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나선' 검색결과
2 건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유엔 무능력과 러시아 미래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2/04/22/ecne12c69b9-f845-4b06-bf80-eb600cf68bb2.353x220.0.jpg)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최대의 다자외교 무대인 유엔(UN·국제연합)이 요동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핵보유국인 러시아가 국경을 맞댄 주권국가를 침공하면서 유엔 체제에 대한 개혁 요구가 거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국제 정치·경제적 위상도 급변하고 있다. 국제 규범과 질서도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한 다양한 압박이 임계점을 향해 팽창하고 있다. ━ 유엔, 러시아 비난 결의안 채택 실패, 규탄에 그쳐 유엔은 어떻게 될까. 1945년 6월 26일 마련된 유엔헌장에 따라 그해 10월 24일 창설된 유엔은 지난 76년 동안 국제사회의 평화와 규범, 질서를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해왔다. 가장 중요한 임무가 바로 국제 평화와 안전의 유지다. 이는 유엔의 존재 이유다. 유엔이 제1차 세계대전 종전 뒤인 1920년 1월 10일 설립된 국제연맹(NL)이 제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음을 반성하면서 설립한 국제기구이기 때문이다. 유엔헌장은 유엔의 주요 목적을 ‘국제 안전보장과 경제·사회·문화 분야의 국제협력’이라고 명시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평화와 안전보장이다. 서문을 보면 구구절절 평화를 강조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연합국 국민은 우리 일생 중에 두 번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인류에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고,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 및 가치, 남녀 및 대소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며, 정의와 조약 및 기타 국제법의 연원으로부터 발생하는 의무에 대한 존중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을 확립하며, 더 많은 자유 속에서 사회적 진보와 생활 수준의 향상을 촉진할 것을 결의했다. 이런 목적을 위해 관용을 실천하고 선량한 이웃으로서 상호 간 평화롭게 같이 생활하며,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힘을 합하고, 공동 이익을 위한 경우 이외에는 무력을 사용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원칙의 수락과 방법의 설정 때문에, 보장하고, 모든 국민의 경제적 및 사회적 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 국제기관을 이용한다는 것을 결의하며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의 노력을 결집할 것을 결정했다.” 그 결과 유엔은 미국·러시아(소련을 승계)·영국·프랑스·중국(중화민국(대만)을 승계) 등 거부권을 가진 다섯 개 상임이사국(P5)을 포함한 안전보장이사회 등을 두고 국제 안보와 관련한 권한을 확보하고 있다. 유엔은 현재 193개 회원국과 표결권이 없는 2개 총회 옵서버 국가(바티칸·팔레스타인)을 둔 세계 최대 다자외교 기구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올해 2월 24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주권국가로 유엔회원국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제사회의 규범과 질서의 축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P5 국가인 러시아가 침략했는데도 유엔은 사태에 실질적으로 사태 해결을 위해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다. 유엔 안보리는 2월 27일 회의를 소집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난하는 결의안 채택(안보리 결의안 제2623호)을 시도해 15개 이사국 중 11개국의 찬성을 얻었다. 하지만 인도·중국·아랍에미리트(UAE)가 반대했으며, 무엇보다 P5 국가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채택이 무산됐다. 그러자 유엔총회가 나서서 선언적인 활동은 그나마 벌이고 있다. 유엔총회는 3월 2일 제11차 긴급총회를 열고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11차 긴급총회 결의안 제1호(ES-11/1)를 통과했다. P5의 거부권은 유엔안보리에서만 적용될 뿐이며 유엔총회 결의안은 다수결(사안에 따라 과반이나 3분의 2)로 통과된다. 총회 표결에선 193개 유엔 회원국 중 12개국을 제외한 181개국이 참석해 141개국(출석 국가의 77.90%)이 찬성했으며, 35개국(19.34%)이 기권했고 반대는 러시아와 벨라루스·북한·시리아·에리트레아의 5개국(2.76%)에 그쳤다. 그야말로 러시아의 정치적인 대패다. 21세기에 주권국가를 침략한 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싸늘한 시선이다. 