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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록 그라모 공동창업자] 아버지 연륜+아들 패기의 합작품

[손창록 그라모 공동창업자] 아버지 연륜+아들 패기의 합작품

그라모 손승현 대표(왼쪽)와 손창록 부사장. 손 부사장은 “항상 공부해야 젊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광고를 보거나 애플리케이션(앱)을 다운받는 사람, 온라인 회원가입을 하는 고객에게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겠다.’ 보상형 광고 비즈니스의 기본이다. 이미 7~8년 전에 등장한 사업 모델이다. 불특정 다수가 보는 TV 광고와 달리 직접 보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광고를 하고 그들에게만 돈을 지불한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효율적인 광고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식상한 비즈니스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겠다’는 회사가 나타났다. 지난해 초 창업한 그라모다.

그라모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보상형 광고 비즈니스의 주무대는 스마트폰 게임 앱이었다. 게임을 하다가 아이템이 필요할 경우, 특정 광고를 보면 아이템을 무료로 지급하는 서비스가 널리 퍼졌다. 자연스럽게 구매력이 낮은 10~20대 사용자가 주요 고객층이다. 그라모는 다르다. 그라모 앱을 다운로드 받아서 광고를 보면 포인트를 쌓아준다. 단순 동영상 광고를 보면 10~100원, 앱을 다운받거나 온라인 회원가입을 하면 3000원까지도 포인트로 받을 수 있다. 소비자들은 이 포인트를 롯데마트·세븐일레븐·토이저러스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가상의 아이템이 아닌 현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대형마트에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30대 이상의 주부 고객도 늘었다. 구매력을 갖춘 사람들이 회원으로 있으니 광고주에게도 득이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은 고객이 늘어서 좋고, 소비자는 포인트로 물건을 살 수 있으니 모두가 윈윈하는 사업 모델인 셈이다.

그라모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손창록(69)·손승현(37) 부자가 공동으로 창업한 회사다. 아버지 손창록 부사장은 롯데백화점의 창립멤버로 입사해, 그랜드백화점 CEO, 중소기업유통센터장을 지냈다. 2013년 12월 퇴직했다. 아들 손승현 대표는 구글과 탭조이에서 광고 플랫폼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조합은 꽤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사업을 막 시작하는 단계라 매출이 크지는 않지만 창업 후 1년여 만에 4만명이 넘는 회원을 모집했다. 관련 업계에서 주목을 받는 회사로 성장하고 있다.
 아들은 광고주, 아버지는 포인트 사용처 섭외
두 사람 각자가 가진 재능이 사업에 절묘하게 녹아들었다. 그라모 사업에는 두 개의 큰 축이 있다. 하나는 광고주로부터 다양한 광고를 유치하는 일이다. 광고가 많아야 소비자 입장에서도 볼 광고가 많아지고, 포인트를 쌓을 기회도 늘어난다. 이는 손승현 대표의 몫이다. IT 광고 플랫폼 분야에서 일하며 온라인·모바일 광고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활용한다. 광고만 많이 따오는 게 능사는 아니다. 광고를 본 소비자들이 쌓은 포인트를 쓸 곳이 있어야 한다. 포인트를 쓸 오프라인 매장을 섭외하는 것은 손창록 부사장의 일이다. 그는 백화점 신입사원부터 CEO, 공기업인 중소기업유통센터장까지 유통과 관련한 다양한 업무를 담당한 경력이 있다. 당연히 발도 넓고 경험도 풍부하다. 인맥에 연륜까지 갖췄으니 그가 직접 나선 거래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는 말한다. “조금만 있으면 내 나이가 70입니다. 스마트폰·온라인 같은 분야는 너무나 생소하고 어려운 분야예요. 지금은 스마트폰 앱을 다운받아 쓰는 수준을 넘어 직접 앱을 개발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니었으면 꿈도 못 꿀 일이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공부하는 자체가 즐겁고, IT 회사 안에서도 나의 역할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아들이 답한다. “아버지가 없었으면 성립 자체가 힘들었을 사업이에요. 최근 들어 수많은 IT·벤처 회사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좋은 아이디어와 멋진 프로그램 개발 실력을 갖췄어요. 그런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도 판매처나 거래처를 뚫지 못해 사장되는 사업이 많아요. ‘이렇게 좋은데 왜 남들이 몰라줄까’라고 말하죠. 저 역시 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비슷한 길을 가고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라모의 창업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손승현 사장은 “아버지를 설득하는 데 1년이 넘는 기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손창록 부사장은 “아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고, 탭조이에서는 임원이었다”며 “무모한 도전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기를 바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들은 끈질기게 아버지를 찾아가 사업의 개념과 사업성,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나중에는 아버지 앞에서 프레젠테이션까지 하고 나서야 겨우 창업할 수 있었다.

창업 결정까지는 고민을 거듭했지만, 막상 사업을 시작하자 속도가 붙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도움을 받아 낮은 이자로 사업자금을 마련했다. 창업진흥원에서 사업자금 일부와 서울시 금천구 가산동의 조그만 사무실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 아들이 지원 신청서를 만들면, 아버지가 검토 후 가다듬었다. 기본적으로 좋은 아이디어에, 아들의 열정과 아버지의 연륜이 더해져 그럴 듯한 제안서가 나왔다.
 스스로 장(長)이라는 인식 버려야
손창록 부사장은 창업을 희망하는 퇴직자에게 두 가지 조언을 남겼다. 첫째는 ‘공부하고 또 공부하라’다. 그는 평생을 공부하며 살아왔다. 행정학 박사 학위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주말을 이용해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의 외투 주머니 곳곳에는 2~3장 분량의 A4 용지가 있다. 평소 공부한 내용을 요약해 놓은 것이다. 출퇴근 길이나 잠깐 틈이 날 때마다 읽으며 암기하고 복습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가볍게 등산을 하는데, 외웠던 내용을 떠올리며 산을 오르면 지겹지도 않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는 게 손 부사장의 설명이다.

또 하나의 조언은 ‘스스로 장(長)이라는 사고를 버려라’다. “퇴직자들의 마지막 직책은 과장·부장·사장 등의 책임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뭐든지 혼자서 해결하고 책임지고 지시하는 자리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는 많지 않아요. 창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는 만큼 항상 배운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과 젊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을 구분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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