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독일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

독일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

지난 2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에서 두 번째)가 지멘스의 암베르크 공장을 방문해 ‘아이디어와 높은 교육수준의 근로자’가 독일에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본보기라고 칭송했다.
바쁜 하루였다고? 할 일이 100만 건이나 됐다고? 그렇다면 김빠지는 뉴스가 하나 있다. 아마 그중 1000개가량은 엉망으로 했으리라는 거다. 적어도 연구 결과는 그렇다. 인간이 수행하는 100만 건의 작업 당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500~1000번의 실수를 한다. 많아 보이지만 오자가 있는 채로 보내는 이메일 건수, 씻었지만 고추가루가 묻어 있는 접시 수, 동료와 대화할 때 말이 헛나간 건수, 점심시간에야 발견한 짝짝이 양말 수를 생각해 보라.

이런 작은 실수들로 인해 시간, 돈 또는 평판 측면에서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특정한 환경에선 문제가 커진다. 약사가 조제를 잘못하면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트레이더가 주문을 ‘잘못 입력하면(fat fingers)’ 회사에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입힐 수 있다. 불과 25년 전 지멘스의 엔지니어와 과학자 팀이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두고 특정 작업장의 쇄신 작업에 착수했다. 독일 뉴렘버그 인근의 작은 마을 암베르크에 있는 제어기 제조 공장이었다. 회로판과 스위치가 가득 담긴 이 박스들은 다른 공장의 두뇌 역할을 한다. 쇄신 작업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세계 각지와 다양한 업종 전반에 걸쳐 고객을 끌어들였으며 불량률을 100만 개 당 550개로 줄였다.

그러나 그 수치도 너무 높게 느껴졌다. 제어기가 고장 나면 공장이 금방 멈춰서 생산중단만으로 하루 수백 만 유로의 피해를 회사에 입힐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특히 중대한 문제였다. 그에 따라 지멘스 팀은 공장 자동화를 확대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품질 향상 경쟁에서 컴퓨터가 인간을 앞서리라는 믿음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1990년 25%였던 작업장 자동화율이 지금은 75%로 늘어났다. 불량률은 100만 개 당 11.5개로 크게 떨어졌다. 근로자 수와 작업공간은 같은 수준인데도 생산량은 8.5배나 늘어났다.

자동화 조립라인에선 제품과도 대화를 한다. 가령 자동차 보닛이 도장기계로 다가가선 ‘나는 흰색’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암베르크는 자동화로 가능한 미래상을 보여주는 전시장이 됐다. 지난 2월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방문해 ‘아이디어와 높은 교육수준의 근로자’가 독일에 얼마나 풍부한지를 보여주는 본보기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관리자·정치인·근로자가 진짜 관심을 갖는 문제는 그것이 미래와 관련해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느냐다. 이 공장은 지멘스가 자동화의 비약적인 발전을 시험하는 무대다. 공장이 일련의 순차적인 공정을 위한 환경이라기보다 네트워크로서 더 많은 기능을 한다. 조립 라인이 서로간 또는 사내뿐 아니라 다른 곳의 시스템과 소통하는 네트워크다. 게다가 생산되는 제품과도 소통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자동차 보닛이 도장기계로 다가가선 ‘나는 흰색’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다음 제품은 청색으로 도장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독일 엔지니어와 학자들은 이를 ‘인더스트리 4.0’으로 부른다. 반면 미국에선 ‘산업 인터넷(the industrial internet)’으로 불린다. 제너럴 일렉트릭은 이렇게 설명한다. “현실세계와 디지털 세계의 긴밀한 통합이다. 기업이 센서, 소프트웨어, 기계간 학습(machine-to-machine learning, 기계끼리 네트워크에 접속해 사람을 거치지 않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수집·관리·제어하는 기술) 그리고 기타 기술을 이용해 실물이나 기타 대규모 데이터 흐름으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 뒤 그 분석을 이용해 작업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은 또한 과거 유럽이 추종자였던 분야에서 선도자로 나서는 기회라고 컨설팅 업체 스트라테지&의 파트너 볼크마르 코흐는 말한다. 소비자 세계의 디지털화는 “사실상 미국 기업이 독차지하고 주도했지만” 산업 혁신을 주도하는 국가나 지역은 아직 없다는 의미다.

센서·소프트웨어·기계로 이뤄진 세계에는 사람이 없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1만㎡의 암베르크 작업장에 1020명의 근로자가 배치돼 3교대로 근무한다. 그들의 작업은 비교적 육체 노동으로 보인다. 한 청년은 복잡해 보이는 청색·회색의 기계 아래 드러누워 조금씩 이동한다. 자동차 하부를 수리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근처 한 여성은 회로기판을 내려다보며 핀셋을 놀린다. 하지만 나머지 직원들은 스크린을 들여다볼 뿐 유리로 둘러싸인 조립라인을 따라 이동하는 제품에 일절 손대지 않는다.

