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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종의 고령사회 부동산 담론] ‘호모헌드레드’ 나타나다

[유선종의 고령사회 부동산 담론] ‘호모헌드레드’ 나타나다

정년퇴직은 마라톤 반환점에 불과… 오래 사느냐보다 건강하게 사느냐가 중요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운영하는 인생학교에 참여한 장년층. / 사진:서울시
수명 100세 시대라고 한다. 과거에는 생애주기를 ‘30년(교육)-30년(직장)-20년(은퇴)’으로 구분했지만, 오늘날에는 ‘30년(교육)-30년(직장)-40년(은퇴)’으로 분류한다. 은퇴 이후의 시간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UN은 평균수명의 증가로 100세 인구가 급증하는 ‘호모헌드레드(Homo-Hundred)’ 시대가 오면서 각국에서 고령화로 인한 문제가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류의 조상을 호모사피엔스(Homo-Sapiens, 생각하는 인간)로 부른 것에 비유해, 100세 장수가 보편화되는 시대의 인간상을 ‘호모헌드레드’라고 칭하는 것이다.

노년학자들은 사회 방향이 100세 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1년에 발표한 보고서 [인생 100세 시대 대응 전략]은 서문에서 1954년생이 98세까지 생존할 확률이 ‘남자 39.6%, 여자 46.2%’라는 분석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1954년이면 한국전쟁이 휴전한 이듬해다. 그 때 출생한 사람들 중 98세까지 생존할 확률이 남자 열 중에 네 명, 여자 열 중에 다섯 명이라는 것이다. 건강수명 상태로 장수하는 것은 축복이지만, 이처럼 길게 허락된 시간이 건강수명 기간이 아니라면 그 시간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얼마나 오래 사느냐(living longer)’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사느냐(living better)’가 중요한 것이다.

공중보건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 정년퇴직 후의 자유시간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인생을 3막으로 나눌 때 ‘인생 1막’은 태어나서부터 25세 전후까지의 대학을 졸업하는 시기로 부모에게서 무조건적인 사랑과 도움을 받는 시기다. ‘인생 2막’은 취직을 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해 가정을 이루며 사회생활을 통해 주어지는 업무를 성취하고 새로운 가치와 무한한 가능성을 추구해가는 시기다. 기간은 정년퇴직하는 약 65세 전후까지로 40년 정도 된다. 이 시기에는 가족·친척과의 사별을 비롯해 취직·결혼·출산·이사·승진·전직 등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겪는다.
 은퇴 후 ‘10만 자유시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인생 2막’에서 주어지는 일하는 시간(working time)을 계산해 보자. 25~65세까지 40년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1주일 중 6일을 매일 8시간씩 공휴일 없이 근무한다고(토요일도 8시간 근무) 가정하면 1주일에 48시간 근무하게 되는데 1년이면 52주, 여기에 40년을 곱하면 일하는 시간은 총 9만9840시간이 된다.

‘인생 3막’은 정년퇴직 후부터 하늘이 부를 때까지로 평균수명으로, 적게 잡아도 20년 이상이다. 하지만 계산의 편의를 위해 85세에 하늘나라에 가는 것으로 가정하고 인생 3막의 자유시간(free time)을 계산해 본다. 인생 3막이 시작되는 65세부터 85세까지의 20년만 생각할 때 정년퇴직 후에는 모든 시간이 자유시간이다. 40년간 열심히 일해 왔으니 쉬기도 하고 노후의 여가도 즐기면서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 시간을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하루 24시간 중 생리적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시간으로 하루에 10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중 약 14시간은 자유시간(free time)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출근할 일도 없고 내일을 위한 자기 계발을 위한 새벽형 인간이 되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야 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자유시간을 계산하기 위해 하루 중 14시간의 자유시간에 365일을 곱하고 85세까지라는 전제하에 20년을 곱하면 약 10만2200시간이 된다.

다시 말하면, 인생 2막에서 40년간 땀 흘리고 성취하고 내일을 준비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일하는 시간(working time)보다 인생 3막에서 20년간 주어지는 자유시간(free time)이 더 길다는 것이다. 인생 2막은 많은 준비를 하고 젊음의 패기로 맞서 역동적인 시간을 보내지만, 인생 3막은 대부분의 경우 별다른 준비 없이 숙명처럼 다가와 버린다.

조금 시선을 달리한 예를 들어보자. 정년퇴직하는 어느 노교수가 고별 강연을 끝내고 많은 제자들과 지인들의 축복 속에 기립박수를 받으며 강연장을 빠져 나오는데, 하객 중한 사람이 정중한 태도로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은 이제 마라톤 4만2195㎞의 반환점을 막 돌았습니다. 남은 구간도 힘내서 완주하십시오. 아니 완주해야만 합니다.”
 안정된 건강·경제·마음 누릴 ‘인생 3막’ 준비를
인생 2막의 정점인 정년퇴직은 인생 3막의 시작이고, 마라톤에 견주어보면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고 있는 것이다. 공중보건·현대의학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생 2막보다 인생 3막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인생 3막에서 주어지는 10만 시간은 몸이 힘들어도, 돈이 없어도, 건강이 좋지 않아도, 혼자라도, 고독해도, 소외감이 엄습하더라도, 비전이 없더라도, 가고 싶지 않더라도 가야 하는 길이다.

오늘날엔 그 자유시간인 10만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인생 3막을 미리 준비한 사람에게 있어서 10만 시간은 즐겁고 기대되는 자유시간(free time)일 것이다. 인생 2막에서처럼 쫓기지 않을 것이고 경쟁도 그렇게 심하지 않을 것이다. 보람차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주어지는 10만 시간이라는 자유시간을 마음 놓고 즐기면 된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고 맞이하는 사람에겐 인생 3막이 주는 긴 자유시간은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노후를 보내는 재앙과 같은 상황이 된다.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인생 2막의 한 가운데 서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제 인생 3막에 대한 10만 시간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인생 3막을 준비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이다. ‘10만 시간의 자유시간’을 온전히 누리는 인생 3막과의 복된 만남이 여기에 달렸다.

이상과 같이 호모헌드레드의 시기를 살아가야 하는 새털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노후의 주거공간이다. 건강의 안심, 경제의 안심, 마음의 안심을 누릴 수 있는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 지역사회와 연계해 노인의 신체적·정신적 상태를 돌보는 연속 보호체계형 노인주택단지)와 같은 노인전용 주거단지는 인생 3막 시기에 살아가는 공간으로서 매우 중요한 노후의 하드웨어다. 10만 시간을 효율화할 수 있는 조화로운 노후주거단지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 필자는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글로벌 프롭테크 전공 주임교수로 고령화와 관련한 사회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국토정책 위원회, 행정안전부 지방세 과세포럼, 서울시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서 자문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노인주택 파노라마], [지방소멸 어디까지 왔나], [생활 속의 부동산 13강]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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