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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세대를 향한 새로운 구애 방식 ‘밈(meme)브랜딩’ [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온라인상 MZ세대 놀이 문화로 떠오른 ‘밈’
모방으로 공감대 얻으려는 밈 광고 잇달아
네티즌 아닌 브랜드의 밈은 반감 일으킬 수 있어

 
 
버니 샌더스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말춤을 추는 모습을 현상화한 밈. [사진 화면캡처]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 날, 초대를 받은 세계적인 저명인사들 가운데 주인공인 조 바이든보다 더 시선은 끈 인물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 중의 하나인 버몬트 출신 무소속 상원의원으로 진보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정치이념으로 두 번에 걸쳐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뛰어들어 젊은 층의 폭발적인 인기를 끈 바 있었지만, 여전히 미국의 마이너리티 정치인인 그가 대통령 취임식장의 ‘신 스틸러’(scene-stealer)가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밈(meme) 현상이다.
 
출발은 대통령 취임식에 걸맞은 성장을 한 권위적 유명 인사들 사이에 낡은 등산용 점퍼에 손 모아 털장갑을 끼고, 마치 미국 시골 촌로(村老)의 모습으로 다리를 꼰 채 추운 듯 웅크리고 앉아 있는 버니 샌더스의 사진 한장이다. 권위에 저항하는 이 인간적인 사진 한장이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그의 정치이념이자 브랜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인터넷과 SNS 통해 전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한 것이다. 지지자가 직접 손으로 떠서 선물한 털장갑을 끼고 손을 모으고 있는 것 역시 화제가 됐다. 이 장갑이 지지자가 낡은 스웨터를 업사이클링한 털실로 이 장갑을 만들어 그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지자, 진보적 이념의 실천가 이미지를 상징하게 됐다. 이후 이사진은 SNS상에 10만개가 넘는 의 밈(meme)으로 재창조되고 각각의 이미지는 수억 개의 ‘좋아요’로 인터넷을 달구었다.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된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장의 버니샌더스. [사진 화면캡처]
사진작품 'Lunch Atop A Skyscraper(1932)'를 패러디한 밈. [사진 트위터@EugeneGlukh]
텍사스의 토비킹이란 여성은 그의 취임식 패션을 형상화한 털실 인형을 만들어 이베이 경매사이트에 올렸는데, 7시간 동안 뜨개질로 만든 이 인형이 2만300 달러에 팔리는 일도 벌어졌다. 심지어 샌더스의 이 사진 한장은 티셔츠 등 각종 굿즈로 만들어져 5일 만에 20억원이 팔리는 진기록이 만들어졌다(물론 수익금은 모두 버몬트주 노인을 지원하는 자선단체에 기부가 되었다). 샌더스의 밈은 한국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불렀다. 강남스타일의 싸이가 그와 함께 말춤을 추는 사진으로 MZ세대들의 박수를 받았고 모 대학의 본관 앞에 앉아 있는 그의 합성사진을 대학입학원서를 기다리는 상황으로 묘사하며 신입생들의 눈길을 끌었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김장 행사에도 함께하며, 소탈한 샌더스는 한국의 불우 이웃을 돕는 미국인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진화생물학적 용어인 ‘밈’의 변화  

밈(meme)이란 말은 원래 진화생물학에서 유래한 말이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문화의 진화를 설명하면서 처음으로 사용한 학술용어다.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미메시스(mimesis)와 유전자(gene)의 합성어다. 이 책에서 도킨스는 밈을 ‘인간의 유전자처럼 자기 복제적 특징을 지니며 번식해 대를 이어 전해져 오는 사상이나 종교, 이념 같은 정신적 사유’로 정의했다. 다시 말해 밈은 사람들 사이에서 구전을 통해 재생산되는 모든 문화적 현상을 총칭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밈은 새로운 소통방식을 설명하는 용어로 재정의되었다. ‘재미와 보람을 중요하게 여기고, 느슨한 연대를 즐기는 세대와 기술의 발달이 만나 형성된 일종의 인터넷상 놀이 문화 혹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밈을 단순히 재미있는 영상 혹은 유행어로 생각할 수도 있어 한국어 표현으로 ‘짤’ 혹은 ‘짤방’으로 혼용되기도 하는데 동영상을 포함한 사회현상을 통틀어 말하는 ‘밈’과 다르게 ‘짤’은 단순히 재미있는 사진이나 GIF 파일, 혹은 동영상만을 통칭한다.  
 
