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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퍼스트 인 클래스’ 선점…개발 중심 회사 저력 보여줘

[인터뷰]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이사
글로벌 시장 ‘언멧니즈’ 읽어 맞춤형 파이프라인 확보
주목받는 4세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2018년 말 도입해 선점
“글로벌 빅파마 경험한 인재 영입하기 위해 미국 보스톤 디스커버리센터(BDC) 설립”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 [김현동 기자]
 
“자금에 제약이 있지만 퍼스트 인 클래스(First in Class‧세계 최초) 신약의 경우 상용화까지 직접 진행이 가능하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이하 브릿지바이오) 대표이사는 29일 성남 판교 본사에서 기자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의약품 개발 전문회사(NRDO)로 출발해 최근 자체적으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파이프라인 발굴까지 한 브릿지바이오의 개발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담겼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이 신약 후보물질을 자체적으로 수행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받은 건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가 유일하다.  
 
그는 “국내 바이오벤처는 연구자 기술 중심의 회사가 주를 이뤘지만 이제 빅파마가 원하는, 환자가 필요로 하는 파이프라인을 찾아내 빠르고 정확히 개발하는 능력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며 “‘신약개발’에 뛰어드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언멧니즈(Unmet needs·목표 고객에게 필요한 니즈)’를 읽고, 충족시킬 수 있는 개발 능력을 가진 회사가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비소세포폐암 치료제…경쟁 파이프라인보다 개발 단계 빨라  

미국의 바이오벤처 ‘블루프린트 메디슨’은 최근 중국 자이랩에 4세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파이프라인인 ‘BLU-945'를 약 7200억원에 기술수출했다. 중화권 시장 판권에 한정된 계약임을 고려할 때 상당히 큰 액수다.
 
해당 계약이 이뤄지자, 국내 기업인 브릿지바이오가 주목받았다. 이 회사가 개발중인 BBT-176이 동일한 돌연변이를 타깃으로 하는 파이프라인이기 때문이다.
 
두 파이프라인은 모두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 ‘타그리소’가 투여된 후 나타나는 EGFR(표피성장인자 수용체) 유전자 변이 중 ‘C797S’ 돌연변이를 타깃으로 한다. 현재까지 해결책이 없는 분야다. 임상 1‧2상을 진행 중인 BBT-176이 BLU-945보다 6개월가량 개발단계가 빠르다.
 
이정규 대표는 “블루프린트와의 기술 계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자이랩 쪽에서 컨택이 있었다”며 “다만 우리가 자이랩 측에서 요청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고, 이후 블루프린트와 자이랩의 계약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자료를 제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의 어조에서 아쉬움을 찾아볼 순 없었다.
 
이 대표는 BBT-176과 관련해 “자이랩과 블루프린트의 계약 이후 중국 업체들을 포함해 다양한 해외업체에서 ‘라이선스-인’을 전제로 한 컨택들이 있는데, 지금 이 기술을 수출하는 것이 맞는 건지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기술 수출을 쉽사리 추진하지 못하는 건 BBT-176이 해당 분야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있기 때문이다. C797S 돌연변이를 타깃으로 하는 의약품은 여태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BBT-176은 이 분야의 이른바 ‘퍼스트 인 클래스(혁신신약)’다. 
 
신약개발에서 최초의 의미는 크다. 상대적으로 쉽게 상용화에 다가설 수 있다. 특히 항암제의 경우 더 그렇다. 가속 승인 절차를 받으면 2상 이후 조건부 허가가 이뤄지고 판매를 하면서 3상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대표는 BBT176과 관련, “퍼스트 인 클래스인데다, 항암제 파이프라인인 만큼 FDA 가속 승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승인까지 직접 가보는 걸 고려하고 있다”며 “2023년 말~2024년 초 허가를 위한 자료를 제출하는 빠른 타임라인으로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BBT-176은 용량 증량 임상을 진행하고 있고, 올해 연말 해당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BBT-176이 ‘퍼스트 인 클래스’ 지위를 확보한 배경엔 파이프라인을 알아보고 빠르게 도입‧개발에 착수한 이 대표의 선구안 덕분이다. ‘개발중심 회사’의 저력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타그리소의 글로벌 임상에 참여한 조병철 박사님이 C797S를 발견했고, 화학연구원의 이광호 박사님과 치료제를 발굴한 것”이라며 “아무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갖지 않던 2018년 12월 이 파이프라인을 회사에 도입해 개발에 나섰는데, 블루프린트보다 조금 빨랐고 국내와 중국 등지에선 이제 후발주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BBT-176은 최근 국가 신약개발 지원과제로 선정돼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게 회사 측의 기대다.
 

개발중심 회사, ‘맞춤형 파이프라인’ 발굴로 진화

이 대표는 국내 바이오업계에 넓게 펼쳐진 ‘LG화학 출신’ 중 한 명으로, 연구자가 아닌 사업개발 전문가다. 국내 첫 FDA 승인 신약인 ‘팩티브’의 개발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한 바 있다.  
 
‘개발중심’의 신약 개발 회사를 창업한 것도 그의 이력과 관계가 있다. 국내 대부분의 바이오벤처는 연구자가 유망한 기술을 들고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의 손에 특별한 파이프라인은 없었다. 대신 신약 후보물질의 가능성을 보는 눈과, 개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는 한국화학연구원과 박석희 성균관대학교 교수팀이 발굴한 궤양성 대장염 신약 후보물질 'BBT-401'을 사들이면서 브릿지바이오를 설립했다.
 
BBT-401은 여전히 브릿지바이오의 간판 파이프라인이다. 미국과 한국 등 5개국에서 임상 2a상이 진행 중이다. 2018년 말 대웅제약에 아시아 지역 판권 및 개발권리를 라이선스 아웃했고, 2상을 진행하며 추가적인 라이선스-아웃을 추진할 방침이다.
 
베링거인겔하임에 1조원이 넘는 금액에 기술수출했다가 반환받은 특발성 폐섬유증 파이프라인 ‘BBT-877’은 LG화학 사단 중 한 명인 김용주 회장이 있는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도입한 물질이다. 지난해 ‘잠재적 독성 우려’를 이유로 기술반환됐지만, 자체 실험을 통해 위양성(False positive)으로 인한 것임을 확인했고 FDA와 자체 2상 진행을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글로벌 개발 경험을 갖춘 인재들이 없었다면 진행하지 못했을 일이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 이 회사 성남 판교 본사엔 직원들의 캐리커쳐가 걸려있다. [김현동 기자]
 
‘개발 중심’ 회사로 출발한 브릿지바이오는 최근 자체 파이프라인 발굴도 시작했다. 다만 그 방식은 기존의 바이오벤처와 다르다.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만들어내고 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게 아니라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언멧 니즈’에 맞춘 파이프라인을 발굴하는 것이다. 
 
첫 사례는 BBT-207이다. BBT-176과 마찬가지로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C797S 변이를 공략하는 치료제인데, 회사 연구팀이 발굴해냈다. 이 대표는 “타그리소가 1차 치료제로 사용되게 됨에 따라 ‘C797S 이중돌연변이'에 대한 치료제가 필요할 것으로 파악했고, 입맛에 맞는 파이프라인을 도입하는 데 한계가 있어 자체 발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현재 가장 노력하는 부분은 ‘글로벌 인재 영입’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10월 미국에 보스턴에 디스커버리센터(BDC)를 설립했다. 그는 “글로벌 빅파마에서 신약의 파이프라인 발굴부터 상용화까지 전 과정을 경험한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해 BDC를 만들었다”며 “자체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전초기지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윤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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