“디지털화된 미래에 사람들이 위협을 느낄 수 있다”고 암베르크의 귄터 지벨 생산팀장이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육안으로 확인하며 자동화 검사를 보완한다.” 더 정확히 말해 이 프로젝트는 경험과 창의력을 활용해 공정을 개선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수요를 창출했다. 따라서 암베르크의 관리구조는 대단히 수평화됐다. 예컨대 조립라인 근로자가 상사를 거치지 않고 IT 부서와 집적 협의할 수 있다. 투자규모 1만 유로 이하의 프로젝트라면 어떤 직원이든 시작할 수 있다. 관리자는 구석구석 살피며 팀들이 예산을 너무 많이 또는 적게 지출하는지 확인하는 데 그친다. 직원이 제안한 개선안이 나중에 집행될 때는 보너스가 지급된다. 평균적인 근로자가 이런 식으로 1년에 1000유로 선의 추가소득을 올린다고 지벨은 말한다. 그는 이 같은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디지털 공장이 상의하달식으로 관리될 경우엔 얻는 게 많지 않다.”

수요가 증가하면 원래는 공장을 신설하고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그러나 자동화 확대로 생산성이 크게 향상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암베르크의 일자리가 줄지는 않았더라도 이젠 공장을 새로 지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다. 적어도 독일인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인더스트리 4.0을 위한 국가 차원의 실무 그룹을 구성하려는 계획이 진행 중이다. 민간기업과 업계 단체뿐 아니라 근로자 대표가 참여한다.

이 같은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은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라고 지멘스의 인더스트리 4.0 기획 책임자 디이터 베게너는 주장한다. 소비자는 맞춤 제품을, 그것도 지금 당장 원한다. 그리고 가격을 낮추든 또는 천연자원을 보호하든 효율적으로 제조되기를 원한다. 이는 네트워크화된 생산공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베게너가 말하듯 “이것은 당신과 내게서 시작된다.” 그는 또한 독일이 미국의 산업 인터넷 공동체보다 적어도 2년은 앞서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미국의 뒤를 따라가는 듯이 보인다. 미국인이 마케팅에 더 능하기 때문이다.”

스트라테지&의 디지털화 전문가인 로만 프리드리히는 좀 더 신중하다. “속성상 이 같은 변화는 아주 빠른 속도로 일어나기 때문에 누구든 정상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몇몇 탁월한 그룹이 있어서 매년 선두 그룹이 바뀐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가 근로자에게 미치는 영향 말고도 극복해야 할 중대한 과제가 몇 가지 더 있다. 표준화가 그 하나다. 탄산음료 병이 보틀링 기계에 신호를 보낼 때 같은 언어로 소통하지 않는다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컨설팅 업체 액센추어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산업 인터넷 도입에 적극적인 기업 중 3분의 1이 ‘상이한 데이터의 통합’을 중요한 문제로 꼽았다. 이는 다양한 업체들이 비슷한 표준을 찾아야 하는 공급망 전반의 데이터만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작업장 내 각 부서 간 데이터도 마찬가지였다.

필연적으로 보안도 또 다른 커다란 걱정거리다. 지멘스 뮌헨 본사의 기술 전문가들이 최근 암베르크 공장 시스템에 대한 해킹을 시도했다. 진짜 해킹에 대한 방어 수단을 테스트하려는 목적이었다. ‘스마트 공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공급망의 모든 연결고리가 안전해야 한다. 큰 난제이자, ‘스마트 공장’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또 한편으로 정보를 널리 유통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딜레마다. 암베르크에선 어떤 직원이든 조립라인의 각 제품에 관한 실시간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은 투명성과 보안 간에 어떻게 균형점을 찾을지 궁리해야 한다.

베게너의 입장에서 제3의 과제는 혁명(또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진화)을 이끄는 효율성·맞춤제작·속도 같은 요인들을 잊지 않는 일이다. 빅데이터 발굴 자체가 목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각 작업에 구체적인 가치를 부가해야 한다. “타당한 목표 없이 뭔가를 스마트하게만 만드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그는 말한다.

- 번역 차진우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정권 퇴진·노동권 보장” 노동단체, 서울 도심 곳곳서 집회

22024 청송백자축제 개막... "청송백자, 과거를 넘어 미래를 잇다"

3경주 금리단길, 감성이 빛나는 테마거리로 새단장

4선비들의 화려한 외출부터 눈부신 불빛 축제까지...경북 곳곳서 다채로운 축제 펼쳐져

5대구시, 전국 최초 '모빌리티 사이버보안 평가센터' 구축

6 “전날 대학병원 8곳 휴진…축소된 외래진료량 최대 35% 수준”

7 대통령실 “여야, 이태원특별법 합의 이뤄 환영”

8여야, 이태원특별법 수정 합의…내일 본회의서 처리키로

9KB금융, 반포에 ‘골드앤와이즈 더 퍼스트’ 2호점 오픈

실시간 뉴스

1“정권 퇴진·노동권 보장” 노동단체, 서울 도심 곳곳서 집회

22024 청송백자축제 개막... "청송백자, 과거를 넘어 미래를 잇다"

3경주 금리단길, 감성이 빛나는 테마거리로 새단장

4선비들의 화려한 외출부터 눈부신 불빛 축제까지...경북 곳곳서 다채로운 축제 펼쳐져

5대구시, 전국 최초 '모빌리티 사이버보안 평가센터' 구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