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총대주교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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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공산주의→푸틴’ 권력에 결탁해온 러시아 정교회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2/05/13/ecn2d19daff-b133-4974-931f-517d8114c928.353x220.0.jpg)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종교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상호 화해를 시도해온 서방의 가톨릭과 러시아의 러시아정교회가 전쟁을 계기로 새롭게 대립하고 있다. 러시아정교회의 수장인 키릴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전쟁과 이를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하는 발언을 계속하면서다. 가톨릭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5월 3일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인 코리에레델라세라와 인터뷰를 하면서 “전쟁이 지속하는 한 러시아정교회의 키릴 모스크바 총대주교를 만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교황은 이 말을 하면서 “키릴 총대주교는 푸틴의 복사(服事)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숨기지 않았다. 복사는 가톨릭 교회에서 미사를 드릴 때 사제나 수도사의 곁에서 이를 보조하는 평신도다. 푸틴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키릴 총대주교를 푸틴의 대리인‧보조인으로 보고 있음을 나타낸 셈이다. 중교인인 키릴이 본연의 직분을 다하지 않고 오히려 푸틴의 전쟁을 거들고 있다고 공개 비판한 것이나 진배없다. 다음날 러시아정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터뷰 내용이 양측 간의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키릴 총대주교는 이번 전쟁에 대해 “서방 위협으로부터 러시아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무력 수단”이라고 말하는 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둔해왔다. 교황과 키릴 총대주교는 개전 뒤인 3월 16일 영상 통화를 하고 전쟁과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우려를 공유했다. 하지만 이는 형식적이었을 뿐이었다. 키릴 총대주교는 그 뒤로 전쟁을 옹호하고 푸틴을 칭송하는 발언을 해왔다. 그 전에도 “푸틴의 통치는 기적”이라고 하는 등 푸틴을 미화해왔다. 정치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례는 영혼을 다뤄야 할 종교까지 세속의 정치과 권력의 종속물이 된 푸틴 통치 하의 러시아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키릴 총대주교는 일각에서 종교인이라기보다 푸틴 팬클럽의 ‘아미’에 가까운 인물로 평가한다. 푸틴과 동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공산 시절엔 레닌그라드) 출신으로 푸틴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푸틴의 동지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실제로 2009년 종신직으로 러시아정교회 수장인 모스크바 총대주교 선출된 당시 잠시 총리로 물러나 있던 푸틴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지지를 받았다는 평이다. 당시 메드베데프는 선거권을 쥔 고위 정교회 인사들은 특별히 만찬이 초대해 함께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사제임에도 무려 40억~80억 달러의 재산을 축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내용은 당국의 통제에서 벗어난 러시아 독립 언론의 탐사 보도에 단골로 등장한다. 3만 달러 상당의 최고급 스위스 시계를 찬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 카릴, 종교인이라기보다 푸틴 팬클럽에 가까워 키릴 총대주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두 달째이자 정교회의 부활절인 4월 24일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이날은 사실 러시아의 침략을 받은 우크라이나엔 여러모로 극적인 하루였다. 이날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찾았다. 