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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정수현의 바둑경영 - 미친 전셋값? 과욕에 눈 먼 사람이 문제

Management | 정수현의 바둑경영 - 미친 전셋값? 과욕에 눈 먼 사람이 문제

전셋값이 가파르게 올랐다. 상식을 넘어선 가격 상승이다. 그래서 ‘미친 전셋값’이란 말까지 나왔다. 가격이 왜 미쳤을까.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이것은 단순히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격이 미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미친 것이다. 이런 가격을 만든 우리 사회가 미쳤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전셋값만 미친 것도 아니다. 수억 원 하는 미술품 가격도 좀 이상하다. 유명 작가가 그린 것이면 대폭 올리고 본다. 예술적 가치는 뒷전이다. 강사료도 그렇다. 대학강사는 시간당 수만 원인데 좀 유명해졌다 하면 수십 배, 아니 그 이상을 요구한다.
 상식·양심은 먼 나라 얘기
가격을 결정하는 메커니즘이 이상하다. 실제 가치에 따라 물건 가격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한 것도 아니다. 올릴 틈만 있으면 최대한 뻥 튀겨도 된다는 심리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이는 미친 가격에 사는 사람이 있으니 그럴 것이다. 이익을 볼 수 있다면 최대한 당기고 보겠다는 욕심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상식이니 양심이니 하는 말은 먼 나라 얘기다. 전세가격 상승의 이유는 있다. 금리 인하로 월세 전환이 늘어나면서 공급이 줄어든 것이 주요 원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들이 주택을 구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집값이 오를 것이란 전망이 있어야 집을 살 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과거 자고 나면 집값이 오를 때야 빚을 내서라도 집을 샀지만 현재 부동산 시장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 외에 또 다른 원인이 있다. 우리가 합리적인 경제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친 가격이라고 할 만큼 무자비하게 올려도 되는 사회가 문제라는 얘기다.

물론 물건을 내놓을 때 가격을 최대한 받으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바둑에서도 거래를 할 때 최대한 이익이 되는 쪽을 택한다. 극히 작은 수익인 ‘반집’을 이득보기 위해서 살벌한 대마싸움도 서슴지 않는다. 그렇지만 바둑에는 정도가 있다. 고수들은 절대 미친 가격을 요구하지 않는다. 지나친 이익을 추구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미친 가격을 받으려 하면 상대를 자극하게 된다. 상대가 흥분하면 대판 싸움이 벌어지기 쉽다. 그래서 바둑에서는 ‘청심과욕(淸心寡慾)’을 강조한다. 맑은 마음으로 욕심을 줄이라는 뜻이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익을 보기 위해 생사를 건 싸움까지 마다하지 않는 바둑판에서 청심과욕이라니. 장사꾼에게 마음을 맑게 하여 욕심을 줄이라고 하는 격이다.

[1도]와 같은 모양이 있다고 하자. 흑백 간에 상변을 빨리 점령하고 싶다. 경제적 가치가 매우 큰 곳이다. [2도]에서 하수들은 이 경우 흑1까지 벌린다. 좋은 곳이지만 욕심 사나운 수다. 백2로 들어오면 싸움이 벌어지는데 흑이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 [3도]에서 고수들은 흑1로 좁게 벌린다. 얼핏 보면 너무 소심한 수처럼 보인다. 백2에 오면 상변 백집이 제법 크게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도 선이 적당하다고 본다. 백도 왼쪽에 투자를 많이 했으니 이 정도 이득은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고수들은 상대를 배려하며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욕심만 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한다. 이것이 올바른 거래의 철학이다. 영리를 추구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이익을 취해야 한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이익을 취하는 것은 바둑판의 올바른 상거래가 아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이익 취하면 낭패 보게 마련
세상의 상거래에서도 이런 철학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익 볼 틈만 있으면 최대한 당긴다면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있다. 견디다 못한 상대는 다른 수를 찾게 될 것이다. 터무니없이 오른 전셋값에 세입자들이 대거 빠져 나간다면 집주인들은 난처해질 것이 뻔하다. 물론 현재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전세가격이 주택가격을 넘어서는 상황이 온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또는 세입자들의 마음이 바뀌어 부동산 구입 바람이 분다면 미친 전셋값은 바람 빠진 풍선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성숙한 선진국이 되려면 합리적인 경제관념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상대편도 배려하며 적당한 선에서 이익을 취하는 바둑의 경제철학을 음미해 보았으면 한다.

정수현: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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