유엔총회 제11차 긴급총회는 3월 24일에는 유엔헌장에 따라 러시아의 철군과 우크라이나의 주권 지역 인정을 요구하는 11차 긴급총회 결의안 제2호(ES-11/2)를 통과했다. 193개 회원국 중 불참이 10개국, 기권이 38개국(참가국의 20.76%), 1호에 반대했던 러시아와 벨라루스·북한·시리아·에리트레아의 5개국(2.76%)이 반대했으며 140개국(76.50%)이 찬성표를 던졌다. 러시아는 국제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게다가 러시아는 개전 초인 2월 27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근교 도시 중 처음 점령한 부차에서 300명 이상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부차 외에도 인근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한 잔학 행위가 보고됐다. 3월 말~4월 초 이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한 뒤 진입한 우크라이나 당국은 손이 묶인 채 살해된 사람을 포함한 남녀노소의 시신을 발견하고 국제사회에 공개했다. ━ 러시아 막을 힘 없는 유엔, 개혁도 요원한 실정 러시아는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4월 4일 뉴욕타임스(NYT)가 인공위성 사진 서비스 업체인 막사의 사진을 바탕으로 해당 시신이 같은 장소에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던 때부터 수 주간 방치됐음을 확인해 보도하면서 진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유엔총회가 또 나섰다. 제11차 긴급총회는 4월 7일 11차 긴급총회 결의안 제3호(ES-11/3)를 통과하고 러시아를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축출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동안 일으킨 인권 침해와 인도주의 위기에 책임을 따진 것이다. 이 표결에선 193개국 중 18개국이 불참했고, 58개국이 기권했다. 표결 참가국 중 찬성 93개국(79.49%), 반대 24개국(20.51%)이라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통과됐다. 인권이사회 축출은 투표국의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유엔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중단시킬 현실적인 힘도 없으며 중재할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유엔은 태생적인 한계 속에서, 2차대전 종전 뒤 탄생한 세계질서는 주도했지만 1991년 소련 몰락 뒤 열린 포스트 냉전 시대의 분쟁을 막지도, 터진 전쟁을 신속하게 중단시킬 수단도 없이 협상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은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상태가 된 것일까. 실제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확대해 유엔의 대응 능력과 지역별 대표성을 높이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도록 하자는 개혁의 목소리는 2000년 이후 지속해서 있었다. 2005년 당시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안보리 이사국을 15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리자는 방안도 내놨다. P5의 비토권 때문에 파행을 거듭하는 안보리보다 총회에 힘을 실어주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비토권을 손댈 수 없는 상황이라 전반적인 개혁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P5가 비토권을 없애자는 안건부터 비토권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토권 없이는 유엔이 존재하기 힘들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강대국이 빠져나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제연맹이 그런 방식으로 힘을 잃었다. 아울러 국력 확보와 제3세계 대표성 등을 바탕으로 독일·일본·인도·브라질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겠다는 의도를 밝히면서 일이 더욱 복잡하게 됐다. 이들을 G4라고 부른다. 그러자 G4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 나라들끼리 뭉치기 시작했다. 독일의 진출에 반대하는 이탈리아·스페인, 인도에 반발하는 숙적 파키스탄, 일본의 진출에 대항하는 한국, 브라질에 맞서는 아르헨티나·멕시코·콜롬비아, 그리고 중견국을 대표하는 터키와 인도네시아 등이 그들이다. 이들을 국제사회에선 커피 클럽이라고 부른다. G4는 그동안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을 비롯한 유엔의 다양한 기구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커피 클럽도 국제사회에서 경제력·영향력 등에서 역량을 키워온 게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기존 5개국의 지위가 국제적으로 많은 도전을 받아온 게 사실일 것이다. ━ 푸틴 비난 수위 높이는 미국, 어정쩡한 입장의 중국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주권국가 침공이라는 행동을 하면서 국제적인 신뢰가 추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다. 하지만 러시아를 인권이사회에서 축출하는 것은 총회의 표결로 3분의 2 이사의 찬성을 얻으면 되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제외하는 것은 유엔 헌장과 시스템 전체를 고쳐야 한다. 