권내에 들어가는 한국은 협력대상국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이아몬드 구상의 작전범위를 보면 그 의도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해상국가로 발돋음하려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4개 국간의 준 군사협력 구도다. ‘민주주에 기초한’이란 형용사가 다이아몬드 구상 앞에 붙는다는 것만 봐도, 공산 1당 독재국 중국을 겨냥한 집단방어망이란 것을 알 수 있다.

10월 9일 오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민족단체진영 대표자들이 ‘미국과 일본의 외무, 국방장관 합의문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미일안보협의위원회가 발표한 ‘일본의 유사시 집단자위권 발동’에 대한 합의문은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라고 말하며 파기할 것을 주장했다.
중국과 달리 일본·인도·미국·호주는 민주주의 가치관에 기초한 이념의 동맹국이란 점이 강조되고 있다. 사실 집단적 자위권의 출발점은 다이아몬드 구상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언젠가 전 세계로 나가겠지만, 집단적 자위권이 시행될 최초의 무대는 다이아몬드 권내가 될 것이다. 일본의 센카쿠(尖閣중국명:댜오위다오) 열도를 비롯해, 중국이 아시아 제국과 해상영토 분쟁을 빚고 있는 지역이다.

미국에 이어 호주, 이후 인도가 집단적 자위권의 지지자로 나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다. 사실 다이아몬드 구상을 둘러싼 일본의 외교력은 지난 10월 초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통해서도 충분히 발휘됐다. 박대통령의 정상외교에 가려져 한국 언론 대부분이 무관심하게 봤던, 일본·호주·미국 3국간에 이뤄진 공동성명이다.

“남중국에서의 국제질서를 무너뜨리려는 그 어떤 위압적인 행동에도 반대한다.” 남중국 해상에서 패권을 노리고 있는 중국에 대한 노골적인 경고인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 불참으로 인해 APEC에서 미국 위상의 하락이 염려된다는 분석기사가 적지 않다.

미국이 없는 틈을 중국이 발빠르게 치고 나간다는 식의 글도 많다. 필자는 다르게 본다.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 가능성은 있지만, 중국이 빈자리를 치고 들어간다는 것은 두고 볼 사항이다. 미국, 나아가 인도와 호주를 등에 업은 일본이 그같은 상황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F-35와 한국의 정세관안보를 대하는 한국의 현실인식과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두번째 예로 F-35 전투기를 빼놓을 수 없다. 록히드 마틴이 만든 전천후 수직이착륙 전투기로, 기본형인 F-35A의 가격은 무려 1억 5000만달러에 달한다. F-35 비행기 전면광고는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같은 미국 유력지를 통해 자주 접할 수 있다. 보기에도 날렵하게 보이는, 최첨단 비행기가 지면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전투기 전면광고는 일반시민과는 무관하다. 국방예산삭감에 들어간 미국 정부에 어필하기위한 광고라 볼 수 있다.

한국인 입장에서 워싱턴포스트의 F-35 전면광고를 보면, 한가지 의아스런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비행기 사진 바로 밑에 실린, 글로벌 파트너(Global Partners)에 관한 부분이다. F-35 전투기를 함께 만들거나, 구입할 나라들을 글로벌 파트너로 소개하고 있다. 미국 성조기와 함께 영국·호주·이탈리아·캐나다·노르웨이·터키·덴마크·스웨덴·일본·이스라엘 등 11개 나라 국기가 그려져 있다.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거나 군사적으로 가까운 나라만이 글로벌 파트너로 선정됐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이다. 글로벌 파트너 속에 없다. 필자는 군사 전문가가 아니다. 한 대에 무려 1500억원에 달하는 F-35가 얼마나 뛰어난 성능을 가진 전투기인지도 잘 모른다. 단지, F-35 전면광고 속의 글로벌 파트너에 미국 동맹국 중 하나인 한국이 없다는 점이 너무도 이상하게 느껴진다.