블링컨과 오스틴 장관은 이날 키이우의 모처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 90분간 면담한 뒤 폴란드로 이동했다. 이 자리에선 중화기를 포함한 미국산 무기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주목되는 점은 두 장관의 방문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북부 키이우 전선에서 철수하고 전력을 동남부 돈바스 지역과 남부 해안 지역에 집중하며 전쟁 양상이 새롭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에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이 지역은 평야로 이뤄진 개괄지여서 화력 중심의 러시아군이 일단은 유리한 상황이다. 병력과 무기에서 여전히 열세인 우크라이나로선 불리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독일을 비롯한 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의 화력을 강화할 다양한 무기의 공급에 나서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하루 전인 23일 이를 공개하면서 “미국 대통령도 찾아와 우크라이나 국민을 지지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젤렌스키는 "키이우에 오려면 빈손으로 와선 안 된다"며 "우리는 중무기가 필요하며, 이들과 이를 전달하는 일정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외교와 국방을 맡은 블링컨과 오스틴은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이 나라를 방문한 최고위급 미국 인사가 됐다. 바이든은 3월에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폴란드를 방문했고, 블링컨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까지 와서 우크라이나 외교부 장관을 만난 회담하긴 했지만, 국경을 넘어 수도 키이우까지 찾지는 않았다. 이들의 키이우 방문과 정교회 부활절 하루 전날이자 23일 젤렌스키는 키이우 독립광장 지하철역에 나가 회견을 하면서 마이크 앞에서 “부활절을 앞두고 러시아는 (남서부 항구도시인) 오데사에 미사일 7발을 쐈다”고 밝히면서 피를 토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미사일 한 발이 민가를 피격해 생후 3개월 된 신생아를 비롯해 8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고 공개하면서 “숨진 아기가 태어난 지 1개월이 됐을 때 전쟁이 시작됐다”며 울먹였다. 젤렌스키는 “개자식” “나치” “러시스트(러시아+파시스트)” 등의 강한 표현을 줄줄이 동원하면서 러시아를 공격을 비난했다. 개전 이래 SNS에 200여 개의 동영상 연설을 올리고 20여 개국의 의회에서 화상 연설을 했던 젤렌스키가 이런 격앙된 모습을 보인 것은 드문 일이다. ━ 러시아 정교회, 참전 부추기는 “군복무=복음” 논란 다음날인 4월 24일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의 크렘린 인근에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에서 키릴 총대주교의 집전으로 열린 부활절 미사에 참석했다. 이날 부활절 미사에서 키릴 총대주교는 “생명을 긍정하는 위대한 부활절을 축하한다”면서 푸틴 대통령에게 “심신의 강건과 러시아 대통령으로서 책임 있는 봉사의 성공을 기원한다”고 축원했다. 기독교의 정체성과 관련이 큰 부활절에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평화의 메시지는커녕 전쟁을 일으킨 인물의 건강과 성공을 기원한 것이다. 사실 키릴 1세는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를 지지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왔다. 그는 푸틴이 일으킨 전쟁을 동성애를 비롯한 서구의 재앙으로부터 러시아를 보호하는 성전이라고 주장해왔다. 부활절 전날인 4월 23일에는 푸틴에게는 “러시아 국민을 위해 품위 있고 책임감 있는 봉사를 하고 있다”고 칭송했다. 젊은이들에게는 “군 복무는 이웃을 향한 복음주의적 신념의 적극적인 표현”이라고 입대와 참전을 권유하는 발언도 했다. 러시아는 정교회의 부활정 성주 간(21~24일) 동안 인도주의적 휴전을 하자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제안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23일 오데사에 미사일 공격을 퍼부어 아기가 숨지는 비극을 연출했다. 러시아는 구테흐스 총장이 26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28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하기 위해 키이우를 찾은 바로 그 시간에 키이우에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바람에 우크라이나 라디오 방송의 기자 겸 프로듀서가 숨졌다. 