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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공존’이라는 헛꿈 꾸지 말라

‘G2 공존’이라는 헛꿈 꾸지 말라

지난 3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인대 개막식에서 군악대 지휘자가 연주를 이끌고 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하루가 멀다하고 섬뜩한 만행을 저지른다. 서방과 이란의 핵협상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극단으로 치닫는다. 이런 극적이고 급박한 상황에서 간과되기 쉬운 외교정책 이슈가 있다. 현세대 미국인에게 가장 중대한 도전은 갈수록 막강해지는 중국의 부상이라는 사실이다.

백년의 마라톤 - 마이클 필스베리 지음 헨리 홀트 펴냄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의 역사적인 개혁·개방 이래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선 세계 안보, 무역 시스템, 분쟁 해결, 다자간 기구 등 기존의 세계질서와 구조 안에 중국이 순조롭게 통합되도록 미국과 동맹국들이 도와줘야 한다는 게 지배적인 관념이었다. 경제적·지정학적으로 갈수록 강해지는 중국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시스템으로 껴안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한국과 대만 등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체제 전환에 성공하자 한동안 미국의 외교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자만심이 생겨났다. 중국도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면 공산당 체제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민주주의로 돌아설 것이라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환상이었다. 엄정한 지적 뒷받침이 없는 희망사항이었을 뿐이었다. 요즘은 그런 기대를 하는 외교 전문가가 갈수록 줄어든다.

그렇다면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중국의 부상을 최대한 순조롭게 유도하는 대안뿐이다. 우리 모두 자위하듯이 중국 지도부도 당연히 그러길 바랄 듯하다. 그런 맥락에서 몇 년 전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미국 외교정책 전문가들이 주목할 만한 제안을 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아래서 중국의 개방을 이끈 키신저는 2011년 저서 ‘중국이야기(On China)’에서 미국과 중국이 전면적인 충돌을 피하고 ‘전투적 공존(combative coexistence)’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 워싱턴 DC 소재 보수성향 싱크탱크 ‘허드슨 연구소’ 산하 중국전략센터의 마이클 필스베리 소장이 나섰다. 그는 미국 외교정책 전문가들의 통념을 무너뜨리고자 최근 ‘백년의 마라톤: 미국을 제치고 세계 슈퍼파워가 되려는 중국의 비밀전략(The Hundred-Year Marathon: China’s Secret Strategy to Replace America as the Global Superpower)’이라는 책을 썼다. 필스베리는 미 국방부와 의사당에서 중국통으로 잔뼈가 굵었다. 책 제목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그는 중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부드럽게 융합돼 G2(양대 초강대국) 중 하나로 유순하게 공존하리라고 생각하는 외교정책 전문가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필스베리는 중국 공산당이 1949년 정권을 잡았을 때부터 그들의 목표가 제1의 글로벌 슈퍼파워가 되는 것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중국은 그로부터 정확히 1세기 뒤인 2049년까지 그 목표를 달성하려는 ‘백년대계’ 전략을 착착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그는 믿는다. 필스베리에 따르면 더 중요한 점은 그게 결코 아무도 몰랐던 비밀전략이 아니라는 것이다(부제에 ‘비밀전략’이 언급된 것은 판촉에 초점을 맞춘 역설인 듯하다). 그는 중국의 그런 야심이 수년 동안 뻔히 보이는 데도 미국의 외교정책 전문가들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고 상당히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의 방위·군사적 사고체계(엄격하게 통제되지만 접근이 불가하진 않다)에서 정확히 어디를 봐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에겐 그런 전략이 뚜렷이 보인다는 이야기다. 필스베리는 중국의 장기 전략이 공개적으로 논의되는 베이징의 인민해방군(PLA) 회의에 초청 받았다고 책에서 밝혔다. 글로벌 슈퍼파워로서 궁극적으로 미국을 갈아치우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 중국 매파의 말과 글에 그가 주목한다는 사실을 중국 친구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이 초청받았으리라고 스스로 추정한다.

지난 3월 8일 중국군 간부들이 전인대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도착하고 있다.
중국 매파의 저서는 PLA 소속과 필스베리 같은 그들의 친구들만 출입할 수 있는 군사전문 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 필스베리는 그 모든 책을 독파했다. 또 수년 동안 PLA 전략가 수십 명과 이야기를 나눴다(그중 일부는 필스베리의 책 맨 뒷부분 ‘감사의 글’에 나와 있고 나머지는 익명으로 처리됐다).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필스베리가 내리는 결론은 명쾌하다. 하지만 외교정책 학계에선 거의 무시되고 있다. 아직은 아무도 그의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 주장에 사려 깊은 반응을 내놓지 못했다. 필스베리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경주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자기 혼자만 안다면 그 경주에서 우승하기는 누워서 떡먹기다. 따라서 중국은 차근차근 글로벌 패권국으로 미국을 대체하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 아주 다른 세계가 등장할 것이다.”