규모는 물론 질적으로 볼 때도, 스웨덴·네델란드·덴마크는 한미 군사동맹에 비할 바가 못된다. 두 세대 전 함께 피를 흘리며 싸운 것은 물론,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굳건한 동맹으로 자리잡고 있다. 군사기술적으로 볼 때 한국은 터키·호주·싱가포르보다도 한 수 위에 있다. 미국이 총력을 기울여 생산하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동맹국 한국의 그림자가 없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미국이 F-35 전투기 개발과 생산에 들어가기 전 전 세계 우방국들에게 참여나 구입의사를 타진한 것은 당연하다. 함께 전투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중에 좋은 조건으로 ‘특혜’를 준다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한국은 그런 ‘give and take’의 영역 밖 존재로 남게 된다. 그 결과 글로벌 파트너 리스트에서 배제돼 있다. 인구 530만 명에 불과한 싱가포르와 군사기술 대국 이스라엘도 참가하는 판국인데 한국은 논외다.

필자는 한국의 F-35 전투기 구입여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1대 값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한국 라면의 총수출액과 맞먹는 상황이지만, 구입할 만한 가치가 있을 지 여부는 관련 전문가가 따지면 된다. 문제는 ‘왜 비행기가 개발된 초기단계부터 참가하지 못했던가?’라는 점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반미 정서가 주된 답이라 생각된다.

F-35가 개발에 들어간 시기는 노무현 정권의 집권 시기와 맞물린다. 어떤 식으로든 한국에도 참가의사를 타진했으리라 생각되지만, 한국의 반응이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새삼스럽게 이미 고인이 된 대통령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반미를 하든, 친미를 하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면서 주장을 펴는 것이 현명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감정적 차원에서 대응할 경우, 그 피해는 이후 반드시 나타난다.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 백지화되면서 F-35 전투기 구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전망이라고 한다. 진작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길 불이익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핵심은 결국 돈과 기술이다. 반미든 반일이든, 국민들의 선택이라면 그대로 밀고 나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카드를 전부 내리거나, 문을 꼭꼭 닫을 필요는 없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처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최근 한국은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참가를 적극화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동안 가입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던 것이 한국이다. 중국을 겨냥한, 일본과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연합체이기 때문이다. TPP는 자유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한 경제협력체다. 국영기업의 지원을 받는 중국은 가입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가입할 경우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지향하는 TPP의 조건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경제를 지향하는 한국이 TPP 가입에 반대한 것은, 중국을 의식한 방침이라 볼 수 있다. 중국을 적으로 만드는 경제협력체에 들어갈 경우 어떤 불이익이 닥칠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국의 이익보다 중국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현실이다. 뒤늦게 TPP에 들어간다는 것은 협상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차려진 밥상에 끼어들려면 그만한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F-35와 같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10월 3일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왼쪽)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미일 안보회의 참석 후 도쿄 총리 공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면담했다.





21세기 지정학의 무대가 된 동북아21세기 동북아는 20세기를 풍미했던 구시대 이데올로기의 대결장처럼 느껴진다.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 헤로도투스의 저서 ‘역사’에서부터 논의된 지정학이다. 기원전 499년부터 50년간 벌어진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지리적 환경이 민족과 국가 번영의 주된 요소로 떠오른다. 지리와 정치를 연결하는 지정학은 제국주의 시대 이래 20세기 냉전이 끝날 때까지 전 세계를 지배한 이데올로기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글로벌시대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IT혁명이 일어나면서 국제정치 무대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다시 부활한 것은 21세기 동아시아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일본·한국·중국, 그리고 남중국해를 잇는 해상 루트이다. 아베가 주장하는 다이아몬드 구상권을 중심으로 한 해상권이 지정학의 새로운 연구 테마로 자리잡게 된다.

