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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HEALTH - 밤이 두려운 아이들

MENTAL HEALTH - 밤이 두려운 아이들

청소년기의 악몽이 정신병의 경고신호일지도 모른다



처크는 평생 동안 생생한 악몽을 꿔왔다. 어렸을 때는 전쟁터에서 공격을 받는 꿈을 꿨다. 주위에 가족들의 시체가 뒹굴고 있었다. 2~3달마다 한 번씩 익사하는 꿈도 꾸곤 했다.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나면 가슴이 쿵쾅거리곤 했다”고 그가 말했다.

악몽은 취학 전 및 초등학교 아동들에게 흔히 일어난다. 어린이들은 종종 쫓기거나 높은 데서 떨어지는 꿈을 꾸다가는 붙잡히거나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놀라 벌떡 깨어난다. 그러나 대다수 어린이는 성장하면서 더는 악몽을 꾸지 않는다. 그리고 최신 연구에 따르면 악몽이 지속될 경우 더 깊은 문제의 조짐일 수 있다.

현재 20세인 처크(가명)는 십대 시절까지 여전히 수시로 악몽을 꿨다. 하지만 괴물에게 쫓기기보다는 사회적 따돌림을 많이 당했다. 익숙한 시나리오의 한 예를 들자면 때마침 지도교수가 참석한 파티에서 벌거벗은 채로 서 있었다. 그리고 “몹시 노출되고 연약한” 기분이었다고 기억한다. 테네시주 멤피스의 대학생이 된 지금도 여전히 악몽을 꾼다. 또한 최근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악몽과 정신병에 연관성이 있을지 모른다고 밝혀졌다. 영국 워릭대 심리학과의 디터 월키 교수 연구팀이 최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9세에 자주 악몽을 꿨던 어린이는 사춘기에 정신이상을 경험할 가능성이 1.5배가량 컸다. 정신이상 체험으로는 망상·환청·환각 등이 있다. 대체로 아동기에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린이들은 현실과 환상을 종종 혼동한다. 그러나 청소년기에는 그런 체험이 더 드물게 나타나며 초기 정신질환의 징후일 가능성이 있다.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정신분열증 증상은 척이 18세 때 처음 나타났다. 친구들이 자신에 관해 학교 당국자들에게 고자질한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또한 기숙사 방에 카메라가 설치돼 하루 24시간 1주일 내내 감시 당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19세가 됐을 때는 “항상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대학에 가서야 진단을 받았지만 일찍부터 망상을 가졌다고 기억한다. 11세 때 자신의 염력으로 이모를 유산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아주 별난 생각이 들곤 했다”고 그가 말했다. “가령 다른 행성의 생명체에 관한 책과 프로그램에 며칠씩 빠져 지내곤 했다.” 15~17세 때는 외계인과의 접촉이 가장 큰 희망이었다. 친구들은 외계 생명체에 대한 그의 집착을 약간 괴이하게 생각했지만 대부분 사소한 기벽이려니 하고 넘겼다고 한다.

한편 대략 2~3개월에 한 번씩 악몽을 꿨다. 십대치고는 빈도가 높았다. 대체로 “통제력을 잃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테마 위주였다고 그가 말했다. 꿈은 고통스러웠지만 부모는 대체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과학자들은 수십 년 전부터 악몽과 정신병 간의 잠재적인 연관성에 흥미를 느껴 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정신분열증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가 환각 다시 말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거나 듣는 일이다. 그것은 “명석몽”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이스라엘 네게브에 있는 벤-구리온 대학의 심리학자 니리트 소퍼-두데크가 말했다. 정신분열증 등의 정신장애가 일어나는 사람은 ‘초경계성’으로 알려진 성격 지수가 더 높다는 초기 가설이 있었다. 수면과 각성 상태의 경계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유동적이라는 의미다.

정신분열증이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악몽을 더 많이 꾸는 편이다.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상당히 많다. 예컨대 2009년의 연구에선 정신분열증이 있는 10대 후반 청소년들은 대조군보다 더 자주 악몽을 꾸었다.

이 같은 연구를 바탕으로 월키 연구팀은 정신분열증의 원인을 파고 들어갔다. 그 뿌리가 소년기의 악몽에 있는지 알아내고자 했다. 1991~92년 영국에서 태어난 어린이 6800명 가까이를 12세까지 추적했다. 그들의 부모에 따르면 아이들 중 75% 가량이 첫 9년 동안 어느 시점엔가 악몽이 빈발하는 기간이 최소 한 차례 있었다. 그 기간 동안에는 수시로 악몽을 꿨다. 그러나 아이들이 12세가 될 무렵엔 최근 악몽을 꾸었다는 비율이 25%선에 불과했다.

마지막 그룹의 아이들은 최근 정신이상을 경험하는 비율이 3.5배 높았다. “이런 일들이 서로 중복된다는 사실은 거의 입증됐다. 이제 가장 큰 의문은 왜 그러느냐는 점이다.” 미국 보훈부의 임상심리학자 에린 코펠이 말했다. 그 연구는 “일종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그녀가 말했다. “수면 이상이 먼저냐 아니면 이들 낮 시간의 증상이 먼저냐?”

