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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불임의 사회

지도자 불임의 사회

교수 본연의 직무는 교육과 연구다. 이를 등한시하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이들을 ‘폴리페서’라고 칭한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 없다. 그럼에도 대권 후보 주위엔 교수 수백 명이 몰려 다닌다. 왜 유독 한국엔 폴리페서가 많은 것일까.

권력을 함께 누리겠다는 교수는 적을 것이다. 1000명씩 모은다는 대선후보 자문교수단이다. 집권 후에 권력의 단맛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다. 나라를 구할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준비된 ‘장자방’과 같은 경세제민의 지략을 갖춘 교수도 극소수일 것이다. 교수들도 이를 안다.

그럼에도 몰려드는 이유엔 대학의 열악한 상황이 있다. 선진국 대학에선 연구 성과가 좋은 교수의 연봉은 계속 오른다. 명예를 보장받는 석좌교수로의 길도 있다. 한국에서는 그런 인센티브가 희박하다. 석좌교수는 학문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명예다. 그러나 한국에선 정부의 고위관리를 지낸 분들이 그런 자리를 독차지한다. 나랏일을 하다 대학에 돌아오는 관행이 자리잡은 지도 오래다.

그런 분에 넘는 감투를 부끄러워할 겸양의 미덕을 지닌 관료들도 아니다. 정부 프로젝트라도 있으면 공무원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국·공립대학의 교수들이 진행하는 정부 프로젝트의 수입은 다 학교로 귀속된다. 본인이 보수를 받으면 안 된다. 서류정산이라도 실수하면 망신당하기 일쑤다. 연구를 열심히 해도 더 높은 급여와 처우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시 권력을 보자. 빌 붙는 비용은 별로 들지 않지만 그 열매는 매우 크다. 학교에 없는 기회가 널려있다. 그러니 밖으로 나돈다. 그것이 공급을 만드는 이유다.

이제 수요를 보자. 아무리 폴리페서가 되고 싶어도 수요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왜 유독 대한민국에선 실무 경험이 전무한 교수가 관직에 오를까? 조직을 이끌어 가는 실무는커녕 사회생활도 제대로 못 해본 교수들을 장관으로 기용한다. 공공기관이나 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주며 중용한다. 한국이 지도자를 양성하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한이 크고 사회적 영향력이 큰 리더는 오랜 경험과 리더십 훈련을 거쳐 배출돼야 한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는 최고 권력이 군에서 나왔다. 군대에서의 리더십 경험을 사회가 중용했다. 이와 달리 선진국에서 리더들은 지방 자치를 통해 길러진다. 최근엔 혁신적이고 많은 자원을 배분해 보는 경제계에서 리더가 길러지는 사례가 많다.

한국 지방자치단체를 살펴보자. 제대로 된 정책이나 혁신 아이디어를 찾기 어렵다. 중앙정부의 교부금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재정에 대한 책임도 져 본적이 없다. 전시행정을 치적이라고 자랑한다. 기업은 각종 규제 탓에 탈법과 편법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한다. 기업인의 경영능력과 창의성을 고무하기보다는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의심하는 반기업 정서가 강한 사회다.

폴리페서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실물을 이해하고 경험과 지력을 갖춘 당당한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걱정이다. 지도자 불임의 사회다. 지도자를 못 만들기에 폴리페서 수요가 늘었다. 그 비용을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이 지불하고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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