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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유럽에 드리운 그림자] 유로화 약세 기조… 더 떨어질 가능성 작아

[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유럽에 드리운 그림자] 유로화 약세 기조… 더 떨어질 가능성 작아

무역량 감소로 제조업 둔화 직격탄… 유럽중앙은행 추가 통화완화정책 기대감
오래된 동맹인 미국과 유럽은 냉전시대가 종식된 지금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는 안보적 테두리를 공유하고 있다. 격동의 20세기에 공산주의 확산에 맞선 자본주의 국가의 결속, 그리고 유럽의 전후(戰後) 경제 재건 과정에서 미국이 유럽에 제공한 원조(마셜 플랜)는 미국과 유럽이 자연스럽게 운명 공동체로 엮인 중요한 계기였다. 그들은 국제관계에서 분란이 생길 때마다 일치된 목소리로 대응했다.

옛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라는 공동의 적이 그들을 하나의 이해관계로 묶는 주요한 매개체였다. 미국 역대 정부가 외면해왔던 공산당 독재 체제의 중국과 1972년에 닉슨 대통령이 관계를 재설정한 것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동기가 작용했다. 당시 중국은 소련과 이념적으로만 공산주의를 공유했을 뿐, 1969년에 국경지대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는 등 사실상 적대적이었다.
 헐거워진 미국·유럽의 틈을 노리는 중국
세계화는 심화되고 4차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기술의 진화로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세계는 국내적으로 사회·경제 지형의 변화를 겪고 있다. 전통적 산업의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인건비 절감 등의 목적으로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고 있고 기술 발전으로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고 있어서다. 특히 신기술이 창출한 일자리로 갈아타지 못한 상당수의 경제활동인구가 중산층에서 도태되고 있다. 산업 내 1등 기업의 지배력은 더욱 커져가는 대신 주목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성장이 정체됐다.

국민소득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도 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이를 간파한 정치인들은 국가 간 정책의 연대 또는 공조를 뒷전으로 미룬 채, 포퓰리즘에 기대며 국내 표심을 자극하는 정책을 짜내느라 혈안이다.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지만, 당장의 유권자인 현재 세대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게 우선이다.

냉전이 종식된 후, 공동의 적에 맞선 전통적인 동맹 관계는 희미해졌다. 이런 시대 조류 속에 등장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과의 안보 공동체인 NATO 탈퇴를 운운할 뿐만 아니라 유럽과의 무역에 있어서도 미국 우선주의를 강하게 밀어붙이며 막무가내식으로 유럽의 동맹국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과의 무역협상을 앞두고 EU로부터의 자동차 수입에 대해 25%의 고(高)관세 부과를 위협하고 있다.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 급급해 동맹의 가치를 과소평가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유럽도 영국의 EU 탈퇴 선언에 이어, 이탈리아와 같은 핵심 국가가 통합을 진전시키기보다는 경제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독자적 행보를 고집하는 가운데 각국의 포퓰리즘 세력이 유럽의 통합에 반기를 들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 들어 더욱 헐거워진 미국과 유럽 간의 관계는 미국의 공세에 직면한 중국에게는 기회이기도 하다. 중국은 자본력을 동원해 이 틈을 파고들고 있다. 중국의 지식재산권 도용이나 강제 기술이전 강요 등 첨단기술 확보를 위한 불공정 관행에 대해서는 유럽이 미국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일부 중대한 사안에서는 흐트러진 대오를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를 포함해 EU 회원국의 절반이 중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일대일로에 동참하기로 했으며, EU 집행위원회는 미국이 요청한 중국 화웨이의 5세대(G) 이동통신 네트워크 시스템 도입 금지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반(反) 화웨이 전선’에서 이탈했다.

유럽 대륙은 경제적·정치적으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미중 무역분쟁과 중국 경제의 둔화로 세계 무역량이 감소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세계의 무역증가율은 2017년 전년비 4.6% 증가했지만 2018년 3%로 둔화된 데 이어 2019년에도 2.6%로 추가 감속이 예상된다. 그러면서 유럽의 제조업 경기는 악화일로에 있다. 3월 기준 유로존 전체와 독일의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는 위축 국면이 심화되며 6년 만의 최저치로 급락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과의 무역협상에 따른 부담이 가중될 것이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의 서비스업 PMI는 견고한 확장 국면을 나타낸다는 점인데, 서비스업은 본질적으로 비교역재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세계 무역량 감소에 따른 역풍에서 한발치 떨어져 있다.

내부적으로는 영국의 EU 이탈(브렉시트)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직도 매듭짓지 못한 브렉시트 합의는 여전히 ‘합의 없는 EU 탈퇴’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는 등 영국뿐 아니라 유럽 경제 전반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유럽에서 자동차 산업의 중요성과 자동차 산업의 공정 간 유기성을 고려하면, 영국과 EU 간에 복원될 관세나 규제로 인해 자동차 산업 전반에도 부정적 여파가 예상된다.

이탈리아도 여전히 골칫거리다. 지난해 하반기에 경기 침체 국면에 진입한 이탈리아의 2019년 재정적자 전망은 우려했던 것처럼 전년도 말 추정치(2.1%)보다 상승(2.5%)했고 성장률 전망치도 1%에서 0.1%로 하향 조정되었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 정부가 유럽위원회와 다시 분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5월 말(5월 23~26일)에는 유럽의회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데, 이를 계기로 유럽의 포퓰리즘 정치 세력의 기반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선제적 반영된 유로화 하락은
이처럼 부정적인 변수로 가득한 유로화 가치는 추가 하락할까. 우선 유럽중앙은행(ECB)은 올 들어 경기부양적 스탠스로 돌아서며 통화정책 정상화(금리 인상 등)와 거리를 뒀을 뿐 아니라, 경기 하방 리스크를 강조하며 3월 중 유동성 공급 정책의 도입을 발표했다(시행은 9월). 그런데 TLTRO라 명명하는 이 유동성 공급정책은 은행권 자금 지원을 통한 공급 측면의 정책이다. 취약한 수요를 끌어올리는 데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ECB의 정책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반영해 유로화는 올해 1분기 평균 1289원으로 지난해 하반기 평균(1295원) 대비 하락했다.

한가지 위안거리는 이런 변수들을 외환시장이 미리 반영해 왔기 때문에 유로화의 추가 하락에 대한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로화 약세 여건이 조기에 반전될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다만 최근 유로존 제조업의 위축 국면에서 신규 수출 주문의 감소세가 가팔랐는데, 중국으로부터의 주문 감소가 주요 배경으로 지목되었음을 감안하면 중국의 경기부양책으로 중국 수요가 반등하거나 미중 무역 협상의 긍정적 결과 도출시 유로존 제조업의 부진도 완화될 소지가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외환애널리스트

※ 필자는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 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 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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