정교회의 성주간도, 부활절도 푸틴의 전쟁 앞에서는 평화의 메시지를 발신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국무·국방부 장관이 키이우를 방문한 다음 날인 4월 25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철도역을 줄이어 미사일로 공격했지만 이미 이들이 우크라이나를 떠나 인접한 폴란드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부활절에 우크라이나는 희망을 얻었고, 러시아에선 정교회 최고 사제인 키릴 총대주교의 푸틴에 대한 칭송이 메아리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인류의 존망과 연결된 핵무기 사용과 관련한 발언은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가 보유한 핵무기를 앞세워 서방을 위협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 말고 자국의 손에 넘기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날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부 장관은 자국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제3차 세계대전과 핵전쟁을 언급했다. 라브로프는 “(핵전쟁) 위험이 실재하고 심각하다”며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러시아가 최근 핵무기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공격 능력을 부각한 상황에서 라브로프의 발언이 나온 데 주목해야 한다고 뉴스위크가 지적했다. ━ 러시아·우크라이나 종교 뿌리, 동방 정교회서 갈라져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라브로프는 “나토는 본질적으로 대리인(우크라이나)을 무장시켜 러시아와 전쟁하고 있다”며 “전쟁은 전쟁을 의미한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과 나토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중단하지 않으면 핵전쟁을 포함해 확전할 수 있음을 위협한 셈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동방 정교회의 주류 지역이다. 러시아는 지난 1월 기준으로 1억4550만의 인구 중 41.4%가 러시아정교회 신자이며 6,4%가 다른 기독교 신자로 나타나 6.5%인 무슬림을 압도한다.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다. 4116만의 인구 중 82%가 기독교 신자이며 72.7%가 정교회를 따른다. 같은 정교회 신자라도 키이우 대주교를 따르는 교회와 모스크바 총대주교를 따르는 교회로 나뉘는데 58.3%는 키이우를, 25.4%는 모스크바를 각각 따른다. 정교회라고만 밝히고 어디를 따르는지를 밝히지 않은 신자도 상당수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1054년 분리(대분열)됐지만, 사실 기독교는 그 이전에도 교리 해석을 둘러싸고 분열(소분열)을 해왔다. 기독교는 325년 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의 삼위일체설을 정통으로 받아들이고,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 아리우스파를 파문한 뒤 단일 체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431년 비잔틴의 테오도시우스 2세가 소집한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해서 양자가 병존한다는 네스토리우스의 주장 대신 신성과 인성이 하나라고 설파한 키릴루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네스토리우스파가 떨어져 나갔다. 네스토리우스는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교회에서 쫓겨나 수도원에서 쓸쓸히 여생을 살았다. 그 뒤 451년 칼게돈 공의회에서 이를 재확인하고 예수가 신성을 지난 채 성모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테오토코스(신성 출산)’이라는 단어를 신앙 고백인 ‘칼게돈 신조’에 넣고 이를 정통 교리로 확립했다. 네스토리우스파는 이단으로 배척됐다. 네스토리우스파는 중동과 중국 등으로 옮겨, 중동에선 아시리아 동방교회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선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기원 42년 복음사가 마르코가 이집트에서 설립해 수단‧리비아 등으로 교세를 확장한 곱트 정교회와 에티오피아의 테와히도 정교회, 시리아와 인도의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아의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등 오리엔트 정교회도 단성설을 따르면서 이때 분리됐다. 주류 기독교는 당시 확립된 동일 교리를 따르는 공교회 또는 보편교회로 불렸다. 