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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수출 2위 러시아, 부품 공급 막혀 전차 생산 차질 고심

첨단·정밀부품 확보 못 해 무기 생산능력 떨어져
서방 무기에 파괴된 러시아 전차, 수출에 부정적
영국, 인도에 러시아 의존도 낮출 군사 협력 제안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받고 파괴된 러시아군 탱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에 이어 세계 수출 2위의 러시아 방산업계가 위기에 빠졌다. 서방의 제재로 무기를 생산하기 위한 부품 조달이 어려워진데다, 실전에 투입한 러시아제 무기가 설계 결함으로 제 구실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서방은 러시아 방산 의존도가 높은 국가를 상대로 군사·경제 협력을 통해 ‘러시아 탈피’ 모색에 나섰다.
 
러시아는 냉전 후에도 신무기를 개발하며 방위 산업에 공을 들였다. 앞서 2015년 차세대 전차인 T-14 아르마타를, 지난해에는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수호이 Su-57과 LTS(경량전술항공기)인 Su-75 ‘체크메이트’를 공개하며 방산 기술력을 과시했다.
 
방산 수출 규모도 크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16~2020년 러시아의 무기 수출은 전 세계 총 수출량의 20%를 차지했다. 이는 세계 2위 기록으로, 같은 기간 3위인 프랑스(8.2%)의 2배가 넘고 1위인 미국(37%)의 절반을 넘어서는 수치다. 비록 2011~2015년 26%와 비교하면 감소했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세계 주요 무기 수출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사회 제제로 러시아 전차 공장 생산 중단 위기에 직면 

러시아 전차 생산업체 우랄바곤자보드 공장. [사진 NEXTA]
 
그러나 올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국제사회가 러시아에 대한 금수조치를 단행하자 러시아 방산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무기를 생산하기 위한 부품 조달이 어려워져서다. 여기에 전력상 우크라이나군을 압도할 것으로 보였던 러시아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달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침공이 러시아 방산업계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방산업계의 생산 라인이 옛 소련 시절에서 크게 현대화가 이뤄지지 않아 반도체 등 정밀 부품을 외국에서 수입해 사용해야 하지만, 금수조치로 인해 이들 부품을 입수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러시아 최대 전차 생산업체인 우랄바곤자보드사는 지난달 일부 근로자를 일시 해고했다. 전차의 무한궤도(캐터필러)에 들어가는 스웨덴제 베어링 수입이 중단된 것이 배경이다. 생산 라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며 회사는 러시아군의 수요를 채우는 것도, 외국과의 수출 계약을 이행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우랄바곤자보드의 노조 관계자는 “방산 수출 계약 이행은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며 “전략 부품 비축분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예루살렘포스트는 이달 17일(현지시간) GUR(우크라이나 정보국)을 인용해 우랄바곤자보드의 차세대 전차인 T-14 아르마타와 주력전차 T-90의 생산이 멈췄으며, 주력전차 T-72 생산 또한 상당히 늦어졌다고 보도했다.
 
파괴된 러시아 전차에서 떨어져 나온 포탑. [EPA=연합뉴스]
 
대전차 미사일과 드론 등 서방의 무기를 앞세운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전투기와 헬리콥터, 전차 등을 파괴한 것도 향후 러시아의 무기 수출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러시아제 전차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고질적 설계 결함도 주목받고 있다.
 
이달 27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벤 월러스 영국 국방부 장관은 이달 25일 영국 의회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후 약 9주간 러시아군이 약 580대의 전차를 손실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또한 군사 분야 정보 사이트 오릭스(Oryx)는 이달 28일 기준으로 러시아군 전차 최소 300대가 파괴됐고, 279대가 버려지거나 손상·노획됐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온라인에서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우크라이나군이 쏜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등에 피격된 러시아군 전차의 포탑이 튀어 오르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유되고 있다. 서방 군사 전문가에 따르면 이는 탄약고와 승무원 탑승 공간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T-72와 T-80 등 러시아군 주력전차에서 나타나는 문제다.
 
미국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 소속 전문가 샘 벤데트는 “우리가 목격하는 건 러시아제 전차의 설계 결함”이라며 “어떻게든 제대로 맞으면 빠르게 탄약에 불이 붙고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 포탑이 말 그대로 터져나간다”고 설명했다.
 
통상 러시아 전차는 포탑이 작고 납작하다. 적의 포탄을 맞을 확률을 낮추기 위해서다. 이에 자동장전장치 또한 차체 안인 포탑 하부에 설치돼있다. 이는 좁아진 내부공간에 포탄을 보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전차가 피격을 당하면 포탑 내 탄들이 연쇄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스콧 보스턴 선임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역에 폭파된 러시아 무기들이 널려있는 모습은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무기 수준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인상을 확산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러시아 의존도 높은 인도에 “전투기 제작 돕겠다”

이달 22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정상회담을 한 존슨 영국 총리(왼쪽)와 모디 인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이처럼 러시아 내부에서 무기 생산이 차질을 빚는 가운데 외부에서도 서방이 외교적 방법을 동원하며 러시아 방산업계의 위기를 키우고 있다. 특히 영국이 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인 인도를 향해 군사·무역 협력 강화에 나섰다.
 
힌두스탄타임스 등 인도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이달 22일(현지시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정상 회담을 열고 국방, 에너지, 투자 등 여러 방면에서 협력을 약속했다.
 
당시 회담에서 존슨 총리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인도의 자체 전투기 제작을 돕고 군사 물자의 납품 시간을 단축하는 등 국방 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이어 “영국과 인도는 새롭고 확장된 국방·안보 파트너십에 동의했다”며 “인도는 이를 통해 자국 국방 산업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디왈리(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열리는 인도의 대표적인 힌두교 축제) 이전까지 새로운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사시키는 게 목표”라며 “인도가 여러 관세를 인하하는 것에 감사하며 우리도 관세를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이 인도에 대한 군사·무역 분야 지원 의지를 드러낸 것은, 러시아에 대한 군사·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인도의 상황과 맞물려 주목을 받았다. 인도는 서방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산 원유 수입도 최근 크게 확대했다.
 
인도는 미국 주도의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에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지 않았다. 지난달 초에는 유엔 총회의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이어 이달 8일 우크라이나 부차 민간인 학살 의혹과 관련한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정지 결의안 표결에서도 기권을 택했다.
 
AP통신은 이번 영국과 인도 사이의 정상회담을 두고 “존슨 총리가 경제와 국방 협력 확대를 통해 인도의 러시아에 대한 의존 탈피를 도우려는 조치를 발표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같은 러시아 방산의 위기가 국내 방산업계의 호재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무기를 도입한 국가가 국내 무기를 도입하면 기존에 운용하던 러시아제 무기와의 연계·호환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서유럽의 방산업계가 시장 확대를 모색하고 있는 점도 넘어야 할 산이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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