한국은 지정학의 영향을 가장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일제의 식민지, 냉전과 함께 시작된 한국전쟁은 지정학적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는 역사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은 지정학이 몰고올지도 모를 엄청난 광풍에 무심하다. 2013년 가을, 주변국을 아우르는 한국의 중심 화두는 역사 문제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 역사는 과거사를 의미한다. 박 대통령이 주도하는 과거사 청산문제로 인해 ‘역사=일제의 만행’으로 해석된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당했던 어제의 고통은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생생히 살아있다. 역사를 일제의 만행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의 입장은 타당하고 정의롭다. 일본 역시 ‘역사=과거의 잘못’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다. 전쟁터에서 패잔병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둔 세대, 즉 단카이(団塊)가 반성론의 핵심에 선 사람들이다. 친한·친중의 채널을 유지해온, 전후 일본의 양심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단카이 세대는 최근 정년퇴직과 함께 일본내에서의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아무리 높은 위치에 올라섰다 해도 자리에서 물러나는 즉시 힘이 빠진다. 아베의 우향우 행진은 ‘역사=과거의 잘못’으로 받아들이던 세력들이 사라지면서 나타난 세대교체의 증거이기도 하다. 한국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역사’를 ‘과거의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을 찾아내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중국군이 지난 2년여 간 공을 들여 개발한 게임 ‘광룽스밍(光榮使命)’에서 중국 첫 항공모함 랴오닝 호가 센카쿠를 공격하는 장면. 최근 이 게임의 온라인 버전이 출시돼 일반인이 항공모함을 타고 센카쿠에 있는 일본 기지를 공격하는 것을 가상 체험해 볼 수 있게 됐다.
박 대통령의 과거사 청산문제는 바로 이같은 배경에서 나타난 외교 카드이다. 일본 전체가 무심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 자격으로, 한국 신문에 기고하거나 방송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세히 보기 바란다. 대부분 단카이들이다. 한국에 관심을 갖고 격려하는 것은 너무도 고맙지만, 사실 일본에서의 발언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한국에 어필하는 것이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에서는 ‘역사=과거의 잘못’이라는 식의 생각을 펼 곳이 사라진 상태다.



과거를 대하는 한일 간의 시각차2013년 일본인들이 말하는 역사는 ‘태평양 전쟁 패전의 원인’이란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왜 무모하게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군인 230만·일반시민 80만에 달하는 일본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가’에 관한 문제가아니다. 간단히 말해 ‘왜 졌는가?’라는 점에 모아진다.

미국을 적으로 하면서 어제의 치욕을 갚자는 것이 아니다.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태평양전쟁의 교훈을 얻어내자는 것이다. 과거사를 통한 반성, 나아가 군국주의의 자랑도 아니다. 과거사를 통한 생존전략 확보가 최대의 현안이다. 사실 현재 아베가 벌이고 있는 모든 외교·군사 정책의 초점은 ‘왜 졌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볼수 있다.

집단적 자위권을 시작으로, 일본 내각 기관의 정보를 통합운영하는 미국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창설, 미일동맹을 축으로 하면서 확대되는 다자간 군사협력 체제, 사이버 안보와 우주전쟁에 대비한 테크놀로지 향상, 해병대 창설 같은 것들은 ‘왜 졌는가?’에 대한 해결 방안에 해당된다. 종군위안부 문제나 전시 노동자 보상에 관한 문제는 관심 밖이다.

‘왜 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일본인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지정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일치하는 답이 하나 있다. 해상보급 루트에 관한 문제다. 전쟁에 들어가기 직전 일본 육군과 해군은 미국과 일본의 국력차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1941년 기준으로 석유가 1대 72, 철강이 1대 18, 국민소득이 1대 13으로 절대 열세였다. 종합적인 차원에서 조사한 결과 일본과 미국의 국력차는 무려 721배에 달했다.

정신이 나가지 않은 한 721배나 큰 나라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육군과 해군이 개전에 들어간 것은 동남아시아 자원 때문이다. 일본 해군이 진주만 공격에 들어간 것은 1941년 12월 7일 아침이다. 육군은 곧이어 동남아시아로 진격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불과 6개월 만에 동남아시아를 지배하던 미국·네델란드·영국·호주를 밀어냈다. 한꺼번에 영국인 2만 명을 포로로 잡기도 했다. 일본군들은 포로들에게 왜 자살하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전쟁에 질 경우 자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포로에 관한 유명한 영화 중 하나가 데이비드 린 감독의 ‘콰이강의 다리(1957년작)’다.