실질적으론 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로마‧예루살렘‧알렉산드리아‧안티오키아 등 지역 교회로 운영됐다. ━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드러난 러시아 정교회 본심 하지만 게르만족의 프랑크 왕국이 800년 서로마제국, 962년 신성로마제국을 세우고 세력을 확대했으며, 로마 교회는 게르만족 등에 대한 적극적인 포교로 교세를 확장했다. 프랑크족왕국은 로마 교회의 보호자가 됐다. 762년 동로마 황제 레오 3세의 성상 파괴령으로 갈등하던 로마 교회와 나머지 지역 교회는 1054년 로마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총주교가 상호 파문하면서 결국 분열(대분열)했다. 현재까지도 양측은 성상‧전례‧복식‧사용언어와 사제의 결혼 허용 등에서 서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대분열을 두고 로마 가톨릭은 동방 정교회와 분리된 것으로, 정교회 측에선 로마 교회가 보편교회 연합체에서 이탈한 것으로 각각 다른 시각을 보인다. 그 뒤 1204년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약탈 등으로 양측은 관계를 완전히 끊었다. 그 뒤 1453년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튀르크에게 점령된 이후로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자신들이 정교회의 맥을 잇는다는 신념을 유지하고 있다.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좌는 무슬림인 오스만튀르크 제국 하에서도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정교회는 제정 시절에는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고, 공산 시절에는 공산주의자들과 협력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바른 말을 하고, 힘없는 사람을 대신해 정의를 추구하는 대신 권력의 일부가 되어 탄압을 피하는 것은 물론 달콤한 특권까지 누려왔다는 지적이다. 2009년부터 모스크바 총대주교를 맡고 있는 키릴 총대주교는 정도가 심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동안 외부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던 푸틴 권위주의 체제 하의 러시아에서 종교가 보여주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슬라브족의 영혼을 어루만지며 온갖 환난 속에서 민중을 위로해왔던 정교회가 권위주의 권력과 결합해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지를 전 세가 똑똑하게 목격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러시아정교회의 위기를 부를 수 있는 비극적인 상황이다. 후과가 오래 가고, 역사에 치욕으로 남을 사건이 아닐까.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2.05.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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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런 러시아의 적들이 도처에 있다”고 이반 오스트라코프스키가 말했다. 모스크바 거리의 야간순찰을 도는 어느 러시아 정교회(Russian Orthodox) 자경단 지도자다. 그는 해골과 십자가가 새겨진 완전 검정색 옷차림이다. 그는 “자유주의자와 그들의 사악한 이데올로기로부터 성지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그들의 파괴 행위를 막지 못한다. 그들은 십자가를 쓰러뜨리고교회 벽에 낙서를 한다.”오스트라코프스키에게서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했던 트래비스 비클의 열정이 느껴진다. 마틴 스코시즈의 걸작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불만을 품은 주인공처럼 이 자경단원은 문화적 타락에 맞서 싸우는 의인을 자처한다. “체첸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온나라가 쓰레기투성이였다”고 그가 말했다.“매춘, 마약, 악마숭배자들. 하지만 지금은 종교가 살아난다.”몇 년 전만 해도 오스트라코프스키와 그의 자경단원들은 러시아에서 지엽적인 흥미거리에 불과했다(seemed like marginal curiosities in Russia). ‘사악한 마법’에 항의해 해리 포터 책들을 불태우는 정도였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3기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는 이들 폭력배들은 이제 크렘린 그리고 러시아 정교회 체제에서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와 딱 맞아떨어진다. 공산당 치하에서 거의 말살될 위기에 몰렸던 러시아 정교회가 러시아 정치의 한복판에서 되살아난다.자유주의 반정부 세력은 국가부패와 선거부정에 맞서 싸운다. 