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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대통령 落點, 한국은행 총재직 고사한 정운찬 서울대교수

金대통령 落點, 한국은행 총재직 고사한 정운찬 서울대교수

정운찬 서울대교수
남 들이 죄다 부러워하는 벼슬길을 마다한 50대 초반 학자의 관직 고사(固辭)가 세간의 화제다. 나라의 금고지기인 한국은행 총재자리 제의를 극구 거절한 정운찬 서울대교수(경제학. 51)가 주인공이다. 요즘 같은 세태에 ”참신하다“는 평과 “한번 해보는게 낫다”는 평이 엇갈린다. 사실 한은 총재자리는 정교수 본인 말대로 ‘매력적인 자리’다. 어떤 정부 고위관리직보다도 결코 못하지 않은, 중요하고도 명예로운 자리다. 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앉을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평소 소신인 ‘한은 독립’을 팔을 걷어부친 채 한번 보기좋게 실현시킬 수도 있는 기회다. 사실 이 자리는 호명되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거절하기는 더 어렵다. 개혁을 외친 김대중대통령의 호출에 ‘노’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어쩐 일인지 정교수는 그처럼 ‘제의받기도, 거절하기도 힘든 ‘그런 자리’를 거절한 채 종전처럼 서울대 캠퍼스 강의실과 연구실을 오가고 있다. 왜 그랬을까. 기회만 있으면 줄을 있는 학계의 관계 진출행렬을 못 본 것인지, 아니면 아무리 생각해도 제 갈길이 아니라고 느낀 것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아직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인지, 어찌됐든 간에 정교수의 결정은 학계의 요즘 풍경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솔직히 한은 총재가 된다면… 하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제 자신이 3~4천명이 근무하는 거대조직의 향후 운명을 짊어질 한은의 청사진을 아직 갖지 못합니다. 현실적으로도 저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한국은행의 당면 과제는 실질적인 독립입니다. 법적으로는 종전보다 독립을 많이 보장받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독립이 중요하지요. 이를 위해선 한은 총재는 남다른 결단력과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한은총재직 고사배경의 전부일까. 그렇지만은 않은 듯 싶다. “또 있어요. 4년 후를 생각해 봤습니다. 한은총재를 끝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을까. 물론 학교로 복귀할 수는 있지요. 그러나 저는 관계로 나간 학자들의 강단복귀를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정교수가 한은총재자리를 제의받은 것은 지난 1월 초순께. 신정부 고위층으로부터 두 가지 자리를 제의받았다는 후문이다. 하나는 경제수석 자리요, 다른 하나는 한은총재자리. 이 중 김태동 수석이 임명된 경제수석자리는 “자신에게 안맞는다”며 거절했다. 한은 총재자리 제의는 누가 봐도 괜찮은 제의였다. 자신의 전공인 ‘화폐금융’쪽에서 날개를 한번 펼 수 있는 찬스 아닌가. 자신이 한때 1년반 정도 근무했던 한은의 최고 자리에 단숨에 오를 수 있는 기회다. 예스냐 노냐―. 10여일간의 고민―. 결론은 “노”였다. 정교수는 ‘고사(固辭)’잘하기로 소문난 학자다. 노태우 전직 대통령 당시에 금통위원제의를 거절했다. 그같은 숱한 거절 속에서 한은총재직 거절은 가장 높은 자리 거절인 셈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정교수는 한번도 대학때부터 ‘하늘같이 모시는 스승’인 조순 한나라당 총재와 한마디 상의하지 않았다. “선생님과 상의했다면 아마도 제게 가라고 하셨을 거예요. 선생님께서는 학교에 있던 제자들이 일한다고 하면 한 번도 막는 법이 없으셨지요. 사실 그게 두려웠습니다.” 아마 정교수는 하늘같은 스승의 정치적 여정과 신정부측의 매력적인 자리 제의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개인적인 갈등을 겪었을 법하다. 지난 대선에서 스승의 패배와 상대 진영으로부터의 손짓은 고민의 한자락을 차지하기에 충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스승이 걷는 길은 갈림길에선 애제자에겐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교수는 그 길목에서 스승과 다른 길을 택했다. 스승이 걸었던 길 대로다면 정교수는 한은총재직을 고사하지 않고 직접 현실로 뛰어들어야 마땅하나 교단을 그대로 지켰다. “선생님은 평소 왜 공부를 하느냐. 결국은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릅니다. 건설적인 비판을 통해 얼마든지 현실에 참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비록 스승이 가는 길과는 달리 직접적인 현실참여를 피했지만 정교수의 현실비판의 톤은 여전하다. “자유방임형 시장주의는 곤란합니다. 한보나 기아사태에서 보듯 정부의 무관심과 무책임, 무간섭주의가 경제를 망쳤다고 봅니다. 정부는 개별기업에 대해선 간섭을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산업정책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부가 시장자유를 앞세워 무작정 자유방임으로 가기보다는 일정선에 대해선 개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앞으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과 전철환 한은총재, 그리고 이규성 재경부장관의 할일이 막중하다고 봅니다. 서로 경제와 협조를 어떻게 잘 조화시키느냐가 관건이지요. 독립이 현안인 한은 입장에선 잘 싸워야할 것입니다.” 이헌재 금감위원장에 대해선 ”정말 잘 된 인사”라고 평가한 정교수는 임명된 전철환 한은총재에 대해선 “금융관련 경험이 풍부하고 양심적이며 깨끗한 분이다. 몇 년에 한 두번 만났던 선배로 실은 잘 모른다”라며 구체적인 평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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