답은 ‘둘 다 아니다’일지 모른다. 최근의 연구에선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유발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청소년기의 악몽과 정신이상 증상이 제3의 요인과 연관됐을지도 모른다. 바로 스트레스다.

“악몽은 정신적 외상에 노출됐을 때, 또한 불안하거나 낮 동안 몹시 자극적인 일을 겪었을 때 더 빈번히 일어난다”고 월키가 말했다. 그리고 만성적인 악몽은 스트레스에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각종 연구에서 악몽은 흔히 전쟁과 폭력의 경험, 그리고 빈번히 아동기의 성적 학대에 수반됐다. 반복되는 악몽은 또한 정신적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의 진단 기준에도 속한다.

마찬가지로 정신이상 체험도 불안과 스트레스에서 기인할지 모른다. 예컨대 (정신건강 문제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같은 상실 또는 정신적 충격을 받은 뒤 환청을 들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정신병을 유발하는 스트레스 요인은 아동기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는 경우도 많다.

2012년 환청과 환각을 경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환각을 경험하지 않는 대조군에 비해 아동기에 정신적·성적 학대를 당한 비율이 더 높았다. 청소년기에 정신이상 체험을 하는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발표 예정인 월키의 연구를 포함해 각종 리서치 결과다.

트라우마는 사람들에게 행위주체성의 상실을 유발해 관계를 단절시킨다고 일부 심리학자는 가정한다. 그에 따라 자아를 탈피해 환상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는 주장이다. “PTSD의 주요 증상 중 하나다. 이런 식으로 사건이 되살아나 눈 앞에서 재현될 뿐 아니라 상당히 심각한 악몽을 꾼다.” 논문을 공동 작성한 러트거스대 인류학자 헬렌 피셔가 말했다. “스트레스 요인을 겪고 그것을 적절히 처리하지 못할 때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처크가 5살 때 여자 수영강사가 그를 추행했다고 한다. 또한 고등학교 1학년 전후까지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다. 그리고 남학생뿐인 가톨릭 학교를 다닐 때 공개적인 무신론자로서 왕따를 당하고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의 표적이 됐다고 느꼈다. “맞서고자 하는 의지를 잃었다”고 그가 말했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집에서도 학대를 당하는 어린이는 하루 24시간 내내 두려움과 불확실성에 휩싸여 지내게 된다고 월키가 말했다. “그렇게 온통 스트레스뿐인 세상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겠는가?” 그가 물었다. “따라서 어쩌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거나 또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어떤 일에서나 문제를 보며 그렇지 않은데도 박해를 받는다고 느낀다.”

처크는 지금은 정상적으로 생활한다. 지난 학기 우등생 표창을 받았으며 친한 친구도 많고 많은 활동을 한다. 최근 역도를 시작했으며 올 후반기엔 대회에도 참가할 계획이다. 그러나 그는 비교적 운이 좋았다. 심리치료를 받았으며 진단 직후 그에게 잘 맞는 정신병 치료제를 찾았다.

임상의사들이 정신병 유발 요인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면 정신병 위험군에 속하는 어린이들을 더 일찍 조기 치료 쪽으로 이끌 수 있으리라고 월키 연구팀은 기대한다. “일단 정신이상이 생기면 치료하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피셔가 말했다. 그러나 조기에 치료하면 예후가 크게 좋아질 수 있다고 그녀는 덧붙인다.

아이가 겪는 우울증이나 정신이상 체험 같은 정신적 문제를 부모나 가족이 간과하기 쉽다. 어쨌든 아이들은 무엇이 ‘정상’인지를 모른다. 성인이라면 경고신호로 해석할 만한 경험을 말로 표현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리고 특이한 징후가 나타날 경우 의사들은 면밀하게 모니터해야 한다. 아일랜드에 있는 왕립 외과대학 정신의학자 이언 켈러허의 충고다.

반면 악몽은 알아보기 쉽다. 물론 “악몽을 꾼다고 해서 어린이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신이상 체험을 한다는 뜻도 아니다”고 켈러허가 말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악몽이 지속될 때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가 될 수 있다. 그들의 생활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악몽과 정신이상 체험 간의 연관성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신이상을 경험하는 청소년 중 대다수는 정신분열증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또는 불안장애 같은 다른 비정신병적 장애를 갖게 된다.

그리고 진단에 초점을 맞춘 개입을 고려하기에는 시기상조인 단계라고 피셔는 말한다. 그러나 약물을 이용하지 않는 일반적인 치료법들도 있다. 대처능력과 자존감을 키우고, 탄탄한 후원 네트워크를 갖도록 하는 방법이다(어쩌면 일반적으로 모든 십대에게 유용한 처방이다). 청소년들이 내재적인 스트레스에 대처하도록 도울 수 있는 치료법들이다.

악몽의 공포는 대체로 한때에 그친다. 그러나 팔짱을 낀 채 잘 되겠지 하고 기다리기보다 원인을 알아보는 편이 더 나은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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