푸틴은 이 싸움을 ‘외세 악마(foreign devils)’ 대 ‘성스러운 러시아(Holy Russia)’의 구도로 몰아가려애쓴다. 그런 노력에서 러시아 정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다.야권 세력들은 연합해 재선된 푸틴 대통령에 맞서 싸웠다. 그러자 성직자들이 잇따라 나서 그들을 목청 높여 비난했다. 러시아정교회의 키릴 총대주교는 TV에 나와 “자유주의가 득세하면 법이 무너지고 세상의종말이 온다”고 말했다. 또 한번은 푸틴의 통치를 “기적”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대사제 드미트리 스미르노프는 언론 인터뷰에서 “최초의 혁명가는 사탄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최근 모스크바 중심부의 정교회 성당에서 “불경스런(blasphemous)” 기도를 했던 펑크 록그룹 푸시 라이엇의 여성 운동가 3명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이들은 “러시아에서 푸틴을 몰아내 달라(to rid Russia of Putin)”고 성모 마리아에게 기원하는 공연을 한 죄로 2년 형을 선고 받았다. 이 재판은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려 애쓰는 크렘린에게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었다(has been a godsend for the Kremlin). 그 재판결과는 서방에서 비난을 받았다. 인권단체로부터, 폴매카트니, 마돈나까지 모두가 푸시 라이엇을 지지했다. 하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극우파가 그 재판을 이용해 자국이 외세의 공격을 받는다는 피해의식을 부추겼다. “꼭두각시들이 조종당한다(The puppets are having their strings pulled)”고 일간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가 썼다. 푸시 라이엇이 미국의 지시에 따르며,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LGBT)의 권리에 대한 미국무부의 지지는 러시아의 정신적 토대를 저해하려는 음모라고 추측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푸시 라이엇 재판에 대한 서방의 비판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서방”에서 잊혀진“기독교의 가치”를 러시아가 신봉한다는 증거라고도 말했다.“그리스도가 ‘모두를 용서하라’고 말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TV 정치 평론가 미하일 레온티에프가 자신의 프라임타임 쇼에서 그 재판을 가리켜 한 말이다. “우리에게는 조국의 적들, 신의 적들을 용서할 권리가 없다.”러시아 부총리의 측근인 알렉산더 보시크는 종교-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푸시 라이엇 재판에 항의하는 여성 시위자에게 주먹을 날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뒤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아는 사람에게만 반대쪽 뺨을 내민다(You only turn the other cheek to people you know). 그녀는 모르는 사람이라서 때렸다(I don’t know her so I hit her).”남부 도시 로스토프온돈에서 발생한 최근의 사건은 암울해지는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머리를 빡빡 민 한 무리의 남성들이 푸시 라이엇 선고에 항의하던 한 시위자에게 발길질과 주먹질 세례를 퍼부었다.경찰에 연행된 그들은 종교적 민족주의 주장을 늘어놓았다. “그는 우리가 신성하고 성스럽게 여기는 것들을 모욕했다. 우리는 헬스장에서 같이 운동한다 … 그리고 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정교회는 오래 전부터 러시아인들의 정체성에서 핵심을 이뤘다. 988년 블라디미르 1세가 러시아의 역사에서 아마도 가장 중대한 선택을 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키예프공국(Kievan Rus, 키예프 대공이 지배한 시대의 러시아)에 로마가 아닌 비잔티움 방식의 기독교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 뒤로 세월이 흐르면서 러시아는 서유럽의 기독교 전통과 정치적 네트워크에 깊은 의혹을 품게됐다. 1547년 이반4세(Ivan the Terrible, 이반 뇌제)가 전 러시아 최초의 차르에 올랐다. 그러자 교회는 모스크바를 “제3의 그리고 마지막 로마(Third and Final Rome)”이자 성베드로의 로마와 비잔티움의 계승자,이단에 빠진 유럽에 맞서는 정교회의 마지막 보루라고 선언했다.교회의 권력은 차르들이 몰락할 때까지 도전 받지 않고 계속됐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새로운 혁명가들의 주요 표적이 됐다. 