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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부터 BTS까지 나선 '세계관 마케팅' [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MZ세대와 SNS가 만든 독특한 세계관 마케팅
기업부터 유튜버, K-가수까지 적극 활용

 
 
빙그레가 세계관 마케팅 일환으로 내놓은 빙그레우스 왕자 캐릭터. [사진 빙그레]
 
빙그레 왕국의 후계자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라는 왕자를 알고 있는가? 빙그레가 창립 53주년을 맞아 기획한 브랜드 마케팅의 주인공이다. 순정 만화 주인공 같은 캐릭터를 2020년 2월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빙그레우스 왕자는 빙그레가 생산하는 각종 제품으로 온몸을 치장했다. 빙그레 로고 모양의 귀걸이와 빨간 머리에 바나나맛 우유 패키지를 닮은 왕관을 썼다. 빵또아(아이스크림) 바지에 꽃게랑(스낵)과 메로나(아이스바)를 붙인 봉을 들고 있다. 자신을 빙그레 왕국의 왕위계승자라고 밝히며 “아버지로부터 인스타그램 채널 운영과 팔로워 수 목표치라는 미션을 부여받았다”라고 소개한다.  
 
단순히 캐릭터를 하나 만든 것이 아니다. 빙그레 왕국이라는 세계관을 만들고 각각의 서사를 지닌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물론 모두는 빙그레의 제품과 관련이 있다. 왕국의 가장 오래된 비서 빙그레의 스테디셀러 아이스크림 ‘투게더’를 연상케 하는 ‘투게더리고리 경’, 농사일을 하는 비비빅(아이스바), 귀여운 캐릭터 ‘꽃게랑’(스낵), 엘프를 떠올리게 하는 옹테 메로나 부르쟝(멜론맛 바), 왕국의 호위무사 ‘더위사냥’(얼음과자), 열쇠공 끌레도르(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등이 그들이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고객들과 소통하는 빙그레우스 왕자는 미션을 완수 하기 위해 일주일에 3번의 게시물을 올리는데 구독자가 식품업계 타 브랜드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지난여름에 올린 ‘빙그레 메이커를 위하여’라는 애니메이션 영상은 3주 만에 브랜디드콘텐트로는 예외적으로 3주간 640만 뷰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바 있다. 스스로 ‘도른자(돌은자, 미친놈 같은 아이디어를 내는 자를 빗댄 표현)마케팅이라고 말하며 최근 제과산업은 물론 MZ세대를 겨냥한 브랜드 마케팅의 전범(典範)으로 인정받고 있다.  
 
빙그레의 아이디어는 현실의 낡은 브랜드에 새로운 서사나 스토리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 신선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게임이나 메타버스 공간에서 가성과 현실을 오가는 데 익숙한 MZ세대와의 새로운 관계 형성을 만들고 싶은 오래된 장수 브랜드들이 세계관 마케팅에 주목하는 이유다.  
 

세계관 마케팅의 원조 ‘마블’

세계관 마케팅은 브랜드가 현실이 아닌 상상 속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 속에서 캐릭터와 서사를 통해 브랜드 소비자와 소통하며 브랜드 이념과 철학을 공유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관 마케팅의 선수는 ‘마블 코믹스’다. 소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velCinematic Universe)라는 세계관을 통해 마블 코믹스 케릭터의 상상 속 서사는 촘촘히 연결 되어 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러 스토리라인이 있고 그것을 끌어가는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한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세계관 안에 겹겹이 쌓여 있고, 얽혀 있기도 하다. 그 실타래를 따라가 보면 영원한 주인공도, 영원한 조연도 없다. 관객이 특정 등장인물의 케릭터 보다 그 상의 스토리가 끝도 없이 만들어 가는 세계관에 빠져들어 가는 이유다. 사실 마블의 시네마틱 세계관은 소개된 지 오래되었지만, 그 서사의 스케일이나 투자 규모를 마케팅 차원에서 흉내 내기는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의 세계관 마케팅 붐은 ‘부캐‘ 열풍과 관련이 있다. 본래의 캐릭터가 아닌 ’부 캐릭터‘의 줄임말인 ‘부캐’는 현실 생활에서의 평소 내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로 행동할 때는 일컫는 새로운 개념이다. 예능프로그램에서는 개그맨 유재석이 ‘유산슬’이란 부캐로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 주며 가수로 데뷔, 큰 인기를 끈 것이 대표적 현상이다. SNS 시대의 세계관은 꼭 마블처럼 큰 스케일의 방대한 서사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병맛코드의 가상세계 ‘피식대학’

개그맨 이창호의 부캐 '이호창'. 김갑생할머니김 이호창 미래전략본부장의 신년사 동영상이다. [사진 유튜브 캡처]
 
이런 현상의 또 다른 사례가 ‘피식대학’이다. KBS와 SBS 출신 공채 개그맨 3명이 결성한 유튜브 채널로 ‘한사랑 산악회’ ‘05학번이즈백’ 그리고 B대면 데이트 등 다양한 상황극을 보여 주어 무려 120만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공중파 TV에서 설자리가 없어진 개그맨들이 생존을 위해 만든 유튜브 밈(meme)이 대박을 친 것이다.  
 
