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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저작권의 시대

저물어가는 저작권의 시대

미국도 처음에는 해적판 출판국이었다. 19세기 미국의 대도시마다 독자 버전의 바이런 시집이 나와 있었다. 한 마디로 당대의 중국이었다.
저작권 전쟁이 다시 불붙었다. 1990년대에는 저작권자들이 기세를 올리는 듯했다. 지적재산이 국제무역 시스템에 편입됐다. 불법복제에 엄격한 글로벌 제재가 가해졌다. 저작권 보호기간이 또 다시 연장됐다. 이번에는 대체로 100년이 훨씬 넘었다. 저작권 소유자들은 새로 법적·기술적 보호를 획득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것은 저작권의 구체제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당시 막 부상하던 디지털 기술이 그동안 저작권자들이 획득했다고 생각하던 확실성을 예외 없이 좀먹어 들어갔다. 콘텐트를 불법으로 내려받은 청소년들에게 선고된 형량이 아무리 가혹하다 해도, 할리우드의 불법복제 방지 홍보영상이 아무리 겁을 준다고 해도, 록그룹 키스의 베이시스트 보컬 진 시몬스가 로열티를 잃지 않으려 아무리 몸부림쳐도, 세상이 바뀌었다.

디지털 기술은 양날의 칼이다. 모든 바이트 정보를 유료 장벽(paywalls, 돈을 내야 콘텐트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장벽) 뒤에 숨겨두는 자물쇠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철통 같은 디지털 자물쇠가 있더라도 그것을 기필코 열고자 하는 해커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사용자의 태도도 바뀌었다. 갖가지 디지털 콘텐트를 간편하게 (때로는 무료로) 이용할 권리의 요구가 큰 흠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불법으로 콘텐트를 내려 받는 사용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까지 그런 사고가 퍼져나간다.
저작권 전쟁 / 피터 볼드윈 지음 / 프린스턴대 출판부 펴냄
2000년대 들어 흐름이 역전됐다. 불법복제 방지 법안인 온라인저작권침해방지법안(SOPA)과 지적재산권보호법안(PIPA)은 할리우드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2012년 위키피디아에게 저격 당하고 말았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가 항의의 표시로 하루 동안 사이트를 폐쇄해 전세계 이용자의 과제물 조사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역시 불법 다운로드의 단속방안을 모색하던 ‘위조·불법복제품 거래 방지 협정(ACTA)’ 법안도 같은 해 유럽의회에서 폐기됐다. 항소 단계에 있는 ‘구글 북스 프로젝트(미국 유수의 공립도서관 장서를 전자화해 구글 북스에 올리는 프로젝트)’는 2013년 11월 새 생명을 얻었다. 데니 친 판사가 ‘변형을 통한 정당한 사용(transformative fair use)’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출판사와 저자·변호사들이 주장하는 불법 복제가 아니라는 해석이었다.

이것은 요즘의 분쟁이다. 하지만 저작권 소유자와 대중 간의 전쟁은 사실상 3세기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다. 그 역사를 살펴보면 저작권자와 저자들의 주장이 한계에 이르렀음이 드러난다. 어느 때보다 길고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저작권 보호조치의 진로 수정이 임박한 듯하다. 미국은 최근까지 저작권 보호의 세계경찰 역할을 맡아 왔다. 하지만 원래 미국은 해적판 출판국 출신이었다. 1790년 첫 저작권 법에서 영국법의 짧은 기간(14년)을 채택했다. 그보다도 외국 저자의 권리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신생국가 미국은 문화적 인프라 구축에 열을 올렸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유럽의 유산을 공짜로 실컷 활용할 수 있어야 도움이 된다고 확신했다. 철면피하게 유럽 문화를 해적질했을 뿐 아니라 그런 도둑질을 교양 있는 민주 시민의 계몽주의 이상 추구라고 자랑스럽게 찬양했다. 그 결과 문화적으로 상당히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됐다.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인 지식인층의 갈증을 채워줬다. 유럽 저작물들의 방대한 미국 출판본이 유럽 가격의 몇 분의 1도 안 되는 값에 유통됐다. 책값이 너무 싸서 종종 기차 타기 직전에 구입해 여행 중 읽고 버릴 정도였다.

미국의 대도시마다 독자 버전의 바이런 시집이 있었다. 1890년대에는 토마스 매콜리의 ‘영국사(History of England)’가 콜로라도주의 소읍까지 깔려 있었다. 영국보다 10배 또는 20배 많이 팔려나갔다. 찰스 디킨스의 작품은 열차시각표 뒤에 연재됐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미국 시민은 남을 강탈할 권리를 강탈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인 듯하다.” W S 길버트와 공동 작업한 오페라로 유명한 영국 작곡가 아서 설리번이 볼멘소리를 했다. 미국은 쉽게 말해 당대의 중국이었다.

값싸고 구하기 쉬운 작품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저자와 저작권자의 권리에 크게 우선 했다. 1891년에 가서야 미국이 마침내 국제적 저작권을 인정할 정도였다. 그 뒤로도 또 다시 한 세기가 지난 1989년에야 마지못해 국제적인 저작권 보호 협정인 베른조약에 가입했다. 미국은 그뒤 해적에서 경찰관으로 진로를 변경하게 된다. 하지만 저작자의 권리를 더 강력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일반대중의 열화와 같은 요청의 결과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콘텐트 업계의 영향력이 커졌음을 입증하는 결과였다.