안보리 비토권 때문에 정상적인 표결로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유엔을 깨고 새로운 유엔을 만들지 않으면 불가능한 셈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핵보유국이다. 이를 무시하고 국제 안보 시스템을 새로 짤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이어지고 이들이 점점 더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지는 것은 사실이다. 부차 학살이 공개된 4월 4일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재판을 위해 모든 구체적 사항들을 수집해야 한다”며 푸틴 대통령을 “전범”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3월 16일 푸틴을 처음으로 “전범”이라고 규정한 데 이어 연일 “살인 독재자” “도살자” “폭력배” 등으로 부르면서 비난하고 있다. 4월 12일에는 아이오와 주에서 연설하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벌인 잔학 행위를 두고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라고 표현했다. 바이든은 취재진에게 “푸틴이 우크라이나인의 생각마저 말살하려는 시도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어 ‘집단 학살’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중국의 어정쩡한 입장이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유엔총회의 결의안 표결과 러시아의 인권침해 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유엔 인권위원회 표결에 모두 기권했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은 시종일관 사안 자체의 시비곡직에 따라 입장과 정책을 결정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웃 나라 침략에 나선 러시아를 편 들 수도, 비난의 대열에 동참할 수도 없이 담장 위를 걷는 중국의 모습이다. 국제사회에 덩치에 걸맞은 책임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를 유엔 인권위원회 이사국에서 퇴출하기 위한 유엔 긴급 총회에서 안건이 가결되자 러시아는 정치적인 투표라며 스스로 탈퇴를 선언했다. 축출이든, 탈퇴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로선 체면을 구긴 일임이 분명하다. 특정 국가가 인권 문제로 이렇게 유엔 인권 이사회에서 쫓겨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시리아도 미얀마도 당하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러시아 고위층이 학살을 명령했다는 증거 확보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도 진행 중이다.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이 러시아 전쟁범죄 증거 수집을 진행 중이며, 유엔 인권이사회 조사위원회도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유럽연합(EU) 및 주요 7개국(G7) 국가들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에 들어갔다. ━ 에너지 독립으로 러시아에 경제적 압박나선 유럽 각국 정치적인 압박이 귀를 시끄럽게 한다면, 경제적인 압박은 배를 고프게 한다.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 매장량과 생산량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에너지 차르로 행세해왔던 러시아의 위상과 경제력도 이번 사태로 타격이 불가피하다. 어느 나라든 에너지 안보 문제는 경제는 물론 정권의 사활과도 직결되는 주요 사안이다. 그런데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물론 에너지 수입까지 중단할 움직임이 가속하고 있다. 대선을 치르고 있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미 대선 공약 1호로 소형모듈원자로(SMR)의 개발을 선정하는 등 지금도 전체 전기의 70%를 원자력에서 얻는 프랑스 에너지 구조를 더욱 자립하는 방향으로 잡고 있다. 원전 강국답게 원자력을 일자리와 에너지 확보와 자립 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운 셈이다. 지난해 10월 31일~11월 23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6)를 열었던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지난 3월 21일 원자력 비중을 기존 14.5%에서 25%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불안해진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선 원자력 확대를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간헐성(날씨에 발전량이 좌우되는 특성)을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선 백업 발전이 필수적인데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가스 대신 원자력으로 이를 대체하겠다는 의도도 보인다. 러시아가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국제사회에서의 지위는 물론 에너지 지배국으로서의 위상마저 추락시키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에서 파이프로 가스를 공급하는 유럽 각국이 청정에너지인 원자력을 확대하고 석유·가스 대체 수입지를 찾아 나서면서 러시아 국가 예산의 40%를 차지하는 에너지 부분은 축소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만큼 러시아 국가재정과 경제가 힘들어진다는 이야기다. 