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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 특권의식 극복 - 자존감 살려주되 신중한 직언도

후박사의 힐링 상담 | 특권의식 극복 - 자존감 살려주되 신중한 직언도

이른바 ‘땅콩 회항’은 비뚤어진 특권의식 탓에 벌어진 대표적 사건이다. 사진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선생님, 벌써 3학기째 논문이 공전하고 있어요. 학위는 대인관계가 생명이라고 하는데, 같은 여잔데도 지도교수님 속은 도대체 알 수가 없네요. 배울 것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몇 년을 더 끌어야 할지 생각하면 하늘이 무너져요. 만나면 매번 모멸감을 느끼고, 울컥 치밀어 오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에요. 지도교수를 바꿀까도 생각했는데, 오히려 부작용이 있을 것 같고….정말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학위를 포기한다는 건 상상도 못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씨는 30대 중반 중견기업 과장이다. 경제학 박사과정을 끝내고 이제 논문만 남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도교수와의 관계가 껄끄럽다. 그녀는 한마디로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제자들의 사정을 전혀 고려치 않는다. 자기가 요구하는 것이 항상 최우선이고, 자기 방식대로 안 되면 화를 낸다. “내가 누군지 알아요?” 제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여러 학회나 세미나 준비뿐만 아니고, 심지어 은행 일 같은 개인적 심부름도 시킨다. “이 정도 밖에 못해요?” 룰이나 규칙은 마음대로 변경한다. 상황에 따라 유리한 쪽으로 말을 바꾸고, 약간만 거부감을 비춰도 강력하게 반발한다.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죠?” 이쪽 분야에서 꽤 알아준다는 교수인데, 제자들끼리 모이면 교수 욕이다.
 사회 불평등 갈수록 심화
현대사회는 물질만능주의 시대다.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산다. 현대사회는 능력지상주의 시대다. 능력이 있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분야를 막론하고, 스타는 부르는 게 값이다. 빈익빈 부익부, 불행히도 한국의 양극화 속도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돈이 돈을 벌고, 스타는 하늘의 별 따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을 숱하게 봤다. 그런데 신분상승은 점점 강 건너 불구경이 되고 있다. 사회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상대적 박탈감은 점점 커진다. 가진 자의 오만은 하늘을 찌르고, 기득권자의 편견은 땅을 울린다.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가 주위 시선 아랑곳 않고 돈을 펑펑 쓴다. 재벌 총수 아들이 회사 재산을 사유물로 여기고, 임직원들을 부속품처럼 대한다. 누구나 아는 의원들이 해외 연수를 핑계 삼아 국민의 돈으로 단체여행을 즐긴다. 이 모두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루는 커다란 코끼리가 개울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나무다리가 무게를 못 이겨 부서졌다. 동승한 모기가 코끼리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나와 너의 무게로 다리가 무너졌다.”내가 주임교수인데, 내가 부장판사인데, 내가 경찰국장인데…. 그들은 자기교만(Self-importance)에 빠져 산다.

특권의식은 일종의 공주병·왕자병이다. 세 가지 특징이 있다. ①나르시시즘.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사랑한다. 주위 관심과 사랑을 독점하려 한다. 항상 특별대우를 원한다. ②공감결여.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타인의 권리나 사정을 무시한다. ③무한착취. 목적 달성을 위해 타인을 이용한다. 성공 욕구로 가득 차 있다. 성취와 능력을 과장한다.

특권의식은 일그러진 자존감에서 온다. 자존감은 자기를 존중하는 감정이다.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 품위를 지키는 마음이다. 건강한 자존감은 인정에 과도하게 우쭐하지 않고, 비난에 지나치게 위축되지 않는다. 작은 공로에 상대를 찬양하지 않고, 작은 실수에 상대를 멸시하지 않는다. 건강한 자존감은 정상적인 훈육을 통해서 들어선다. 누구나 공주나 왕자였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자라나면서 꿈을 버리고 현실을 받아들인다. 미성숙한 과장된 모습을 포기하지 못하거나, 주위 비판에 대한 좌절을 수용하지 못할 때 특권의식은 싹튼다.

특권의식은 선민사상과 통한다. 선민사상이란 자기만이 우월하고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사상이다. 유대인이 가장 대표적이다. 로마제국으로부터 멸망 당한 후, 2000년 만에 영토를 찾아 독립했다. 지금도 전 세계에 흩어진 엘리트들이 정치·경제·학문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인의 선민사상은 단군신화에 기초한다. 5000년 동안 중국·일본·러시아 등 강대국 사이에서 버텨낸 민족이다. 이제 세계 10위권 내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둘 다 자존감이 강한 민족이다.

특권의식의 덫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어려서 마음대로 자유롭게 자란 경우다. 열등감을 감추려고 잘난 척하며 큰 경우도 있다. 고집을 부리거나 떼를 쓰면 원하는 것을 얻었다. 부모는 항상 성공에 대해서만 관심 있고, 예의·배려·이해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다.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면서 컸다. 나이 들어, 충분한 인정을 못 받고 주위 비판이 커지면서 성격이 까칠해진다. 친구가 없이 혼자되기 쉽고, 알코올·성·마약 등 중독에 빠지기 쉽다. 보통 외동인 경우가 많고, 재벌 자녀, 연예인, 예술가, 교수, 의사 등 전문직에 많다.

김 과장은 정말 어려움에 처해 있다. 지도교수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런 자가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런 자가 조직의 우두머리라면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다. 좌지우지할 권한이 있다는데 달리 방법이 없다. 과연, 김 과장에게 탁월한 대처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자존감을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 그녀는 자존감에 문제가 있다. 스스로 최고라고 자부한다. 안하무인이다. 특별히 대접하고, 요구에 응해줘야 한다. 말 한마디에 발끈하고, 무심한 행동에 화를 낼 수 있다.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어쩌면 훌륭한 상담자가 돼야 한다. “무비판적인 긍정과 무조건적인 존중을 보이면서, 고객의 감정을 정확히 공감하라.”
 말은 더디게, 행동은 민첩하게
둘째, 적당한 아부가 필요하다. 아부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아부는 전략적인 칭찬이다. 특별한 목적을 성취하는 수단이다. 그녀에겐 아부가 필요하다. 그런데 과도하게 요구당할 수 있다. 잘못하면 착취당한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무조건 ‘예스’하면 안 된다.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그녀는 자신의 성공에만 관심이 있다. 공(功)은 가로채고, 과(過)는 떠넘길 수 있다.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녀는 배려심이 전혀 없다. 주기만 하고 못 받을 수 있다. 기대를 안 하는 게 좋다. 챙길 수 있는 것은 미리 챙겨야 한다. “잘 풀리면 충신, 못 풀리면 역적이다.”

셋째, 직언(直言)을 조심해야 한다. 직언은 바른 것을 바르다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이다. 직언할 때 목숨 걸던 시절도 있었다. 직언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위험할 수 있다. 그래도 한 배를 탄 입장이니 어느 정도, 옳고 그름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그녀는 능력에 비해 자신감이 지나치다.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녀는 과도한 이상주의에 빠져 있다. 현실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직언은 최소 세 번은 생각한 후 해야 한다. “말을 더디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 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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