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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강국'에 인재가 없다...서울대, 반도체 인재양성·팹리스 생태계 강화 나서

[인터뷰] 이혁재 서울대 시스템반도체 산업진흥센터장
2010년대 반도체 전공자 대부분 대기업 행, 중소형 팹리스 인재난 악순환 이어져
“서울대 비전공자 학점 이수시 반도체 학사학위 취득 가능케”

 
 
신인섭 기자
"공정 기술은 있지만 설계를 할 인재가 없다"
한국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 업체들의 성장을 막는 큰 걸림돌은 인재난이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이런 한국 반도체 시장을 두고 "좋은 식재료와 음식을 만들 요리사는 있지만 좋은 레시피가 없는 상황"이라고 비유했다. 반도체를 생산할 시설과 공정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설계 등 원천기술이 없다는 지적이다.
 
메모리반도체와 공정기술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는 이제야 태동하고 있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그동안 산업 현장에 투입할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끊임없이 호소해왔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1~2020년 연평균 반도체학 석‧박사 졸업생은 60명, 전자공학과는 1000명이다. 이마저도 대부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으로 향한다. 중소형 기업이 대부분인 한국 팹리스에는 인재가 오지 않고, 인재가 없어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자연스럽게 인재양성소인 대학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학내에 산재해있는 시스템반도체 관련 전문기구와 연구집단을 한데 모아 시스템반도체산업진흥센터(SIPC)를 지난 10월 출범했다. SIPC는 서울대에 축적된 전문 역량을 결집하고 팹리스 생태계와 연결해 팹리스 기업의 성장을 돕는 생태계 허브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인재양성과 자금 지원, 정책연구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9일 SIPC는 시스템반도체 상생포럼인 ‘테크비즈콘서트 2021’을 열고 팹리스 생태계 강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각 기업별 네트워킹과 멘토링을 진행했다. 이날 이혁재 SIPC 센터장을 만나 한국 팹리스가 마주한 문제와 성장방안에 대해 물었다.
 

지난 10월 SPIC 출범…팹리스 성장 돕는 허브 역할 

반도체 강국 한국에서 팹리스가 성장하지 못한 이유 가 무엇인가요.  
"우리 기업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한 결과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인력 수급과 자금력 부족입니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경쟁국가는 빅테크 기업뿐 아니라 신기술 스타트업 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면서 내수시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전자기업들이 해외 공장으로 이전을 하는 등 중소형 기업들이 수요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품귀 현상이 불거지면서 한국 중소형 팹리스의 생산 주문이 대형 팹리스나 수요기업들 주문의 뒷전으로 밀리는 것 또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중소형 기업이 대부분이라, 자금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 보입니다. 
"자금력 부족은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지능형반도체를 하나 개발하는 데는 200억원가량 비용이 발생합니다. 중소형기업이 감당하기엔 초기 비용이 너무 높죠. 양산에 들어가기 전 IP를 확보하고 이를 설계하고 시제품을 제작하는 데 비용이 필요합니다. 오늘 포럼에 참석한 ‘파두’라는 기업도 초기 자금의 문턱을 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제품 개발에만 몇 백억이 드는 만큼 수 십 만개, 수 백 만개 시장이 확보돼야 지속성장이 가능해집니다. 팹리스가 수요시장을 찾는데도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죠. 이후 양산에 들어가면 양산 물량만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데 이는 투자 또는 정책자금 대출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팹리스 창업기업의 빠른 성장을 위해 SIPC는 초기 R&D에 수반되는 비용을 경감하는데 지원사업의 방향을 두고 있습니다."
 
반도체 품귀현상으로 파운드리 기업의 공정라인이 부족해지면서 팹리스 기업들의 시제품 제작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시스템반도체는 설계와 생산의 분업화가 확실한데요. 팹리스가 반도체를 설계하면 파운드리가 하나의 웨이퍼에서 여러 고객사의 반도체 시제품을 제작하는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를 반드시 거치게 돼있습니다. 팹리스들에게 R&D나 시제품 제작을 위해 반드시 MPW가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반도체 품귀현상으로 파운드리 기업들의 생산라인이 부족해서 팹리스의 R&D나 시제품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반도체 인재난 해결을 위해 대학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일단 반도체 전공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수도권 정원 제한이 있어서 대만이나 미국처럼 한 산업군의 정원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고요. 국내 반도체 산업 인력의 절반이 전기‧전자 및 정보통신 분야 전공자입니다. 전체 공학계열의 60%를 반도체 유관 전공 분야로 보고 있지만,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만 보더라도 전공자 161명 중 반도체만 전공하는 학생은 30~40명뿐이거든요. 이 학생들이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건 아직 선택지가 아닐 수 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실험실 중심 창업활동의 성공모델을 발굴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전공자 교육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서울대는 비전공자가 대학이 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다양한 형태의 인증(마이크로 디그리)을 해주고 적정학점 이상을 이수하면 반도체 학사학위를 취득하게 해주는 교육과정을 통해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자금지원에도 나서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팹리스 기업의 반도체 개발 비용구조를 살펴보면 IP 확보에 30%, 설계에 30%, 시제품 제작에 40%를 쓰고 있습니다. 팹리스 창업기업의 빠른 성장을 위해 초기 R&D에 수반되는 비용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2020년 중기부-서울대-ARM 간 기업 체결을 통해 팹리스 창업기업에게 무상으로 ARM의 IP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총 14개 기업이 이 같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IP만큼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는 EDA(반도체 설계 자동화)툴 비용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글로벌 EDA툴 업체인 시놉시스사와 케이던스사의 EDA툴을 18개 기업에게 지원했습니다. 수요시장 연계를 위해 스마트팜, 데이터센터, 미래모빌리티 등 다양한 산업과 팹리스 기업들을 연결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향후 SIPC 계획이 궁금합니다.  
"내년에는 글로벌 역량 강화와 수요연계 네트워킹 고도화, 파운드리 생태계 강화를 중점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기업들이 겪고 있는 MWP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묶음 발주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공용 IP 개발과 확산을 주도할 IP 뱅크 사업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서울대가 보유하고 있는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컨설팅 사업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김영은 기자 kim.yeo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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