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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종금사 중 10여개만 살아남을 듯

30개 종금사 중 10여개만 살아남을 듯

마침내 수술이 시작됐다. 혼수상태에 빠진 종금사에 대해 정부가 칼을 들이댄 것이다. 수술은 재정경제원 직원조차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11월19일 정부의 종합대책-21일 IMF지원요청 발표-24일 임창열 부총리와 종금사 사장단간 긴급회동-25일 8개 종금사에 대한 외화자금취급정지 조치 등 재경원은 최근 1주일 동안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숨돌릴 여유조차 주지 않는 초강수에 종금사 임직원들은 완전히 넋이 빠져 있다. “어느쪽으로 뛰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대기 상태”라는 게 임원·팀장급들의 얘기다. 요즘 종금사 직원들은 “어떠십니까” 따위의 겉치레 인사조차 부담스러워한다. 재경원은 지난달 25일 외화자금조달에 애로를 겪고 있는 경남·삼양·한길·고려·영남·대한·삼삼·경일종금 등 8개 종금사에 대해 신규외환업무 취급정지 조치를 취했다. 금융빅뱅의 신호탄이다. N종금사의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유동성 확보대책 없이 외화자금 취급을 중단하라는 얘기는 사실상의 사형선고”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재경원은 당초 종금사는 내년 1월 말, 은행은 3월 말, 나머지 금융기관들은 6월 말까지 실사를 마치고 그로부터 3개월 뒤에 정리를 끝낸다는 수순을 정했다. 재경원이 일정을 무리하게 앞당긴 것은 시장상황이 워낙 긴박했기 때문. 업계도 ‘어차피 정리할 바에는 아예 앞당기는 게 좋다’는 자포자기 상황까지 갔다. CP매입이 줄고, 콜자금마저 끊긴데다 부실채권 회수까지 제지당하는 마당에 정부가 종금사 발행어음에 대해 부도를 안 내겠다는 보장이 없다면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게 깔려 있었다.

불똥은 은행·증권사로 재경원은 몇몇 은행에 전화를 걸어 종금사 인수를 종용하는 방식을 택했으나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아예 은행과 종금사 짝짓기에 직접 나선 것이다. 대한-국민, 삼삼-조흥, 삼양-외환, 한길-주택, 경남-산업, 고려-기업, 경일·영남-한일은행이라는 ‘강제 M&A 조합’이 탄생했다. 대부분 외화차입이 많거나 자기은행 출신 경영자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 은행과 종금사끼리 묶었다. 한화·동양·엘지·쌍용·한솔·신세계 등 그룹에 속해 있는 종금사들은 일단 제외됐다. 증자를 하거나 계열 증권사 등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30개 종금사 가운데 10개사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리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정부의 날카로운 칼날은 이어질 은행권의 통폐합에서도 사용될 예정이어서 다가올 빅뱅의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종금사들은 부랴부랴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대한종금은 신동방측과 공동경영에 합의했다. 3천억원의 증자계획도 내 놓았다. 나라·중앙종금은 3백억~5백억원 규모의 증자를 검토하고 있다. 나라종금은 신축중인 사옥을 매각하고 임원봉급을 절반으로 삭감하는 등의 초긴축 처방을 내렸다. 당초 12개 정리대상에 포함됐다 막판에 빠진 한솔종금은 리스자산매각으로 1억5천만~2억 달러를 마련하고 당분간 국내영업에 치중하되 외환취급을 계속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둘 예정이다. 한솔종금 박행수 이사는 “워낙 상황이 급변해 그 다음까지는 생각할 수 없다”며“은행들이 전처럼 CP를 계속 매입해 주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종금사 파장은 막바로 은행, 증권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종금사가 은행에 넘어가더라도 현행 법규상 은행이 외화영업을 그대로 취급할 수 없어 당분간은 종금사가 영업을 대행하는 방법뿐이다. 은행합병 일정도 앞당겨질 것 같다. IMF가 ‘연초 정리’와 외국은행 진입허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종금사, 부실채권 처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은행통폐합이 본격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부실채권이다. 은행 전체를 통틀어 부실채권이 가장 많은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이 먼저 나섰다. 두 은행은 지난달 27일 성업공사에 부실채권을 매각, 처분했다. 제일은행은 2조4천3백56억원으로 은행전체 부실채권의 53.9%에 해당한다. 서울은행도 1조9천5백79억원으로 은행전체부실채권의 56.6%다.

부실채권 규모 48조원 분석도 은행권의 부실채권 규모는 이미 한계상황을 넘어섰다. 은행감독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은행권 전체 부실채권은 28조2천3백46억원. 전체여신의 6.2%에 해당한다. 6월 말 현재 21조8천억원 수준에서 석 달 사이 무려 6조4천억원 가량 늘었다. 종금사는 지난해 말 1조2천6백40억원에서 지난 10월 말 현재 3조8천9백70억원으로 늘었다. 10개월 사이 무려 3배 가량 불어난 것. 기아 등 재벌기업의 부도가 한꺼번에 겹친 탓이다. 종금사 가운데 부실채권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청솔종금. 청솔은 총여신 5천4백72억원 가운데 무수익여신이 2천1백61억원으로 39.49%나 된다. 리버사이드호텔 등에 돈을 꾸어주었다가 물렸기 때문이다. 은행, 종금사를 합하면 금융권 전체 부실채권 규모는 32조4천2백60억원에 이른다. 이는 6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만을 잡은 것이기 때문에 미국처럼 3개월 이상 연체된 것까지 합하면 부실채권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크다. 모건 스탠리은행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0월 말 현재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은 은행 종금사를 포함해 48조원. 국내 총생산(GDP)의 12%에 달하는 액수다. 특히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경우는 3개월 이상 연체된 무수익여신이 총여신의 21%를 넘는다. 은행이 빚더미에 올라 앉은 꼴이다. 연체기준을 3개월로 잡는 미국의 경우도 부실채권비율은 96년 현재 1.18%에 불과하고 우리처럼 6개월로 보는 일본의 4.3%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가위 부실왕국이라 할만하다. 성업공사를 통해 10조원을 풀어 50% 가량은 정리키로 했지만 나머지는 1~2년안에 자체적으로 정리할 수밖에 없다. 은행들은 채권회수에 나서는 한편 신규대출을 최대한 억제, 금리폭등과 함께 엄청난 자금난에 휩싸인 것은 이미 예고된 재난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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