러시아산 가스에 중독됐다는 평가를 받아온 독일도 의존도 탈피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재 러시아와 전통적으로 가까웠던 사민당과 녹색당이 자민당과 함께 연정을 이루고 있지만, 올라프 숄츠 총리로선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걸고 우크라이나 침공 앞에 단호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숄츠 총리는 침공 직전 모스크바를 찾아 푸틴을 만나 중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 뒤 눈앞에서 주권국가가 침략당하는 사태를 당한 숄츠는 독일 연방의사당에서 군사력을 강화하고 기존 국내총생산(GDP)의 1.35~1.5% 정도였던 방위비 비율을 나토 가이드라인에 맞춰 2%로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분쟁 지역에 무기를 넘기지 않는다는 오랜 원칙을 포기하고, 우크라이나에 다량의 무기를 공급하겠다고 선언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1990년 통일 이후 보관해온 옛 동독군의 옛 소련산 무기부터 공급에 들어갔다. 독일로선 무엇보다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이는 결국 러시아 경제의 근간인 에너지 경제의 동맥경화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푸틴의 오판은 국제사회의 변화를 부르고, 러시아를 더욱 수렁에 빠뜨리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인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도 크다. 러시아도 다른 나라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2.04.16 20:00
9분 소요![[채인택 글로벌인사이트] ‘동맹 포위’ 압박나선 美, 눈 돌리는 中](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1/05/29/ecnef1a3124-d56d-4e72-bd24-2e5145e2854a.353x220.0.jpg)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부가 중국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 동맹을 앞세운 대중국 포위와 압박의 강화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 기조가 갈수록 뚜렷해진다. 특히 5월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과 4월 16일 바이든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미·일 정상회담의 결과는 미국의 동맹을 활용한 대중 포위망 강화 기조를 완연히 보여준다. ━ "트럼프 대중전략 득보다 실 많았다… 동맹 활용해야" 5월 21일 나온 한·미 공동성명은 “한국과 미국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저해하거나, 불안정하게 하거나, 위협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고 명시했다. ‘국제질서 저해’의 주체를 명시하진 않았지만 이는 누가 봐도 중국이다. 중국이 ‘핵심이익’이라며 유난히 거북해 하는 대만 문제도 명시했다. 같은 의미를 지닌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도 지적했다. 미국이 동맹인 한국을 배려해 ‘중국’이란 표현을 하지 않으면서도 대중 문제의 핵심인 대만과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문제에서 한국의 분명한 지지를 얻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장 위구르의 인권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동맹이자 민주주의 가치의 공동 수호자임을 분명히 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미국의 중국 포위망에 동참했다. 4월 16일 미·일 정상회담 뒤 나온 공동성명에는 ‘중국’이라 단어가 무려 다섯 차례나 등장했다. “중국이 국제 규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데 우려를 표한다”며 내놓고 국제규범 위반자로 지적했다. 대만과 관련해서도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해 중국의 무력 사용 위협에 일침을 가했다. 남중국해 문제는 물론 홍콩과 신장 위구르의 인권 문제까지 따지고 나섰다. 일본이 중국 문제에서 미국과 한배를 탔음을 분명히 한 공동성명이다. 중국은 미국은 물론 미국의 서태평양 동맹인 한국과 일본까지 힘을 합친 포위망에 들어간 셈이다. ‘동맹과 함께하는’ 또는 ‘동맹을 앞세운’ 미국의 대중 포위·압박 전술은 어디서 나왔을까. 미국 싱크탱크들의 그간 지적과 주장을 살펴보자.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마이클 스웨인 시니어 펠로우는 민주당 정권은 중국을 상대하는 데 과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했던 것보다 더 강하면서도 더욱 스마트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스웨인은 ‘미국이 중국에 대해 더욱 스마트해지는 전략을 위한 4가지 단계’라는 기고문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미국이 주도하는 리버럴한 글로벌 질서를 전복하는 데 광분하는 독재 권력이자 미·중 관계 자체를 부인하는 수정주의자로 보이게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을 코너로 몰아가는 이런 강경책이 미국의 국익을 손상시킨다고 지적했다. 