개전 후 일본은 승리할 것처럼 보였다. 721배나 큰 대국을 상대로 싸웠지만, 동남아시아로부터 전쟁 물자를 실어나르면서 별 문제가 없을 듯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1943년 들어 급변했다. 보급선 차단이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당시, 미국은 대서양에서 고전을 하고 있었다.

독일 잠수함 U보트가 유럽으로 향하던 미국 수송선과 함대를 공격하면서 해상전선이 동부에 집결된다. 일본은 그틈에 동남아시아에서 승승장구한 것이다. 전쟁 후 1년이 지나면서 미국은 독일 U보트 공략에 나섰다. 대형 호위함을 통한 수송과, 공군기를 이용한 공격이었다. 대서양의 제해권을 미국이 장악하면서 주력 함대가 태평양으로 옮겨갔다.

미국이 가장 먼저 주목한 부분은 해상수송선이다. 싱가포르·사이공·마닐라·대만·도쿄로 이어지는 5000㎞의 해상 보급 루트에 군사력을 총동원했다. 수송선 공격에 나선 것은 잠수함이다. 아인슈타인 박사가 개발했다는 S-J 레이더를 통해 원거리에서 수송선을 포착한 뒤, 어뢰를 날리는 식이었다. 개전 당시 일본은 600만t에 달하는 선박을 보유하고 있었다. 군용으로 300만t, 물자수송용으로 300만t씩 이분화했다.

일본은 매년 10%, 즉 60만t 정도가 적의 공격으로 침몰할 것으로 전망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당한 피해 규모에 기초한 통계다. 그러나 실제는 전혀 달랐다. 1941년 96만t, 1942년 169만t, 1943년 392만t의 선박이 물에 가라앉았다. 신형 잠수함이 개발되면서 일본의 해상 보급 루트는 미국의 손에 넘어갔다. 1945년 8월 15일 당시 남아 있던 일본의 선박보유 규모는 30만t에 불과하다. 95%가 미국의 공격에 의해 사라졌다. 몰살이라 보면 된다.

잘 알려진대로 일본 육군대신 아나미 코레치카 장군은 패전 당일까지 1억 결사항전을 부르짖은 인물이다. 옥이 부서질 때 나는 아름다운 빛과 소리처럼 모두 함께 죽자는, 이른바 옥쇄(玉碎)를 마지막까지 주장했다. 해상 보급 루트가 막히면서 해외 전선에서는 불리하지만, 일본 내에서 싸울 경우 승산이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 내에는 학도병 무장군인을 비롯해 150만의 병력이 존재했다. 1억 명 모두가, 상륙하는 미군 한 명씩만 살해해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아난 장군의 생각이었다.

정상이라 볼 수 없는, 거의 반 정도 미친 판단이지만, 당시 육군 지도부 중 상당수가 1억 옥쇄를 믿었다. 항복 소식이 알려지자 육군의 일부는 쿠데타에 나서기도 했다. 반면, 해군은 전함 격침과 보급선 차단을 통해 패전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시골 출신이 주축인 육군은 해군과 달리 돌아가는 현실에 둔감했다. 천황이 포츠담선언 수락을 명하자 아나미 장군은 곧바로 집에 돌아가 자살한다. 8월 15일 아침 7시 10분이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한반도에서는 기아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일본 열도에서는 아사자가 속출했다. 해상 보급 루트가 차단돼 식량을 옮기지 못하면서 빚어진 비극이다. 일본 군인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해상 보급 루트가 차단될 경우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를 몸으로 체험한 셈이다.

‘왜 졌는가?’에 대한 답으로 해상 보급 루트 확보에 대한 중요성이 상식처럼 정착된 것이다. 2012년 9월 11일, 일본 정부는 센카쿠 열도 내 3개 섬을 20억 5000만 엔에 구입했다. 원래 도쿄도 이시하라 신타로 전 지사가 구입하겠다고 말했지만, 정부가 대신 구입했다. 이후 일본과 중국은 길고 긴 영토분쟁에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센카쿠 문제는 섬 주변의 자원개발을 둘러싼 분쟁으로 받아들여진다. 베트남·필리핀에서의 해상분쟁처럼, 중국이 남중국해의 자원개발을 독점하려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본은 다르다. 중국이 조직적으로 벌이는 해상 보급 루트 차단이란 차원으로 해석한다. 멀리 중동의 석유를 비롯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자원과 식량 수송을 차단하려는 차원에서의 도발로 받아들인다.