처음에는 내놓는 상황극마다 별개의 세계관인 것으로 보였으나 각 콘텐츠의 주인공들이 혈연 및 친분인 것으로 설정된 하나의 세계관을 구성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하나 마다 독특하고 디테일한 케릭터와 서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채널의 ‘김갑생할머니김’ 전략기획실 본부장 이호창이란 인물은 ‘김’회사의 젊은 후계자로 자산 규모 500조원, 코스피 1위 기업의 본부장이다. 신년이 되면 신세계 그룹의 정용진 부회장의 신년사를 패러디한 신년사를 발표하고 양념으로 얼룩진 흰쌀밥을 감싸는 것은 김 한장뿐이고, 환경오염으로 얼룩진 지구를 감싸는 건 김갑생할머니김이 해야 한다며 ESG 경영을발표한다. 상점에 난입한 강도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정도로 무술에도 뛰어나다. 이런 식이다.  
 
그런데 ‘김갑생할머니김’은 유튜브 밈의 등장인물의 직업 설정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생산이 되고 팔리는 일이 일어났다. 전자 상거래 업체 11번가에서 성경식품과 협업, 판매에 들어간 것이다.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세계관을 즐기는 MZ세대들에게 이 ‘병맛 코드’는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다.  
 
그뿐만 아니다. 지난 5월 한국 정부가 최초로 개최했던 기후환경 분야 정상회의인 ‘2021 P4G 서울 정상회의’에서 이호창 김갑생할머니김 미래전략 본부장이 스티브 잡스와 견줄만한 PT를 한 것이다. 기업이 자사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데 벗어나 환경과 사회적 가치, 투명하고 윤리적인 지배구조를 갖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것이 ESG경영이며 이를 위해 ‘김갑생할머니김’은 업사이클링을 실천한다고 발표했다.  
 
금빛 김 포장지를 업사이클링해 ‘금딱지’를 만들어 그 옛날 골목을 가득 채웠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되찾겠다고 밝힌다. 물론 유튜브 ‘피식대학’에 올라온 영상이지만 서울시가 이 행사의 홍보를 위해 피식대학 개그맨들에게 의뢰한 것이다. ESG 경영을 일반인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어필하며 하루 만에 50만명이 이 영상을 보는 진기록이 만들어졌다. ‘피식대학’은 가상의 인물과 가상의 설정임에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어 세계관의 몰입도를 높이고 현실로 세계관을 확장한다.  
 

또 다른 세계관 마케팅 ‘K팝’

현실 세계에서 활동하는 멤버 4인과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이들의 아바타 4인을 조합해 만든 8인조 그룹 에스파.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세계관 마케팅을 비교적 일찍 도입한 곳이 K팝이다. 아이돌 그룹이 만들어질 때는 그룹의 탄생 서사와 멤버 간 캐릭터설정, 앨범에 영향을 준 문화 영화 등 문화 예술의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세계관을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그룹 액소가 데뷔할 때 그들은 엑소 플래닛이란 미지의 행성을 도입했던 것을 알만한 사람은 안다. 이들의 탄생 스토리에는‘ 생명의 나무’와 멤버마다 부여된 빛, 불, 바람, 힘, 치유 등의 능력은 안무나 노래가사, 뮤직비데오등에 충실히 반영되었다. BTS의 세계관 역시 유명하다. 발표되는 곡마다 청춘의 다양한 감성과 경험을 노래에 담되,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세계관 속에 팬덤을 몰입시켰다. BTS의 ‘화양연화’ 3부작, ‘청춘’ 2부작, ‘러브유어셀프’ 시리즈 등이 그 대표다.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에스파’라는 그룹은 현실 세계에서 활동하는 멤버 4인과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이들의 아바타 4인을 조합해 만든 8인조 그룹으로 초월적 SF세계관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들은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오가며 인간과 아바타가 중간세계인 디지털 세계를 통해 소통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세계관에 펼쳐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K팝에서의 세계관 마케팅은 곡과 화려한 퍼포먼스에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것은 기본이고 긴 호흡의 서사가 주는 재미와 몰입을 더 해주어 팬덤이 아이돌 그룹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를 만들어 낸다.  
 
브랜드 스스로가 세계관을 만들 수 없다면 메타버스를 이용한 협업도 가능하다. 이미 만들어진 세계관에 브랜드가 들어가는 것이다.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편의점 CU가 만든 가상 편의점이 그것이다. CU의 한강 시민 공원점은 가상의 편의점이다. 여기서 CU는 오픈기념으로 ‘삼각김밥’ 찾기 이벤트를 열고 당첨자에게 실제로 제품을 보내기도 한다.  
 
세계관 마케팅은 SNS가 등장하며 날개를 달았다. 마블의 세계관처럼 웅장하고 거대한 서사를 가지지 않아도 SNS의 등장으로 작은 세계관을 가능케 한 것이다. 그리고 SNS를 통해 가상과 현실의 세계를 오가면서 소비자가 동참하는 구조를 만들어 냈다. 심리학에서 인간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서양 고전에서 설득력을 얻은 바 있다. 게임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혼재하는 MZ세대의 등장과 SNS 시대가 도래하며 브랜딩도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허태윤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대학교수다. 제일기획과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글로벌마케팅에 관심을 가졌고, AR과 플랫폼 기업에 관여하면서 최근엔 플랫폼 기업의 브랜딩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외대에서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다
 

허태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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