대신 그는 더욱 강하면서도 스마트한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 홈 구장의 이점을 복구하는 방안이다. 중국 산업이나 기업에 맞서는 강력한 대응 기업을 미국에서 키우는 일이다. 스웨인의 제안은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다. 반도체나 배터리 등 미국이 중국 시장을 압박할 수 있는 분야에서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 좋은 사례다. 이는 중국에 압박을 가하면서 미국에도 이익이 되는 강력한 수단이다. 투자는 트럼프가 중국 상품에 대해 막대한 관세를 물렸던 것보다 훨씬 현명하며, 미국 기업을 위해서도, 미국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좋은 방법이다. 두 번째 전략은 강하되 스마트하게 맞서라는 것이다. 인권 문제 등과 관련해 중국을 경제적으로 강하게 압박하되 조심성 있고 세심하게 대응하라는 제언이다. 트럼프의 대중 관세 압박 전술은 중국 경제에 재한 피해보다 미국 경제에 대한 피해가 더 컸다는 지적도 이와 관련이 있다. 대중 수입품의 소비자가 미국의 개인과 기업이라는 생각을 하면 더더욱 그렇다. 세 번째는 누구와 상대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하다는 점이다. 중국은 다른 어느 나라와도 다른 라이벌이다. 스웨인은 미국 행정부는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다고 지적한다. 중국 경제는 전 세계의 경제성장과 일자리, 글로벌 투자와 인프라와 관련이 깊다. 기후변화와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무엇보다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는 데도 협력이 필요한 국가다. 중국이 독재체제라는 점만 생각하지 말고 이런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도 고려하면서 대중 압박을 진행해야 하다는 이야기다. 넷째, 같은 악보를 동맹들과 함께 연주하는 전략이다. 트럼프는 한국과 프랑스·독일·영국·인도·일본 등의 동맹국에도 고액의 관세를 부가하면서 비난을 자초했다. 결국 핵심은 미국이 동맹과 함께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맹 시너지야말로 미국이 가장 효과적으로 중국을 맞서고, 중국을 압박하며, 욱일승천하는 중국을 누를 수 있는 핵심 전략으로 본다. 동맹을 앞세운 대중 포위 전략은 군사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는 최근 ‘중국을 다루는 미국 전략의 발전-현재와 미래를 향해’라는 보고서에서 군사를 포함한 미국의 대중 전략을 6가지로 정리했다. 랜드연구소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과 중국은 공통된 글로벌 이익을 공유한다, 다만, 중국의 군사력 증대로 미국이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는 능력이 제한되거나 감소되고 있어 이를 우려한다. 둘째, 이에 따라 미 행정부에 중국과의 충돌 가능성이 커지는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이익 보호와 양쪽이 모두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지역에서의 협력이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하다. 셋째, 중국이 취해온 해상 전략인 A2/AD(Anti-Access/Area Denial: 반접근/지역거부) 개념이 분쟁에서 더 이상 중국의 이득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A2/AD는 간단히 표현하면 적 항모의 해안 접근을 막고, 해안에서 일정 범위 안의 적 해상전력은 철저히 분쇄한다는 전술이다. 이를 위해 바다에 제1 도련선, 제2 도련선 등 가상의 선을 쳐놓고 미국의 접근을 막는다는 게 중국의 개념이다. 중국이 추구하는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서 해상 항구를 연결하는 ‘바다의 진주목걸이’ 부문이 이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있다. 넷째, 미국의 전략은 변화하는 미래에도 약간만 변화하고 계속 적용할 수 있도록 확고해야 한다. 다섯째, 미국의 전략은 지역 내 안정을 도모하고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오판을 방지해야 한다. 여섯째, 미군은 미국과 미국 동맹국의 기지를 보호하고 안보 협력을 강화하며 연합작전 능력을 배양하고 지역에서 전력을 투사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서 말한 미국과 동맹국의 기지 보호 항목은 한국과 일본이 모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중국에 더욱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것은 당연히 한국이다. 미군과 동맹국 기지 보호는 서태평양 지역의 미국 전략의 중심이며, 미군이 주둔하고 전력을 투사하는 배경이다. 그런 점에서 평택 미군 기지는 미국의 서태평양 전략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 중시 전략, 동맹을 앞세운 중국 포위 전략, 대중 압박 전술을 택하면서 한국과 밀착한 배경이다. 보고서는 위의 셋째에서 지적한 중국의 A2/AD의 저지를 위해 미국의 서태평양 전략을 다음 5가지 기둥을 바탕으로 할 것을 제안했다. 첫째는 미국의 전투력 유지와 신속타격 능력 지원, 둘째는 고도의 능력을 갖춘 지역 동맹이다. 미국이 서태평양 지역에서 힘을 발휘하고, 중국을 효과적으로 포위하는 능력의 핵심을 동맹이라고 본 것이다. 