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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적 비대면 진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달릴까

다시 불붙은 원격 의료 논쟁… 1년5개월 ‘데이터’가 관건
기업 의견 들은 국조실…복지부는 ‘보건 측면’에서 검토키로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달 10일 서울 강남구 무역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중소·중견기업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날 김 총리는 "국외에 비해 과도한 국내 규제가 있으면 과감히 없애는 '규제챌린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 1년 반이 넘었다. 아직 코로나의 끝은 보이지 않지만 백신의 보급 등으로 사회 전 분야에서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한다. 국내 원격 의료도 마찬가지다. 

국내 의료법상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원격의료는 코로나로 인해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지난해 2월 24일 보건복지부는 감염병 대응을 위해 ‘감염병 위기경보 심각단계 발령 기간’ 동안 전화 상담과 처방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비대면 진료가 실시되고 있다. 문제는 ‘한시적인 허용’이 언제든 종료될 수 있다는 것. 감염병 위기 단계가 ‘심각’ 아래로 내려갈 때 이 제도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에 대한 논의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규제 챌린지’ 외친 국조실, 의‧약사 단체는 즉각 반발

원격의료 논란의 군불을 다시 땐 것은 국무조정실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달 10일 중소·중견기업 경제인 간담회에서 “국외와 비교해 과도한 국내 규제가 있으면 과감히 없애는 ‘규제챌린지’를 이달부터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규제챌린지의 목표는 국내 기업들이 꼽은 과도한 규제를 해외 주요국보다 더 낮거나 동등한 수준으로 최대한 개선하는 것이다.  

규제챌린지 계획에서 눈길을 끈 것은 단연 원격의료다. 국무조정실이 제시한 규제완화 검토대상 15개 중 1번이 비대면 진료와 의약품 원격조제 규제 완화다. 2번이 약 배달 서비스의 제한적 허용이기 때문이다. ‘원격 의료’와 관련한 규제 타파를 규제챌린지의 최전선에 내세운 셈이다. 국무조정실은 오는 10월까지 각 분야의 규제 완화 여부를 결정한다는 일정을 내놨다.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되온 논의를 본격화해 수개월 안으로 결정하겠다는 공격적인 계획이다.

의‧약사 단체는 이에 대해 즉각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다음날 입장문을 내고 “원격의료는 지난해 의료계가 결사 저지한 ‘4대악 의료정책’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건복지부와 의료계가 참여하는 의정협의체를 통해 발전적 방안에 대해 논의키로 합의한 바 있다”며 “이번 규제챌린지 발표는 이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협회는 “정부는 일방적이고 경제논리에 매몰된 규제챌린지 추진 시도를 즉각 철회하고, 의료계가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통해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약업계도 의약품의 배달 규제 허용에 대해 반발했다. 김대업 대한약사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의약품의 배달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 체계는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규제가 아니라 안전한 의약품 복용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라며 “정부는 이에 대한 정확한 판단 없이 오직 규제개선이 절대 선이라는 맹목적인 논리에 매몰돼 기업 논리에 부화뇌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회장은 “의약품 배달은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므로 대한약사회는 정부의 약 배달 추진 정책을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저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년 5개월 데이터, 규제완화 필요성 입증할까

다시 시작되는 원격 의료 도입 논의는 ‘한시적 허용’ 상태에서 데이터가 더해졌다는 점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원격 의료 도입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논점은 비대면 의료가 의료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의료 이용자)에게 실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다. 
 
그동안 법적으로 원격 의료가 금지돼 있어 이를 검증할 데이터가 쌓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한시적 허용 기간 200만 건 이상의 데이터가 축적된 상태다. 그동안 원격의료 플랫폼을 제공했던 기업들은 많은 사람이 원격의료 서비스를 이용했고, 만족도가 높았다는 것을 근거로 원격의료를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앞서 약 1년5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의료를 수치상으로 보면 이런 주장이 힘을 얻는다.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도입된 이후 우리나라에서 비대면 진료 건수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국회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2월 24일부터 같은 해 10월 31일까지 8개월간 비대면 진료 건수는 103만9571건으로 집계됐다. 월평균 약 13만 건의 비대면 진료가 이뤄진 셈이다.