새로 권력을 잡은 블라디미르 레닌은 동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반동적인 성직자 대표들을 많이 쏴 죽일수록 좋다(the more representatives of the reactionary clergy we shoot, the better).” 1917년 이후 소련에선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이후 최대의 기독교 박해가 자행됐다. 20만 명의 성직자가 학살되고 4만1000개소의 교회가 파괴됐다.하지만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무신앙을 공개 표방하면서도 계속 종교적인 패러다임을 이용했다. 붉은 군대 퍼레이드에 당 지도자들의 성상을 앞세우고, 선구적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인용하고,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의 신조를 ‘사회주의 성삼위일체(the Socialist Holy Trinity)’로 묘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신학교 출신인 조셉스탈린이 국가 단합을 위해 교회를 부활시켰다. 그는 러시아인들을 가리켜 종교적인 울림이 있는 “형제 자매들”이라고 표현했다.교회는 1989년까지 정보기관의 엄격한 감독아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성직자들은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지시를 받고 고해성사에서 들은 흥미로운 정보는 무엇이든 신고해야 했다(were expected to relate anything of interest told in confession). 기독교도들은 박해 받았지만 총대주교는 항상 소련에 대한 지지를 천명했다. “우리 나라의 신자든 비신자든 모두 평화로운 하늘 아래 협력한다”고 부총대주교가 1974년 서방 신문에 썼다.소련의 몰락 이후 교회는 세력을 재건해왔다. 오늘날 러시아 민족의 90%가 정교도 신자를 자처한다. 독립적인 조사단체 레바다 센터와 사회학 연구소 VCIOM의 통계다.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정교도 신자 중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간다는 응답자는 10%에도 못 미친다. 그리고 그들 중 30%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교도 무신론자(Orthodox atheist)’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다. 극우 진영에서 정교도 슬로건들이 많아지지만 러시아가 이란 스타일 종교 혁명의 한복판에 있는 건 분명 아니다. 그러나 종교는 여전히 러시아 국민적 정체성의 뚜렷한 지표다. 그리고 옛 차르 시대 “전제정치, 정교회, 독립국가(Autocracy,Orthodoxy, Nationhood)” 공식의 주춧돌이다. 크렘린은 이들 공식을 21세기 정서에 맞게 재정립하는 중이다.러시아 정부는 교회 박해에서 교회의 트로푸스(중세 미사곡에 삽입된 선율 및 설명적인 가사)를 차용하는 쪽으로 돌아섰다(has gone from persecuting the church to co-opting its ancient tropes).2008년 프라임타임 대에 TV에서 ‘비잔티움의 교훈(The Lessons of Byzantium)’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해설자는 푸틴의 개인 고해신부 아르키만드리테 티콘이었다. 교회와 통합된 중앙 집권화된 정부와 황제 아래서 문화적으로 우수한 비잔티움이 어떻게 번창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들의 부를 약탈하려는 서유럽의 ‘야만인들’,부패한 과두정치 독재자들, 그리고 진실하지 않은 베네치아인들에 의해 몰락했다고 주장했다(was supposedly brought low by acombination of “barbarians” from WesternEurope intent on pillaging its wealth; corrupt oligarchs; and mendacious Venetians). 비잔티움의 몰락에 관한 이 같은 해석은 학계에서 많은 지지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푸틴의 권력집중화,라이벌 신흥재벌들의 투옥, 신중한 외교정책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블라디미르메딘스키 신임 문화부 장관도 비슷한 철학을 갖고 있다. 러시아에 관한 이른바 “ 추악한 괴담(dirty myths)”의 실체를 폭로하는 수정주의적인 대중역사서로 잇따라 베스트셀러를 기록해 이름을 날렸다. 메딘스키는 이반뇌제가 실제로는 “인간적인 통치자”였으며 소련은 발트해 국가들을 침략하지 않고 통합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러시아만큼 “그렇게 지속적으로 많이 악마 취급을 당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has faced so much prolonged demonization)”고 메딘스키는 말했다.교회의 ‘제3로마’ 유산은 소련의 개인숭배, 그리고 강한 리더십을 떠받드는 감방 문화의 만연으로 더욱 힘을 받는다(reinforced by Soviet personality cults and a pervasive prison culture that celebrates strong leadership). 