즉, 밈은 특정 사진이나 영상보다는 누군가가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만든 특정 결과물을 함께 향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재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 문화 요소를 모방 혹은 재가공한 콘텐트로 유행, 챌린지, 짤, 패러디 등이 밈의 범주에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밈 현상은 이제 하나의 놀이 문화를 넘어 브랜딩과 마케팅을 좌우하는 하나의 트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오징어게임’ ‘똥 밟았네’ 등 밈 인기 얻어  

2022년을 통틀어 밈의 가장 큰 소재가 된 문화 현상은 역시 ‘오징어 게임’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전 지구적인 반향에 힘입어 수백만 개의 ‘짤’과 패러디 영상, 심지어 오징어 게임 로고의 핑크빛 글자체를 모방하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광고물이 등장했다. 패션 이커머스 브랜드인 무신사는 가장 먼저 넷플릭스와 공식 협업을 통해 오징어 게임에 등장한 초록색 체육복 456개를 추첨을 통해 한정 판매했는데 5일간 무려 18만8000여 명이 응모해 414대1의 경쟁률을 보이는 진기록을 만들었다.  
 
또 이 회사는 극 중 새벽 역을 맡은 정호연을 출연시킨 ‘셀럽도 다무신사랑’ 켐페인 인터뷰 영상을 공개하고 정호연을 브랜드를 대표하는 뮤즈로 전격 발탁하며 무신사스토어 입점 브랜드와 함께 화보를 선보였다. 이탈리아 커피 ‘일리’도 발 빠르게 밈을 이용했다. 오징어 게임 속에 ‘달고나’가 등장하면서 세계인들의 관심이 들끓자, 메뉴에도 없던 신제품 ‘달고나 커피’를 출시했다. 이커머스 브랜드 ‘위메프’도 밈 마케팅을 통해 온라인 서바이벌 ‘위메프 게임’을 개최해 퀴즈 정답 맞히기, 달고나 뽑기, 구슬 홀짝 맞히기 게임을 진행한 뒤 최종 승자에게 2000만원 상당의 쇼핑 포인트를 지급했다.  
 
EBS 애니메이션 ‘포텐독’의 ‘똥 밟았네’ 댄스영상. [사진 화면캡처]
오징어 게임이 성인용 드라마인데 반해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SNS의 밈 현상을 만든 사례도 있다. EBS ‘포텐독’의 ‘똥 밟았네’라는 2분짜리 영상이 그 주인공이다. 올 6월 말 처음 공개된 이래 불과 1개월도 안 돼 600만명이 보더니 지금은 1150만 명의 조회 수(21년 12월 8일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포텐독’은 뮤지컬 장르를 가미한 슈퍼히어로물로 인간과 특별한 능력을 지닌 ‘개’들의 이야기를 그린 3D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이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어른과 청소년들이 더욱 열광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주목을 받은 것이다. ‘똥 밟았네’는 극 중 악당들이 마을에 개똥 테러를 범하고 이로 인해 주민들이 개똥을 밟는 순간의 당혹스러움을 뮤지컬 형식의 노래와 춤에 담았다. 반복되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리듬에다 보는 사람들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게 만드는 안무를 더 해 묘한 조화를 이루며 넷티즌들을 열광하게 했다.  
 