해당 조사 이후 7개월간 비대면 진료는 더 많이 이용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시행 후 올해 5월 말까지 총 211만여 건의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 15개월간 월평균 14만 건의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두 수치를 종합해보면 지난해 11월 7일부터 올해 5월 31일까지 7개월간은 약 107만 건, 월평균 15만 건 이상의 비대면 진료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지난해 12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COVID-19 대응을 위해 한시적으로 허용된 전화상담․처방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한 의료 이용자의 대부분이 비대면 진료에 대해 높은 수용성과 만족도를 나타냈다. 보고서는 “조사에 참여한 이용자 모두 전화상담․처방이 유용하다고 응답했고, 대부분의 의료 이용자는 대면 진료와 비교하여 안전성이나 효과성에 대한 의구심이나 불안감은 없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비대면 진료의 한시적 허용으로 인해 관련 사업을 벌인 기업들의 입장도 정부가 고려해야 할 부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기업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허용된 비대면 진료 활성화를 위해 비대면 진료 플랫폼 등에 투자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비대면 의료를 ‘원천 금지’하면 적지 않은 반발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코로나 19로 인해 한시적으로 열린 비대면 진료는 그 이전에 비해 허용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게 관련 업계의 시각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있다. 의료 제도는 국민 건강에 직결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단순히 이용자의 편의성만을 토대로 제도를 평가할 순 없다. 편의성이 증대하는 만큼 오진이나 약물 오‧남용 등의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의사‧약사 단체의 원격 진료 관련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근거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 시행 후 약물 오남용 의심 사례 등에 대한 지적이 나왔지만 복지부는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은 상태”라며 “단순히 비대면 진료 건수가 늘어났다고 말할 게  아니라, 면밀한 조사를 통해 얼마나 많은 부작용이 있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법 관련 전문가들도 이런 문제를 지적한다. 김지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평가연구소 부연구위원은 “비대면 의료는 편의성으로 인해 수용성이 높지만 편의성에 대한 추구가 지나쳐, 비대면 진료만으로 처방전과 검사 결과의 교환이 이루어지면 중증화 및 합병증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편의성으로 비대면 진료만 하거나 복수의 환자를 일원관리하게 되면 의료 질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비대면 진료 관련)논의 중심에는 일차적으로 국민 건강이 있어야 한다”며 “보건의료 정책 관점에서 ‘어떤 질환에, 어떤 상황에,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책임과 권한을 부여할지’를 섬세하고 명확하게 계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보다 보건 관점” 강조한 복지부

해당 제도의 키를 쥐고 있는 보건복지부 역시 원격의료 문제를 ‘산업’이 아닌 ‘보건’의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고 본다. 국무조정실의 규제챌린지 관련 발표가 있던 날 강도태 보건복지부 2차관은 기자 간담회에서 “(원격의료 규제 완화는) 보건의료정책 차원에서 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의료계의 수용성이 중요한 만큼 (의료계와) 협의 검토해 나간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업계의 의견을 토대로 규제챌린지를 추진하는 국무조정실과는 확연히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부작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건 단순히 제도 도입자들만의 의견은 아니다. 국내 헬스케어 스타트업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벤처캐피탈(VC)의 한 관계자는 “관련 산업을 육성하자는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원격의료와 관련한 모든 규제를 없앤다는 건 과도한 리스크를 가지는 일”이라며 “국내 의료 전달체계와 수가제도의 특수성이 크기 때문에 해외의 규제와 단순 비교해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의 규제 완화를 하는 게 정답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진단이 명확한 제한적인 질병에 대해서만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등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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