이 유산은 하늘이 선택한 독재자가 이상적인 러시아 지도자라는 개념을 뒷받침한다(underpins the concept of the ideal Russian leader as a divinely chosen autocrat). 따라서 푸틴은 대선에서 2차 결선투표(a second-round runoff)를 할 수 없었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연출된 결선투표였더라도 경쟁의 요소를 주입해 정통성을 부여했을 터였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도전이라도 푸틴의 준 군주 이미지에 타격을 준다고 우려한 듯하다(would have been a blow against Putin’s quasi-monarchical aura).푸틴이 대통령에 오른 뒤 가장 먼저 함께 사진 촬영을 한 그룹 중 하나가 나이트 울브스였다. 정교회 오토바이 폭주족 그룹이다(a gang of Orthodox bikers). 이들은 과거 반소·친미 저항세력이었다. 지금은 애국적이며 푸틴을 지지한다. 자신들이 가죽옷과 깃발에 새겨 넣은 글도 영어에서 키릴어로 바꿨다. 나이트 울브스의 주제가는 포크 메탈음악 ‘슬라빅 스카이(Slavic Skies)’다. 이 곡의 뮤직 비디오에선 몸에 달라붙는 청바지와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한 로커들의 모습과 러시아 기사들이 침략자들과 싸우는 장면이 교차한다. 몽골 유목민들의 씨앗이 우리 사이를 파고든다 / 이단자들의 멍에가 우리를 옭아맨다 … 하지만 슬라브의 하늘이 우리 핏줄 속에서 들끓는다…푸틴은 올해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서 열린 연례 나이트 울브스 페스티벌에 찾아갔다. 리무진을 이용했지만 지난 번에는 가죽 재킷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세바스토폴은 예카테리나 여제(Catherine the Great)가 제국흑해함대를 창설한 곳이다. 그리고 이 항구는 크림 전쟁 때 대대적인 포위공격도 이겨냈다. 러시아 특유의 장엄함을 상징하는 이 도시는 1989년 독립을 선포한 우크라이나의 일부가 됐다.크림 반도에는 아직도 러시아 말을 하는 인구가 과반수를 차지한다. 크림반도 방문 여권 신청자도 꾸준하다. 세바스토폴에는 러시아 해군 기지도 있다. 크렘린은 해마다 기지 사용료로 9800만 달러를 우크라이나에 지불한다. 군사적인 측면만큼 그 상징성도 크다. 러시아 정교회의 고위 성직자들도 그 오토바이 축제에 참가했다. 그리고 “빛나는 러시아가 세바스토폴을 포기하지 않도록”촉구했다(토플리스 여성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폭주족들을 꾸짖기도 했다). 폭주족들은 푸시 라이엇 재판 이후 모스크바 시내를 통과하는 대규모 행진을 벌였다. 교회를 지킬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였다.8월 18일 세르게이 바라노프가 푸시 라이엇 재판에 항의해 사퇴했다. 재판 이후 성직자로선 처음이었다. 그 뒤로 그를 알코올 중독자로 몰아붙이는 비방전이 펼쳐졌다고 한다. 지방 정부의 고위층이 병약한 모친과 함께 거주하는 그의 탐보브 소재 아파트를 방문했다. 그의 입을 막기 위해서였다(러시아의 한 언론인이 이 사건을 목격했다). 그가 비판 강도를 낮추도록 설득하라고 가족과 친지들을 압박했다.바라노프는 정교회 주교들이 “KGB처럼 행동하는” 이유를 언젠가 한 종교 지도자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그들 모두 KGB였기 때문이다. 협박, 음모, 부패 등 그들의 방식대로 일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교회는 자신들의 KGB 전력을 공개적으로 조사한 적이 없다. 1990년대 초 문서기록이 공개됐을 때 과거와 현재의 총주교들이 KGB 요원 출신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들의 구체적인 행적이 드러나기 전에 그 파일들이 곧바로 다시 봉인됐다.“교회의 비극은 항상 정부와 너무 가까워졌으며 정부가 교회의 돈줄이라는 점이다. 요즘 교회는 자신들이 비중 있고 쓸모 있는 존재임을 크렘린에 증명하려 애쓴다”고 모스크바의 대사제 알렉세이 우민스키가 말했다. 그의 교구에는 시위에 참가했던 신자들도 있다. 그는 교회가 학교와 지방정부의 부패에 관해 정부에 “답변을 요구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우리는 갈림길에 서있다. 교회가 양심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지 않으면 크렘린의 잘못을 모두 덮어쓰게 된다(either the church starts to stand up for conscience or it will get blamed for all the Kremlin’s faults).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오랜 환상을 버려야 한다. 바로 ‘제3의 로마,’ 정교회초강대국의 꿈”이라고 우민스키가 말했다. 