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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옷 수출1위 삼애실업 정덕 사장의 ‘배짱장사’

가죽옷 수출1위 삼애실업 정덕 사장의 ‘배짱장사’

삼애실업 정덕 사장
지난 9월8일 삼애실업 안산공장. 정덕 사장(50)을 비롯해 전 임직원들이 고사를 지내고 있었다. 회사 창립기념일도 아니요, 새해도 아닌 때에 지내는 이 고사는 다름 아닌 ‘소고사.’죽은 소를 위해 지내는 일종의 위령제 같은 것이다. 정사장은 벌써 10년째 이 행사를 거르지 않고 있다. 그가 조상 모시듯 깍듯이 소에 고사를 지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해외에서 원피를 수입해 무스탕·토스카나 등 가죽옷을 만들기 위한 피혁을 생산해 내는 이곳에서는 연간 30만 마리 분량의 소가죽이 가공 처리된다. 1백% 수입 소가죽이다. 87년 미국 LA도축장을 방문, 소의 도축장면을 목격한 이후 그는 고사를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눈빛과 단발에 쓰러지는 거구, 자동벨트에 걸려 순식간에 오장육부가 쏟아지고 가죽이 벗겨지는 과정을 목격하고 나서 그는 “소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의 또 하나의 ‘기행’가운데 하나는 바이어에게 라면접대하는 일. ‘바이어 접대’하면 비싼 호텔저녁과 룸살롱 접대를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그는 그런 통념을 과감하게 깼다. 회사를 찾아오는 바이어들과 상담을 마치고 점심 때가 되면 구내 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바이어라고 해서 대접한답시고 유난을 떨기 싫은 것이다. “식성이 까다로운 바이어들도 대체로 라면은 잘 먹는다”며 그는 태연하게 말한다. 그래서 자주 오는 바이어들 가운데는 으레 점심은 라면 먹을 걸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 이 정도는 그래도 양반이다. 식당밥을 내켜 하지 않는 눈치를 보이면 아예 같이 굶어 버린다. 지나친 술·기생접대를 원하는 바이어는 절대사절이다. 너나없이 불황으로 죽을 맛인데 정사장의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가. 한마디로 자신감이다. 삼애실업의 올 3분기 현재 수출실적은 6천만 달러. 미국, 캐나다, 독일, 스위스, 스웨덴 등 주로 선진국으로 팔려 나갔다. 자체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도 꽤 된다.

3분기 6천만달러 수출 업계1위 해외시장 개척 초기. 그도 누구 못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언어를 몰라 기차안 경로석에 앉았다가 서양 노인네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은 것쯤은 차라리 즐거운 기억에 속한다. 처음 스웨덴에 갔을 때 일이다. 무거운 샘플 가방을 들고 가야 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길거리에 떨구어 놓고 제갈길을 가버리는 그들의 비정함에 눈물을 쏟기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 신용도 불확실한 무명의 기업인으로 감수할 수밖에 없는 ‘설움’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힘들게 만났던 바이어들 가운데 몇몇은 십수년간 단골이 돼 주었다. 상당 부분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비중이 크지만 자체 브랜드인 ‘디노 가루치’브랜드 수출도 만만찮다. 캐나다, 네덜란드 등지로 7백50만 달러어치가 팔렸고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도 자체 브랜드를 심어나가고 있다. 그가 큰소리 치는 게 또하나 있다. 웬만해선 남의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말 현재 부채비율은 33.7%. 부채가 모두 1백17억9천만원인데 비해 자기자본총액은 3백50억원이나 된다. 94년말 현재는 20.3%, 95년엔 25%에 불과했다. 남의 돈을 끌어 장사하는 것을 당연시해 왔기 때문에 자기자본보다 빚이 몇배씩 더 많아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풍토에서 정사장의 경영방식은 오히려 고지식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요즘 잇따른 대기업 부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부도의 1차적인 책임은 기업인에게 있습니다. 정부나 다른 곳에 책임을 돌리려 하면 안되지요. 기업의 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남의 돈을 끌어 쓰고 보자는 식의 경영폐단이 이제 드러나기 시작한 거라고 봅니다.”

은행돈은 일요일이 없다 언제가 독일 바이어에게 들은 “은행돈은 일요일이 없다”는 말을 요즘처럼 실감한 적이 없다고 한다. 회사가 쉬는 일요일에도 은행이자는 붙는다는, 남의 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는 요즘 내수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해 총 5백43억원의 매출액 가운데 내수판매액은 1백60억원. 전체 매출의 29%였다. 올들어 덴마크에서 ‘레드 그린’이라는 캐주얼 브랜드까지 들여와 내수시장 공략에 들어갔다. 올 매출목표는 매출액대비 24%선인 2백억원. 하지만 11월 백화점 진입을 계기로 매출액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사장은 타고난 장사꾼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코묻은 돈을 모아 장사를 벌였고 그 돈이 불어 오늘날 1억 달러 수출을 넘보는 기업으로 컸다. 그의 장사꾼 기질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드러났다. 부친을 여의고 서울 원남동 외가에서 혜화초등학교를 다녀야 했던 그는 걸어서 다니고 집에서 주는 전차비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대학시절까지 모은 돈이 1백50만원. 대학시절에는 그 돈으로 대천해수욕장 부근의 여관을 빌려 이를 성수기 방값이 오를 때 빌려주는 ‘메뚜기’식 한철장사로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여름철 한강 광나루에서 탈의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대만, 일본에서 공구들을 수입해 서울 청계천 일대에 납품을 하는 본격적인 수입업에 손을 댄 적도 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73년 삼애실업을 세웠다. 세계시장에서 브랜드를 심어나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를 요즘처럼 실감한 적도 없다. 아직도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을 뚫고 들어가기는 힘에 부친다. 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보따리 장사들이 알음알음 ‘디노 가루치’이름을 듣고 찾아올 때면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 “늘 탈출을 꿈꾼다”는 정사장. 그는 중소기업에서 내년 ‘1억달러 수출기업’으로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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