필스베리 논지의 핵심은 중국 공산당·PLA 전략가 집단[‘잉파이(鷹派)’로 불리는 매파를 가리킨다]이 가진 견해가 흔히 서방에서 생각하듯이 중국인 사고체계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주류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다. 게다가 중국 정부의 불투명한 속성을 감안하면 평가하기 아주 어려운 주장이다. 하지만 필스베리도 그에 관해 할 말이 있다. 자신은 상세하고 엄격하게 하나의 논지를 펼쳤으니 주류파 외교 전문가들이 그에 적절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2012년 시진핑이 집권한 이래 중국이 자기 뒤뜰에서 하는 행동이 달라졌다. 약한 이웃나라들을 겁주기 시작했다. 일본이나 필리핀과 작은 무인도를 두고 벌이는 영유권 분쟁에서든 베트남 근해 석유 탐사권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든 자국의 이해가 걸린 일에선 무조건 강경하게 나선다. 더 최근엔 중국이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건설하는 것을 보여주는 위성 사진이 공개됐다. 새 군사시설에 사용될 것으로 추정된다.

필스베리는 그런 공격적인 행위가 ‘백년대계’ 전략에 따라 중국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서서히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의 자세는 “오호애재라. 우린 너무 가난하고 문제도 많으니 도와달라. 우리처럼 후진국에 기술을 이전하고 투자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미국을 대체하려고 작심했을까? 아니면 기꺼이 미국과 공존하려 할까?
전체 전략의 맥락에서 이젠 그 단계가 끝났다. 중국은 이미 강하지만 더 강해지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근까지의 신중하고 말을 아꼈던 중국 지도자들과 달리 자신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중국이 자신의 것이라고 믿는 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방해가 되면 베트남이나 필리핀 같은 ‘약한’ 나라만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적 앙숙인 일본도 그냥 두지 않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필스베리는 중국 공산당 핵심부에서 중국 학자와 전략가들이 미국과 직접 싸우지 않고 미국이 쉽게 물러나도록 만드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그랬듯이 약간의 체면을 세우면서 비켜나도록 말이다.

필스베리는 책의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미국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내놓은 처방 중 일부는 사실 설득력이 없다. 필스베리는 미국이 다양한 정부 기관의 ‘전문가’를 파견해 중국을 돕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수년 동안 중국의 ‘생산성 향상’에 도움을 준 미 노동부 전문가들의 파견을 중단하라는 이야기다. 이 문제에서 필스베리에게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해줄 필요가 있다. 미국의 대기업들은 하나같이 중국에 거액을 투자했다. 정부 관료들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 중국의 경제 도약에 도움을 줬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가 어떻게 할 것인가? 제너럴 일렉트릭, 마이크로소프트, 제너럴 모터스에 중국 투자를 중단하라고 말해야 할까? 누가 봐도 그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의 처방 중 다른 것은 전략적으로 상당히 일리가 있다. 중국에서 인기 있는 보드게임은 바둑이다. 바둑에선 적을 완전히 포위해야 이긴다. 필스베리는 중국의 전략적 사고에서 바로 그런 ‘봉쇄’ 이론이 핵심을 이룬다고 지적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 전략은 적어도 그 방향에 맞게 설정된 듯하다. 일본·한국과 맺은 탄탄한 동맹을 강화하고 인도, 베트남, 미얀마 등과 새로운 동맹 관계를 맺으면 미국은 중국을 효과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매파가 아닌 중국인은 그동안의 전략이 무익하다고 판단하고 좀 더 부드러운 새로운 노선을 설정할지 모른다.

지난 9년 동안 중국에서 지낸 나로선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이 실제보다는 말잔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한 오바마 대통령은 아직도 중국이 전략적 경쟁자인지 동반자인지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튼 미중 관계에 관한 한 오바마 대통령의 주된 초점은 기후변화(climate change)인 듯하다. 이전엔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라고 불렸던 것이 이젠 기후변화라고 불리는 자체도 구름 잡는 듯한 말장난이 아닐까 싶다. 필스베리가 말하는 잉페이는 이런 이야기에 배를 잡고 웃지 않을까?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미국을 대체하려고 작심했을까? 아니면 기꺼이 미국과 공존하려 할까? 물론 이 질문에 답하긴 쉽지 않다. 필스베리는 중국이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절대 변하지 않는 나라는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옳은 지적이다. 매파가 지금은 부상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 미국으로선 중국의 야심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 시대 외교정책의 가장 중요한 도전이라는 필스베리의 주장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물론 그의 논지는 도발적이며 당황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틀렸다는 건 아니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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