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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범 고려아연 부회장, 2차전지 소재업체로 변신 주도

[이철현의 친환경 10대장⑥]
경영권 승계 이래 전구체로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동박으로 확장도 추진

 
 
최윤범 고려아연 대표이사 부회장. [사진 고려아연]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자본주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주주 가치보다 고객, 임직원, 협력사, 국가 경제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중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주목을 받는다. 특히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 측면에서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ESG가 기업경영의 핵심가치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재앙이 빈번해지면서 경영자들은 친환경 산업 위주로 사업 모델을 일신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3세 경영자가 최고경영자로 나서거나 친환경 산업 분야 전문성을 갖춘 전문경영진이 연구개발(R&D)과 인수합병(M&A) 등을 총괄하면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친환경 산업구조로 바꾸고 있는 경영자 10명의 비전과 성장전략을 분석한다. 〈편집자〉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은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변신을 꾀한다. 인재, 기술, 브랜드 같은 핵심역량에 기반을 둔 채 성장 업종으로 외연을 확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비철금속 제련업체 고려아연이 대표 사례다. 고려아연은 제련업종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활용해 2차전지 소재 업종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대표이사 부회장이 기존 사업에서 창출한 현금흐름으로 미래 성장산업에 투자하는 성장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창업주 최기호 회장의 손자로 2019년 초 고려아연 대표이사에 오른 재벌 3세 경영인이다.
 
고려아연은 아연, 납(연), 은 같은 비철금속을 제련해 연간 1조2000억원(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기준)을 벌어들이는 알짜회사다. 기업이 기존 사업에서 돈을 잘 벌면 혁신을 등한시하기 일쑤다.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성공이라는, 이른바 ‘승자의 저주’는 기업 경영의 아이러니로 유명하다. 주력업종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주력제품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감퇴하면서 경영수지가 나빠져야 뒤늦게 새 성장동력을 찾아나서는 게 기업의 생리다. 드물게 돈 잘 버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변신을 꾀해 새 사업을 벌일 때는 최고경영진의 교체와 맞물리는 경우가 많다. 고려아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 부회장은 경영권을 승계하자마자 2차전지 소재업종으로 외연을 가파르게 확장했다.
 

비철금속 제련 넘어 전구체 제조사로 도약

최 부회장은 승계를 받음과 동시에 전지박(동박)과 황산니켈 같은 2차전지 소재업종으로 진출을 모색해왔다. 특히 대표이사에 취임한 뒤 양극재 전구체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그리고 이달 LG화학과 양극재 전구체 합작회사를 만들기로 합의하면서 그 결실을 보게 됐다. LG화학은 국내 최대 양극재 생산업체로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은 세계 1위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다. 고려아연은 합작사를 통해 전구체를 공급하고 LG화학은 양극재를 만들어 낸다는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 양극재를 받아 2차전지를 생산한다. 이로써 최 부회장은 취임 2년 만에 고려아연을 세계 최대 2차전지 가치사슬에 합류시키는 성과를 일궈냈다.
 
LG화학은 양극재 생산능력을 올해 말 8만t, 2026년 26만t까지 늘릴 방침이다. 양극재는 전구체와 리튬을 결합해 생산하는데 대부분 비중이 전구체로 이뤄진다. 양극재 26만t을 생산하려면 사실상 전구체 26만t가량이 필요하다. 향후 고려아연과 LG화학 합작사가 전구체 26만t을 전량 공급한다면 합작사는 매출 4조2000억원, 영업이익 3000억원 가량을 거둘 수 있을 전망이다. 국내 2위 양극재 업체 에코프로비엠을 압도하는 실적이다. 한국유미코아나 에코프로지이엠 같은 국내 전구체 제조업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다.
 
시장 환경도 우호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국내 전구체 자급도는 20~25%에 불과하다. 국내 양극재업계는 니켈·코발트·망간(NCM) 양극재의 전구체 대부분을 중국으로부터 들여오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처럼 전구체를 전략자원 삼아 수출을 통제한다면 국내 배터리업계에게는 재앙이다. 미국과 호주 같은 국가들이 중국산 소재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국내 2차전지업계는 전구체 같은 소재 자급도를 높이는 방안을 찾느라 분주하다. 2차전지 제조사 삼성SDI는 국내 2위 양극재업체 에코프로비엠과 손잡고 합작사 에코프로이엠을 설립했다. 전구체 생산설비를 갖추기 위해서다. 삼성SDI 진영에 맞서기 LG화학은 고려아연을 제휴 상대로 선택했다. 고려아연은 니켈 코발트 망간 등 양극재 소재를 추출할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어 전구체 부문에서도 빠르게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평가받는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가 위치한 울산 온산국가공단 전경. [사진 올산광역시]
 
LG화학과 제휴 보도가 나간 뒤 고려아연 시가총액은 일주일만에 20% 이상 늘어날 정도로 시장 반응은 뜨거웠다. 최 부회장은 LG화학과 제휴 범위를 다른 2차전지 소재사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대표이사 취임 첫해 자회사 켐코가 보유한 황산니켈 생산능력을 2만t에서 5만t으로 늘려 국내 1위 황산니켈 공급업체에 올랐다. 내년에는 생산능력을 8만t까지 키운다. 황산니켈은 전구체 제조에 들어가는 소재다. 고려아연은 황산니켈, LG화학과 합작사는 전구체, LG화학은 양극재, LG에너지솔루션은 2차전지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이 완성되는 것이다. LG화학도 켐코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다.  
 

전구체 넘어 동박으로 2차전지 소재업 확장

이와 별도로 고려아연은 100% 자회사 케이잼(KZAM)을 통해 2차전지용 동박의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케이잼은 내년 10월 생산능력 1.3t 규모 동박 설비를 가동한다. 일진머티리얼즈와 SKC가 시장 1위를 다투는 동박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다. 동박 선두업체들이 1~2년 안에 10만t 생산능력을 갖추기 위해 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케이잼의 생산능력을 5만t 이상으로 늘려 동박 시장의 삼분지계를 완성한다는 전략이다.
 
동박 생산에 필요한 원료 수급 측면에서는 경쟁업체보다 유리하다. 동박은 고순도 구리선을 황산으로 녹여 제조한다. 고려아연은 고순도 전기동을 연간 2만5000t, 황산 120만t을 생산하고 있다. 또 동박 제조기술은 아연 습식제련 공법과 유사하다. 아연 제련은 고려아연이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고 있다. 이종형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케이잼이 연산 5만t 생산능력을 갖추면 연매출 7500억원 영업이익 750억~1130억 원을 거둘 것"으로 기대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말 기준 순현금 2조원을 보유하고 있다. 해마다 1조2000억원(EBITDA)가 추가로 들어온다. 최 부회장은 아연 제련업에서 벌어들이는 영업활동 현금흐름으로 2차전지 소재업이라는 투자활동 현금흐름에 충당하는 전형의 성장전략을 꾀하고 있다. 유상증자를 실시하거나 전환사채를 발행해야하는 경쟁업체들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다. 자금, 기술, 제휴 파트너까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춘 고려아연이 2차전지 소재업체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고려아연이 2차전지 소재업체로 성장한다면 최 부회장은 사명에서 아연을 뗄까. 5년 뒤 고려아연 사명은 어찌 될까 궁금하다.
 
 
※ 필자는 ESG 전문 칼럼니스트다. 시사저널과 조선비즈에서 20여 년간 경제·산업 분야 기자로 일하면서 대기업 집단의 경영지배구조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썼다. 글로벌 환경단체 그린피스에서 커뮤니케이션 디렉터와 친환경자동차로의 전환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다.

이철현 sisa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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