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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반퇴의 정석(12)] 해외에도 재취업 기회 얼마든지 있다

[김동호의 반퇴의 정석(12)] 해외에도 재취업 기회 얼마든지 있다

지난해 9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5 중장년 채용한마당’을 찾은 50~60대 퇴직자 상당수가 해외 취업에 관심을 나타냈다. / 사진:중앙포토
일본에서도 베이비부머이자 숙련 기술자인 단카이(團塊) 세대 퇴직자가 쏟아져 나오자 해외 진출이 본격화했다. 1990년대 국내 전기전자·철강·조선·화학·정유 업체로 일본인 기술자가 줄줄이 영입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 1차 베이비부머(1955~63년에 출생한 710만 명) 세대도 기술만 있다면 얼마든지 중국·동남아는 물론이고 중동·동유럽·남미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들 지역은 개발도상국이나 신흥공업국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인력을 해외에서 수혈받아야 한다.

더구나 국내 기업들은 갈수록 글로벌 경영이 불가피해진다. 이에 맞춰 국내 인력의 해외 진출도 수반될 수밖에 없다. SK그룹의 경우 이미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이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앞으로 중국·동남아에 더 많은 해외 지사를 세울 예정이어서 숙련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을 비롯해 해외 현지 공장에서 장비를 설치할 때 첨단 기술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핵심 기술자는 한국인 숙련기술자로 채워야 한다. 그런데 낯선 환경에선 위기 대응이나 유연한 대처능력이 필요해 경험과 끈기가 있는 중장년층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중장년의 마인드에도 글로벌 진출은 낯설지 않다. 재작년 말 57세의 나이로 정년퇴직을 한 A(59)씨는 국내보다 해외 재취업을 더 선호하고 있다. 퇴직 전 담수 플랜트와 관련된 일을 하며 중동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당시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해외에서 찾고 있다고 했다. 해외에서 주재원 생활을 오래 했다는 B(51)씨는 다른 구직자들에게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그는 “이제 성장이 한계에 달한 한국에선 생활비가 많이 들고 금리도 낮아 이자 생활도 어렵다”며 “지금 한창 고도성장하고 있는 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어 익히면 정착에 유리
관건은 얼마나 미리 준비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준비된 만큼 기회가 많고 빨리 찾아오기 때문이다. 국내 취업과 마찬가지로 해외 취업도 퇴직 후 공백이 길어질수록 일자리를 잡을 기회는 줄어든다. 한국무역협회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관계자는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퇴직자가 늘고 있지만 구체적인 목표나 준비 없이 실행에 옮기는 사례가 많다”며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제대로 인정받자면 퇴직 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외 이주인 만큼 현지어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다. 동아건설에서 퇴직해 르완다에서 건설 자문 일을 하고 있는 최모(61)씨는 “의사소통만 되면 훨씬 효율적으로 일하고 빠르게 정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출 국가의 문화에 대한 이해는 더욱 중요하다. 예컨대 한국에선 일상화된 24시간 자동차 애프터서비스 긴급 출동이 라오스 같은 나라에선 그대로 통하지 않는다. 직원에게 야간 근무를 시켰더니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부인들의 전화가 쇄도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반퇴 세대를 위한 해외 이주 지원 프로그램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여전히 경쟁률이 높다. 그만큼 발품을 많이 팔고 치밀하게 준비한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간다. 고용노동부가 중장년 재취업 지원을 위해 전국 28곳에 마련한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부터 챙겨볼 필요가 있다.

이 중 해외 취업을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곳은 한국무역협회가 맡아서 운영하는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2년부터 7만3000여 개 회원사의 채용 정보를 발굴해 국내는 물론 해외 진출에 관심이 있는 중장년 퇴직자와 연결해 주고 있다. 해마다 40~50명이 해외 취업에 성공했다. 지난해 6월 개최한 ‘중장년 채용 기업 박람회’에선 수출기업 20곳이 해외 마케팅이나 영업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찾았다. 35명이 현장에서 면접을 거쳐 채용됐다.

정부기관이나 대기업 퇴직자는 해외 파견 ‘자문관’을 겨냥해 볼 만하다. 2010년부터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세계 곳곳의 개발도상국에 정책 자문이나 지식을 전수하는 전문가를 파견하고 있다. KOICA와 NIPA가 50여 개국에 파견한 자문관은 2014년 228명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두 기관의 자문단은 전문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보유한 퇴직 전문가라는 게 공통점이다. 기관마다 파견하는 분야는 다르다. KOICA자문단은 농림수산·교육·보건 같은 기초 인프라가 부족한 최빈국에서 주로 활동한다. 이와 달리 NIPA자문단은 정보기술(IT) 관련 사업이 활발한 지역에서 수요가 많다. KOICA 월드프렌즈 관계자는 “한국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퇴직자가 쌓은 경험이나 지식이 개도국 발전에 도움이 되고, 퇴직자 역시 일을 통해 보람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자문단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서류심사·기술면접·신체검사를 거쳐야 한다. 개도국의 중소기업 육성 자문처럼 인기가 많은 곳은 경쟁률이 5대 1 이상이다. 자문관은 통상 1년이지만 두 차례 연장해 3년까지 일할 수 있다. 항공료·주거비·활동비를 포함해 연평균 5만 달러가 지원된다. 해외 취업 정보는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워크넷 서비스(www.work.go.kr)에서 한꺼번에 찾을 수 있다.
 사기 당하거나 근무 여건 다르기도
한류 열풍으로 한국어 강사 수요도 늘고 있다. 한국어 보급기관인 세종학당재단은 세계 54개국에 140개 세종학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해마다 40명 안팎의 교사를 파견한다. 70대 고령자가 나가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해 해외 학당에 취업한 C(76)씨는 “한국 취업을 원하는 학생이 늘면서 고교와 대학에서 한국어 특화 과정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퇴직 후 해외에서 찾는 인생 후반기 일자리엔 위험이 따른다. 낯선 환경에서 홀로 일어서야 한다. 사기를 당하거나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근무 여건과 맞닥뜨릴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을 극복하자면 전문성과 사전 준비가 필수다. 익숙한 일이어야 돌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 생계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지도 감안해야 한다. 최봉식(61) 세계한인무역협회 하노이 지회장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고 건너온 사람들 가운데는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어렵게 생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저개발 국가라고 얕보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사기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필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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