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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경험이 지식보다 강하다

[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경험이 지식보다 강하다

‘미국 월가나 중국 톈안먼 광장에 침팬지 10만 마리가 있으면 난장판이 되고 말지만, 사피엔스 10만 명은 주식 거래망을 운영하고, 정치 집회나 스포츠 대회를 연다. 이것이 바로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반면 침팬지는 동물원과 실험실에 갇힌 이유다. ‘집단협력 본능’이 인간의 유전자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상상력 덕분이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령 신이나 민족(국가), 돈, 인권 같은 것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수백만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피엔스]와 [호모데무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기본 동력을 상상적 픽션의 스토리를 만들고 협력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픽션의 본질은 집단적이든 개인적이든 일종의 자기합리화의 스토리이다. 집단 차원의 신화나 종교는 물론 가족 단위에서도 조상에 대한 스토리는 개인적 긍지와 자부심의 원천이다. 인간에게 발달한 자기합리화의 능력은 장점과 단점의 양면성을 가진다. 객관적으로 부족함이 없어도 홀로 좌절하는 것도 인간이고 동시에 객관적으로 결핍된 상황에서 주관적 의지로 어려움을 돌파하는 것도 인간이다. 집단과 개인은 때에 따라 자기합리화의 확신에 기반해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자포자기에 빠져 어처구니없는 자멸도 불러온다.

지식을 가진 인간은 이러한 특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습득한 지식은 자기합리화에도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지식도 자기합리화의 함정에 빠지면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삶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미신이나 도그마로 전락한다. 따라서 인문학적 지식이라는 자양분이 현실적 경험의 토양을 만나야 자기합리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현실적 관점을 형성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은 ‘어떤 체제나 사상의 형성은 이론가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갈등하는 현실 속에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의 손에서 나온다’고 갈파했다. 서양 근대정치학의 원조라고 일컬어지는 마키아벨리도 학자가 아니라 부유하지만 인구가 적고 군대는 없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소국 피렌체의 외교관으로 평생을 보낸 경험으로 [군주론]을 집필했다. 물론 열심히 공부하고 지식을 쌓아가는 학자들의 고유한 영역은 존재하지만, 현실의 삶에서 지식은 경험의 필터를 거치면서 검증되고 실질적 에너지를 발휘하게 된다.

한자를 통해서 이런 점을 접근해 보자. 지식의 습득(學)과 의미의 깨달음(覺)은 비슷하나 다르다. 배울 학(學)은 학생이 스승 앞에서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지식의 전달을 의미하고, 깨달을 각(覺)은 스승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見)을 나타낸다.

즉 학에서 출발해 각까지 이르러야 비로소 자신의 관점을 가진다. 인문학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깨달아야 하는데, 지식이 경험의 필터를 거치면서 갈무리되어야 깊이 깨닫게 된다. 특히 인문학은 삶의 경험과 연륜이 쌓여야 이해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즉 중학생이 공자의 논어를 읽고 대략적 내용을 이해할 수는 있으되 그 깊은 의미를 깨닫기는 어렵다. 오히려 중학생이 논어를 읽으면서 깊이 깨닫고 공감한다면 이상한 일로, 그야말로 천재이건 바보이건 일반적 범주는 벗어난다.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는 인문학의 지식이란 마치 논어를 읽는 중학생처럼 의미도 모르고 글자만 읽거나 아니면 그 액면에 눌려 전후좌우를 가리지 못하고 맹신하게 될 위험이 상존한다.

그렇다면 개인의 제한된 경험으로 폭넓은 인문학의 지식을 갈무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비록 40대의 중년에 들어섰다고 해도 그의 경험은 교육과 직업의 주변에 제한되게 마련이다. 또한 자신의 경험에만 기반하면 자칫 인문학의 콘텐트가 제공하는 풍부한 지식과 통찰을 편협한 주관의 울타리에 가두게 될 위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인문학적 지식은 존재하지 않기에 어차피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따라서 ‘아는 만큼 이해하고, 경험한 만큼 느낄 수 있다’는 관점의 접근이 현실적이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콘텐트를 접하고 이해하면서, 경험이라는 창문이 공감하고 깨닫는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점이다. 어떤 분야이든 직업을 가지고 성실히 살아가면서 지적 호기심을 유지하는 일반인이라면 일상적 삶 속에서 느끼는 바가 생기게 마련이고, 이러한 부분이 인문학적 지식을 만나 발효해 체계적인 인생관과 가치관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책만 읽는 삶이란 지식은 늘어날지라도 사물의 본질을 깨닫기는 어렵다. 정형화된 지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해하는 현실이란 역시 간접적인 것이다. 세상의 본질은 현실을 접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하게 마련이다.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들은 등대의 불빛을 보고 갈 길을 정한다. 등대가 없어도 항해할 수는 있겠지만 안내자가 되는 등대가 있으면 항해는 더욱 안전해진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항해하는 배가 등대를 기준으로 나아가듯이 인생의 바다를 헤쳐나가는 개인들도 등대와 같은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현실생활에서 타인을 대하고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는 가치관이 건전하고 합리적이며 현실에 기반하고 있으면 삶을 풍요롭게 하고 개인의 가능성을 확장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관이 왜곡되어 있으면 삶이 왜곡되고 가능성도 제한되게 마련이다.

추상적 이론은 구체적 현실에서 검증된다. 기상학과 같은 자연과학이나 경제학 등 사회과학과 달리 추상적 관념의 인문학이 현실에서 엄밀히 검증되기는 어렵다. 날씨가 맑고 흐린 것은 종교와 문화에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인식되지만, 돼지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는 행위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종교와 문화에 따라 극단적 차이를 보인다. 극단적 관점 역시 나름대로의 문화·종교·역사적 배경을 가지기에 쉽사리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도 없다.

이렇듯 다양한 인문학의 지식과 사고방식을 흡수하고 소화하기 위해서는 개인 차원의 필터링이 필요하다. 이는 결국 개인의 지식과 경험에 기반하는 것이고, 특히 성인이 되어 사회적 삶을 통해서 체득하는 경험이 필터링의 기준점이다. 이러한 인식이 있어야 수많은 입장과 논리 속에서 자신이 공감할 수 있으면서 삶의 자양분이 되는 인문학의 지식과 사고방식을 습득해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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