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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방어수단 뭐 있나?] 포이즌필·차등의결권 도입론 부상

[경영권 방어수단 뭐 있나?] 포이즌필·차등의결권 도입론 부상

미국계 헤지펀드들이 저평가된 삼성·현대차그룹 주식 매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 투기자본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를 중심으로 ‘포이즌필(poison pill, 신주인수선택권)’ ‘차등의결권주식(dual class stock) 제도’ 등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등 국제 투기자본 앞에 국내 대기업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언제든지 ‘제2의 엘리엇’ 사태가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주식을 매입해 경영에 관여하면서 주가를 띄운 뒤 차익을 남기고 떠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은 갈수록 늘고 있다. 2000년 이후 10년간 한국에 들어온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지분 매입 횟수는 총 25건에 달한다. 미국·일본·영국·독일·이탈리아·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일곱째로 잦다. 그럼에도 경영권 방어 장치는 취약한 편이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 후 경영권 방어수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가 재벌의 부적절한 지배 구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사드라들곤 했다.

한국에서도 황금주나 황금낙하산 등의 경영권 방어수단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의 결과로 경영진이 물러날 때나 효과를 발휘한다. 행동주의 펀드처럼 단기간의 지분 확보를 통한 경영참여는 막을 수 없다. 재계는 경영권 안정을 위해 미국·유럽·일본 등에서 도입한 포이즌필·차등의결권주식 등 보다 적극적인 수단을 요구하고 있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M&A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다. 투기자본이 주식을 매집하고 있을 때, 기존 주주들이 저렴한 신주를 매수해 그만큼 투기자본의 영향력을 희석시켜버리는 방법이다. 미국·일본·프랑스·캐나다 등 선진 자본 시장에는 이미 널리 보급된 제도다. 미국은 기업사냥꾼들의 적대적 M&A가 기승을 부리자 1982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법률상 근거나 정관의 규정 없이도 이사회는 언제든지 포이즌필을 발행할 수 있다. 미국 기업의 절반 정도가 정관에 이를 반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2005년 신주예약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이즌필을 도입했다. 한국 법무부도 최근 엘리엇의 삼성 공격 이후 “한국형 포이즌필 도입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7월 9일 밝혔다.

오래 전부터 경영권 방어에 자주 회자된 수단이 차등의결권이다. 차등의결권이 도입된 미국의 경우엔 주식별로 의결권 수가 다르다. 구글의 경우 2004년 상장하면서 1주당 1개 의결권이 있는 ‘Class A’ 주식과 1주당 10개의 의결권을 가진 ‘Class B’ 주식을 발행했다. 구글 경영진은 Class B 주식의 92.5%를 보유해 전체 의결권의 60.1%를 행사할 수 있다. 구글 경영진은 이를 통해 강력한 경영권을 발휘하며 단기간에 200여 기업 인수를 추진해왔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1주당 10개 의결권을 가지고 있고,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의 차등의결권은 1주당 무려 200개에 달한다. 포드일가는 7%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의결권은 40%에 달한다. 유럽연합(EU) 대부분 나라도 차등의결권제를 채택하고 있고,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은 명시적으로 복수의결권 주식을 인정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의 변형된 방식 중 하나가 ‘태뉴어보팅(tenure voting)’이다. 주식의 보유 기간에 따라 의결권을 더 주는 방법이다. 같은 종류 주식이라도 보유 기간(일반적으로 24, 36개월)이 경과한 이후에는 복수의 의결권을 주는 식이다. 행동주의 펀드나 적대적 M&A 시도가 특정한 단기간에 주식을 매집해 이뤄진다는 측면을 고려한 방어수단이다. 또 주식평등의 원칙에 대한 위반이란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미국에선 테뉴어 보팅을 효과적인 적대적 M&A 방어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른 장점도 있다. 장기 보유 주주의 가치를 키우고 경영진이 장기 사업에 중점을 둘 수 있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외에도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은 많다. 이사회 정관에 이사의 시차임기제, 이사 해임 사유의 제한 등의 규정을 두는 방식이 있다. 주요 자산을 매각하거나 회사를 분할하는 조직구조를 바꾸거나 신주나 전환사채 등 잠재적인 주식을 제3자에게 배정하거나 실권주를 인수하는 기법 등도 활용될 수 있다.
 상법 개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 쉽지 않을듯
하지만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경영권을 강화시켜주면 지배주주가 이를 남용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한국의 재벌처럼 지배구조가 취약한 상황에서는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 대다수 재벌 대주주는 지분율이 상당히 낮으면서도 순환출자구조를 활용해 기업집단을 지배하고 있어 대주주-일반주주 간 이해상충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다수의 소액주주들이 재계에 경영권 방어수단을 주는 데 반감을 보이고 있다. 소수 대주주의 횡포에 휘둘리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의 황세운 자본시장실장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이 필요하긴 하지만, 재벌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과 지배주주의 경영권 남용이라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고 말했다.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은 한국 상법이 정한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현재 상법으론 의결권이 없는 주식을 발행할 수는 있지만 의결권을 더 주는 주식을 낼 수는 없다. 국회가 상법을 개정해 차등의결권에 대한 근거를 마련해줘야 상장사 이사회가 이를 도입할 수 있다. 그러려면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타협이 필요한데, 한국의 기업들이 우호적인 여론을 이끌어내기는 상당히 어려울 전망이다. 상법 개정 후에도 반드시 주주총회를 거쳐 주주 3분의 2 동의를 얻어 정관까지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재벌처럼 외국인 지분 비중이 높은 기업은 상법이 개정된다해도 관련 방어수단을 활용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외래종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윤승영 박사는 “미국에서 사용되는 경영권 방어 수단은 미국 기업의 경영 풍토, 법철학,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산물인데, 그와 상이한 환경의 한국에서 이를 성급히 도입하면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영권 방어수단이 외국계 투자금 유입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경영에 조금이라도 관여할 수 없다면 한국에 투자할 메리트가 줄기 때문이다. 경영권이 안정적일수록 투자환경도 나빠진다는 역설적인 얘기다. 이럴 경우 한국 주식 시장 전체에 대해 외국인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 한편, 행동주의 펀드 역시 여러 가지 공격 수단을 쥐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일반 주주로부터 의결권만 사는 ‘보트바잉(vote buying)’ 기법이다. 주식을 파생상품화해 각 주식의 의결권과 재산가치를 분리 판매해 의결권을 끌어 모은다. 적은 자금으로도 다수의 의결권을 쥐고 경영에 관여해 치고 빠지는 전략이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황금주(golden share): 단 1주만으로도 주주총회 결의사항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



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 경영진 해임시 거액의 퇴직금이나 저가에 행사할 수 있는 스톡옵션, 남은 임기 동안의 보너스를 고용 계약에 명시해놓아 인수 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경영권 방어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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