지난 8월 우민스키는 시노드(Synod, 가톨릭교회에서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 열리는 회의) 홍보부 책임자로부터 비난을 들었다. “평화주의와 기독교 정신을 혼동한다(confusing pacifism and Christianity)”는 지적이었다. 우민스키 같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대체로 총대주교의 친크렘린 파벌들의 목소리에 파묻히고 만다. 이것이 진정한 충성심의 발로일지도 모르지만 경제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90년대 교회의 면세담배 판매가 허용됐다. 러시아로 반입되는 모든 담배의 10%를 수입했다.푸틴의 부상 후 교회는 정부와 관련된 에너지 대기업들로부터도 후한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교회의 자산은 현재 수십억 달러로 추산된다. 2004년 러시아 의회는 혁명 전 교회 부동산을 모두 되돌려주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에 따라 교회는 잠재적으로 러시아 최대의 땅 소유주가 됐다. “교회는 국가의 지원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한다”고 성직자 드미트리 스베르들로프가 말했다. “세법을 약간만 조정해도 교회는 무너진다.”올해 키릴 총대주교의 개인적 취향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졌다. 3만 달러 이상을 호가하는 스위스제 브레게 시계를 찬 총대주교의 사진이 발견됐다. 그리고 모스크바에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펜트하우스를 보유한 사실도 밝혀졌다. 키릴의 개인재산이 무려 40억 달러에 달한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한편 어느 소비자권익 시민단체는 총대주교가 기업 파티 등 상업적인 활동에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을 이용한다고 비난했다. 푸시 라이엇이 ‘불경스러운’ 성격의 공연을 한 곳이다. 러시아 법원은 그것이 “권장 가격에 상호 선물을 주고받는(mutual gift-making for a recommended price)”활동이었지 상업적이지는 않았다고 판결했다. 그 소비자권익 단체는 새로운 형태의 금융거래를 창안한 공로로 총대주교를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추대하겠다고 비꼬았다. 이에 맞서 키릴은 한 TV 인터뷰에서 금융부정과 관련된 비난을 교회 건물에 대한 무작위 훼손 행위와 연관지었다. “온 세상에 고한다. 교회는 파괴되지 않는다(We tell the whole world—the church cannot be destroyed)!”지난 8월 자유주의자들과 골수 정교회민족주의자들 간의 분쟁이 극에 달했다(reached a fever pitch). 카잔에서 모녀가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 발생한 뒤였다. 그들의 아파트 벽에 피로 “푸시 라이엇을 석방하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푸시 라이엇 지지자들이 “모녀를 살해했다”며 거품을 물었다. 대사제 스미르노프는 “국내외 푸시 라이엇 지지자들의 양심위로 피해자들의 피가 흐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곧 살인 용의자가 종교인으로 밝혀졌다. 용의자 모친에 따르면 그는 펑크 운동가들을 싫어했으며 수사에 혼선을 일으키기위해 피로 벽에 글씨를 쓴 듯했다.정교회의 푸틴 지지자들은 때로는 무섭고 종종 날카로운 발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푸틴의 새로운 통치방식은 용의주도한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카니발을 더 닮았다(resembles less a thought-out program than a carnival). 정보원들이 성직자 복장을 하고(spooks dress up in cassocks) 폭력배들이 십자가를 목에 걸고 중세 신학, 소비에트 음모론, 포크 메탈 코러스의 단편들을 외치는 모습이다. 게오르기즈 미트로파노프는 대단히 독립적인 성직자이며 정교회가 어떻게 과거사를 덮어버렸는지에 관해 광범위한 글을 저술한 유일한 대사제다. 그는 러시아의 한종교잡지와 인터뷰에서 상당히 예리한 해석을 제시했다.“우리는 20세기에 정직한 사람들을 아주 많이 잃었다.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들말이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모방과 연기가 일상화된 사회가 됐다(we have created a society where imitation and role play are the norm)”고 미트로파노프가 말했다. “전에는 공산주의를 건설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기회를 주는 슬로건만 내세웠다. 지금은 새로운 무리, 그리고 옛날 사람들 중 일부가 ‘성스러운 러시아’를 외친다. 그 구호에는 아무런 의미도 담겨 있지 않다.”
2012.09.11 15:26
11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