일본인 입장에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일본의 급작스런 우향우 바람은 일본 내 우익의 발현이라기보다, 중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 센카쿠의 위치를 보면 일본으로 향하는 해상 보급 루트와 일치한다. 중국이 차지할 경우 주변에 대한 무력시위와 함께 일본의 생명선이 위협받게 된다. 일본으로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2012년 4월 워싱턴 헤리티지 재단에 들린 이시하라 전 도쿄도 지사. 헤리티지에서의 연설을 통해, 도쿄도의 센카쿠 구입의사를 처음으로 밝혔다.





일본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생명선센카쿠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도 강경하다. 센카쿠는 지도상으로 볼 때 대만에 가깝다. 대만 본토는 논외로 치더라도, 부속도서를 중국령이라 주장하는 것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그러나 일본을 연합군최고사령부(GHQ) 점령으로부터 해방시킨 샌프란시스코 조약체결 당시 센카쿠는 일본의 영토로 확정됐다. 중국 공산당은 자국이 참석하지 않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따를 수 없다고 말한다. 전승국 자격으로 대만이 참석해 추인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법에 따르면 중국의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국제법이 아닌 중국식 세계관으로 해결하려 한다. 경제성장이 한계에 이르러 중국 내 모순이 표면화되면서 반일 민족주의는 좋은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일본 역시 센카쿠 문제에서 조금의 양보도 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보면, 중국과 일본은 가까운 시일내에 충돌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들어서 있다. 정부 차원의 계산된 충돌이라기보다 우발적으로 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 센카쿠다. 잘 알려져 있듯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직 지방과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다. 충칭시 서기 보 시라이 사건에서 보듯 중국 남서부에 대한 통치력이 매끄럽지 못하다.

중국 군부는 마오쩌둥 이래 계속된 단위(單位) 차원의 전술전략에 익숙해 있다. 항공모함을 사들이고 최신예 짝퉁 비행기를 만들고 있지만,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중앙통제식 군사전략엔 익숙하지 못하다. 중앙 정부의 명령이 아니라, 세상물정 모르는 지방의 군인들이 주축이 된, 단발적이고 자극적인 형태의 분쟁이 센카쿠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만약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어떤 상황이 닥칠까? 집단적 자위권은 미군을 도우려는 일본군의 충정에 그치지 않는다. 거꾸로 해석하면 일본이 도와줄테니, 미국도 일본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같은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을까? 센카쿠로 이어진 해상 보급 루트는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도 공유하는 해상 라인이다.

센카쿠 무력충돌이 장기화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한국이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보급 루트 차단이 발생할 경우 어떤 대응책이 고려될 수 있을까? 극단적으로, 센카쿠가 영원히 중국 손에 넘어간다고 할 때, 머지 않아 직면하게 될 한중 국경분쟁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센카쿠 문제는 중국에 맞선, 일본·미국 나아가 호주·인도 4국간 대응구도로 굳어지고 있다. 한국의 박 대통령은 이같은 상황 속에서 과거사 반성과 해결책을 전제로 한일 회담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란 거창한 명분으로 중국에 함께 대응하자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물론 한국이 중국에 맞서기 위해 일본과 연계할 필요는 없다. 또 과거사 문제로 일본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공동 전선을 펼 필요도 없다.

중국은 중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만나고 함께 공유할 부분을 나누면 된다. 한 쪽을 취하면서 다른 한 쪽을 버리는 식의,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전략은 안 하는 것만 못하다. 10월 10일 아세안(ASEAN) 플러스+3에서 박 대통령은 리커창 중국 총리를 만났다.