이밖에 ▷국경과 수역 너머에 있는 중국 지역에 전력을 투사하는 데 대한 작전적 어려움 극복 ▷중국 목표물에 대한 취약성을 감소할 기술 개발 ▷미국 지도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다양한 비핵무기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 등이다. 랜드연구소의 보고서는 미국이 전략적으로, 군사적으로 중국을 포위하고 압박하는 데 동맹은 가장 효율적인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 중동·동남아·남미 등지서 '소프트파워 외교' 나선 中 이런 미국에 대항해 중국은 어떻게 나올까.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라이언 하스 시니어 펠로우의 주장을 들어보자. 하스는 최근 후버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에 ‘중국은 어떻게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 확대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기고문에서 하스는 중국의 대미 전략도 이에 맞춰 급격히 변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중국이 미·중 관계와 국제적 환경의 급격한 전환에 따라 지정학적·경제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국가 발전과 글로벌 전략을 재정비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세계에는 미국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스에 따르면 베이징 당국자들은 미·중 관계가 가까운 장래에 지속적으로 불안정할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비롯한 지도부는 중국이 세계무대의 중심으로 다가가는 데서 시간과 모멘텀은 자신들의 편이라고 믿는다. 하스는 중국 관리들이 자국이 추구하는 국가 목표를 이루려면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은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하스는 이를 위해 중국이 세 가지 중기 전략을 추구할 것으로 분석했다. 첫째, 내부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비적재적인 외부 환경을 유지하는 전략이다. 둘째,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다른 나라들의 중국에 대한 의존을 늘리는 전략이다. 셋째는 해외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하스의 지적대로라면 중국은 미국의 포위와 압력이 거세질수록 미국과 맞상대하며 갈등을 증폭하는 대신 전 세계 다른 국가를 상대로 외교활동을 강화하고 영향력 확대를 시도할 것이다. 실제로 이런 모습은 3월 24~30일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중동을 순방한 것과도 맞물린다.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터키, 미국과 핵합의(JCPOA) 재개를 추진하는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오만을 차례로 찾았다. 이란을 제외하고는 모두 친미국가이거나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나라다. 미국은 냉전시대 내내 이 지역에서 군사적·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했다. 일부 국가는 군사적으로 미국에 의지했다. 중국 외교 수장이 오랫동안 미국의 ‘텃밭’인 중동을 순방한 것은 이례적이다. 거기에 중국은 이란에 425조 투자 계획을 발효하고 아랍에미리트(UAE)에는 백신 공장을 합작 건설하기로 하는 등 통 큰 선물 보따리를 풀며 전에 없이 활발한 투자에 나섰다. 물론 중국이 하루 1000만 배럴 이상의 석유를 수입해야 경제 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석유 수입국이라는 입장도 순방의 요인이었을 것이다. 신장위구르 무슬림(이슬람 신자) 탄압에 대한 서구의 비난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이슬람 국가에 이 문제를 해명하거나 당근으로 입을 막을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미·중 경쟁 국면에서 전선을 확대해 글로벌 중심으로 부상하겠다는 중국의 대응 전략일 가능성도 커 보인다. 석유 자립으로 미국의 관심 줄어든 중동은 중국이 영향력 확대를 노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또 다른 외교적 노력으론 백신 확산이 있다. 코로나19 확산 책임론에 대한 회피 성격도 있지만 중국은 전 세계에서 많지 않은 코로나19 백신 자체 개발·생산국이다. 베이징에 있는 브리지 컨설팅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지금까지 7억700만 회분의 코로나19 백신을 해외에 판매했으며, 2080만 회분을 기증했다. 특히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중점적으로 백신을 기증했다. 중국이 백신 외교를 내세워 전 세계 다양한 나라와 외교적으로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부장관으로 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미국이 소프트파워 외교를 전개했다면, 지금은 중국이 백신으로 중국식의 소프트파워 외교를 펼치려고 시도하는 셈이다.미국과 동맹국의 매서운 포위망에 맞서 중국은 다른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1.05.29 20:00
7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