노래와 함께 네 명의 등장인물들이 어딘가 본듯한 댄스를 보여주는데 자세히 보면 모두 케이팝의 군무들을 자연스럽게 가사에 맞도록 배합한 것이다.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댄스 동아리 출신 제작사 대표의 가족이 직접 안무를 제작하고, 노래는 제작사의 직원들이 직접 불렀는데 유튜브와 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각종 커버 영상이 쏟아졌다. 초통령인 팽수, ‘미스트롯2’의 가수 황우림, 아이돌 그룹 동키즈, 트와이스 등의 연예인들은 물론, 선생님과 학생, 친남매, 현직 댄서들, 장안의 춤깨나 춘다는 청춘들은 앞다투어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춘 댄스와의 싱크로 율 경쟁에 나서는 밈현상이 생겨났다. ‘똥 밟았네’는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이 들으면 중독성으로 공부에 지장을 준다는 이른바 ‘수능 금지곡’ 대열에 올라서며 ‘1일 1똥’ 이란 유행어를 만들 정도로 열풍을 만들었다.  
 

브랜딩에 밈을 활용하기 위해 기억해야 할 세 가지  

모든 밈을 이용한 브랜딩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밈은 네티즌들이 참여해 인터넷상의 새로운 문화 코드를 패러디하거나 모방을 해서 만들어지는 ‘짤’의 형태가 많다 보니 브랜드들도 패러디의 형태를 빌려 B급 감성을 집어넣는 브랜딩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그것이 네티즌에 의한 것이 아닌 기업이나 브랜드가 마케팅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불공정의 잣대로 그 브랜드를 평가한다.  
 
밈 열풍을 일으킨 가수 비의 깡. [사진 화면캡처]
지난해 가수 비가 2017년 발표한 ‘깡(Gang)’이란 그의 댄스곡이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의해 다시 역주행하는 현상이 일어나자 2020년 그의 댄스를 패러디하는밈현상이유행한 적이 있다. ‘깡’자가 들어간 수많은 제품이 밈의 유행에 편승해 마케팅으로 활용하려 했지만, 일부 브랜드가 가수 비의 엄청난 모델료를 감당할 수 없어 유사한 이미지의 다른 모델로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었다가 네티즌들의 엄청난 비난을 들으며 사과를 해야 했다.  
 
비슷한 사례로 개그우먼 박미선이 10여 년 전 출연한 ‘순풍산부인과에서 미달이의 엄마로 등장해 유행어로 만든바 있는 “ ~는 내가 할게, ~는 누가 할래”의 표현으로 최근 다양한 밈이 만들어진 적이 있다. 이것을 이용해 몇몇 브랜드들이 누가 봐도 박미선을 연상케 하는 캐리커처와 더불어 유행어를 활용해 광고로 만든 적이 있다. 이 역시도 공정의 가치에 어긋난다는 비난을 받고 광고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보듯 인터넷상에서의 밈이라 할지라도 공정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MZ 세대들에게는 기업이 남의 자산을 돈을 내지도 않고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불공정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절대로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밈(meme) 현상을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브랜딩에 성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직접 참여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그곳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밈코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밈은 단순 복제가 아닌 자신의 방식대로 콘텐트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메시지를 담아 콘텐트에 자신만의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공유가 가능한 형태여야 한다. MZ세대는 재미있고 유익한 것을 정보로 보기보단 공유할 만한 콘텐트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밈을 공유할 만한 가치를 가진 콘텐트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세 번째, 밈은 짧은 유행주기를 가지기 때문에 브랜드의 단기적 성과를 목표로 해야 한다. 장기적 브랜드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하지 않은 수단임을 인식해야 한다.
 
※허태윤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대학교수다. 제일기획과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글로벌마케팅에 관심을 가졌고, AR과 플랫폼 기업에 관여하면서 최근엔 플랫폼 기업의 브랜딩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외대에서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신대 IT콘텐츠학과 교수다.
 

허태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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