앞서 19세기 후반까지 문화 수입국(결과적으로 불법 복제국)이었던 미국이 저작물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1852년의 국제적인 블록버스터 대작인 ‘엉클 톰스 캐빈(Uncle Tom’s Cabin)’은 그 뒤로 영국 매출이 미국의 3배에 달했다. 그러나 국제 저작권이 없었던 탓에 작가 해리어트 비처 스토와 그녀의 미국 출판사는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세기가 바뀔 무렵 미국 문화 쓰나미의 첫 파고가 곧 전 세계를 덮치려는 참이었다. 미국 문화산업 특히 할리우드는 한층 더 효과적이고 글로벌한 저작권 보호를 위해 분투노력했다. 미국의 국제협약 가입, 더 강력한 보호와 엄격한 단속을 추진했다.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저작권박람회의 국제음반산업협회 스탠드. 오늘날 자기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디지털 해적행위를 가장 큰 목소리로 개탄하는 업계가 바로 한 세기 전 악보음악을 합법적으로 털어먹으면서 성장했다.
20세기 중에는 할리우드를 비롯한 콘텐트 수출업자들이 장기간의 강력한 저작권 보호를 굳건히 떠받쳤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조류가 바뀌려는 조짐을 보이는 걸까? 1800년대에는 저작권에 반대하며 대신 이용자가 콘텐트에 쉽게 접근할 권리를 주장하던 진영에 원군이 있었다. 외국 출판물 복제판을 만들며 로열티를 물지 않는 출판사들이 거기에 가세했다. 미국이 자체적으로 수출할 만한 콘텐트를 개발하고 문화적으로 자립성을 갖춘 뒤에야 출판유통업자들의 경제적 이해가 저작권 지지 쪽으로 일제히 돌아섰다.

그러나 오늘날 출판유통업계 내부에 단층선이 또 다시 벌어졌다. 이 같은 단층선은 오픈 액세스(open access, 특히 학술정보나 논문 등을 누구라도 무료 열람할 수 있게 하는 방식) 운동가들에게 확고한 발판을 약속한다. 이는 공유 저작물(public domain) 에 대한 그들의 이상주의적인 관심보다 더 든든한 배경을 이룬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저작권을 두고 내전이 벌어졌다. 할리우드의 콘텐트 생산자들이 실리콘 밸리의 도전에 직면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첨단기술 업계에겐 무료 제공 콘텐트가 그들의 첨단기기와 서비스를 구입하도록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미끼다. 콘텐트 무료 이용에 대한 당장의 관심이 주판알을 튕긴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전술적으로 오픈 액세스 진영과 손을 잡았다.

역사를 돌아보면 계속되는 저작권 전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더 단적인 사례가 드러난다. 축음기와 그 원조 기술 등 음향녹음 기술은 19세기 후반 처음 등장했다. 당시 법은 음악을 (간접) 재생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악보(sheet music, 제본되지 않은 악보 음악)만 보호했다. 신기술은 따라서 원하는 만큼 마음껏 콘텐트를 재생할 수 있었다.

작곡가와 그 출판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20세기 초 의회에서 관련 법이 통과될 무렵엔 녹음 업계와 소비자들의 세력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작곡가와 출판사들도 어느 정도 권리를 획득했다. 각 녹음에 대해 법으로 정해진 로열티다. 그러나 일단 한 곡의 녹음을 허용하면 그밖에 다른 사람이 녹음하지 못하도록 막을 방법이 없었다. 법정 요율에 따라 자신들의 자산에 대해 보상을 받았지만 다른 권리는 대부분 상실했다.

작곡가와 출판사들은 사실상 새로운 음반 제조사와 소비자들에게 눈 뜨고 권리를 빼앗겼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날 자기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디지털 해적행위를 가장 큰 목소리로 개탄하는 업계가 바로 한 세기 전 악보음악을 합법적으로 털어먹으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1909년 악보 음악이 신성불가침의 자산이 아니었는데 오늘날 디지털 음악만 그래야 할 이유가 따로 있는가? 법은 준 만큼 다시 빼앗아가기도 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품었던 계몽주의 비전의 한정된 범위로 저작권이 다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공유 저작물을 무엇보다 떠받드는 시스템 말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제 보호기간 연장의 한계점에 도달한 듯하다.

적어도 저작권이 기간과 강도 면에서 계속 무한히 뻗어나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늘날의 오픈 액세스 운동가들은 저작권자들의 과도한 보호를 거부하는 유서 깊은 전통을 따른다. 저작권 보호는 탄생하는 순간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쳐 미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번만큼은 오픈 액세스 운동가들이 승리할 확률이 높다.[ 필자 피터 볼드윈은 문화사가이자 캘리포니아대(LA)와 뉴욕대 교수로 ‘저작권 전쟁(The Copyright Wars: Three Centuries of Trans-Atlantic Battle, 프린스턴대 출판부 펴냄)’의 저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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