한국 언론은 대화를 원하는 아베의 간곡한 요청을 무시한 채 한중 간의 우정과 결의를 다진 환담이라고 보도했다. 자세히 보니 20분 만났다고 한다. 통역 빼고 10분간 만난 자리에서 무슨 심각한 이야기가 오갔는지 궁금하다. 리커창을 만난 20분을 자랑하기보다, 그 시간에 아베가 아세안 다른 나라 정상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살펴보는 것도 현명할 듯 하다.

2012년 8월 16일 중국 상하이의 일본영사관 앞에서 한 중국 여성이 전날 센카쿠 열도에 상륙했다가 일본에 체포된 중국인들을 석방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동맹을 통한 외교의 힘동맹 관계에 기초한 외교정책은 근현대 국제정치의 기본이다. 일본은 그런 기본을 충실히 지켜온 모범생이다. 1902년 체결된 이래, 1923년까지 이어진 3차에 걸친 영일동맹, 1905년 미국의 전쟁담당 장관 태프트(Taft)와 맺은 가쓰라-태프트 조약, 1941년 3월 1일 맺어진, 미국을 적으로 한 독일·이탈리아간의 3국동맹,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자국에 원자폭탄을 2발이나 투하한 미국과의 동맹.

자국의 주장을 관철해 나가고 이익을 보장받기 위해 끊임없이 외국과의 관계 증진에 나선 것이 일본 외교사의 어제와 오늘이다. 2020년 올림픽 개최지가 도쿄로 결정된 뒤에는, 경쟁국이었던 스페인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와 만나, 스포츠 분야에서의 협조관계를 논의했다.

미국과 호주가 집단적 자위권 지지에 나선 데 이어, 10월 16일에는 영국의 윌리엄 헤이그 외무장관이 도쿄에 들러 일본의 입장에 손을 들어줬다. “국제 안전보장 분야에서 일본이 보다 활발히 역할을 다해 줄 것을 기대한다.”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현재 일본이 보여주는 발빠른 변신과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 체결 당시보다 한층 위력적이고 폭넓다.

지정학이 다시 무대에 오르고 일본이 미군의 2중대로 나가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한국의 미래를 안전하게 만들어 줄 유효한 카드는 무엇일까? 과거사 문제를 통해 일본으로부터의 ‘도게자(土下座, 상대방에게 사죄하기 위해 큰절하듯이 무릎을 꿇고 자세를 숙이는 행위)’를 받는 것이 지금 한국이 안심할 수 있는 길일까? 유일한 길은 동맹관계다.

한국이 쌓아온 미국과의 60년간의 군사동맹만이 현재의 어두운 무대를 밝혀 줄 등불이다. 바쁠수록, 정신이 없을수록, 변수가 복잡하게 움직일수록 기본과 원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9월 27일 서울에서 열린 정치학회에서 한 중국인 학자는 “한미동맹이 미중 관계 개선에 기여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필자의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 서울 한복판에서 이뤄졌다.

거꾸로 말하자면, 미중 관계 개선에 기여하지 못하는 한미동맹은 의미가 없고 중국으로부터 불만만 살 것이란 의미이다. 중국인의 주장은 마치 200년 전 중화사상에 젖은 청나라 사신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중국의 이익에 도움이 안 될 경우, 조선은 아무 것도 하지말라!”

한미동맹은 중국을 고려한 동맹이 아니다. 일본을 고려한 동맹도 아니다. 한국과 미국의 공동이익을 위한 군사협력체제다. 그러나 미일동맹이 굳어지면 한미동맹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론적으로 한미일 3국간의 동맹관계에 관한 이야기는 곧 닥칠 현실이다. 과거사 문제에 주목한다면, 한미일 3국 동맹 안에서 논의하는 것이 한층 효과적일 것이다.

세계의 대의명분을 독점하는 주자학적 세계관은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정신적으로도 편할 듯 하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한다. 한국은 이미 근대화 초기에 쓰라린 체험을 한 나라다. 당시의 고질병이 재발하고 있다. 세계를 보자. 동북아 3국 중 하나가 아니다. 눈을 들어 세계를 무대로 한 한국을 키워보자. 시간이 없다.

- 필자 유민호는 에너지 원자력 컨설팅 전문가로 워싱턴 퍼시픽21, Inc 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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