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위험중시’금융기관 평가기준 만들듯
[화제의 인물]‘위험중시’금융기관 평가기준 만들듯
20 년만의 귀향 -. 이헌재 비상경제대책위 실무기획단장(54)이 이번에 신설된 금융감독원의 초대 원장으로 임명됐다. 1979년 재무부 재정금융심의관(부이사관)으로 관직을 떠난 후 무려 20년만의 컴백이다. 68년 행시 6회 동기인 신명호 주택은행장과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지만 결국에는 비대위에서의 능력이 인정됐다.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일을 참 잘 하는 사람”이란 평가를 받았을 정도. 논리가 정연하고 준비가 잘 돼 있는데다 대단히 해박해 실무기획단장 시절 비대위원들을 연신 감탄시켰다. 경기고·서울대 법대라는 학력에서 보듯 그는 타고난 수재인 때문도 있지만 책에서 손을 떼지 않는 독서광인 이유도 있다. 책은 ‘종류 불문’이다. 재무부 사무관과 금융정책 과장시절 72년 8·3 사채동결 조치와 부실기업 정리 등 굵직굵직한 일을 무난히 처리해 ‘차관급 과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79년 관계를 떠난 후 대우그룹 임원, 한국신용평가 사장, 증권관리위원회 상임위원 등 기업과 금융계를 두루 거쳤다. 따라서 금융과 실물경제의 밑바닥까지 잘 이해하고 있는데다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해 금융계로부터 “앉을 사람이 앉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에 재벌들이 주거래은행에 구조개선안을 내도록 한 ‘재벌구조개선협정’은 李원장의 아이디어를 신정부가 받아들인 것. 李원장은 평소 금융기관의 대출 심사 등을 통한 재벌개혁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재벌들의 결합재무제표 작성 아이디어도 마찬가지. 80년대 후반 6년간 한국신용평가 사장을 지낼 당시 국내 최초로 그룹별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하게 해 업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자신이 몸담았던 대우그룹의 실적이 안 좋았고 이 때문에 대우의 임원들로부터 섭섭하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일은 일’이라며 깔끔하지만 꿋꿋하게 처신했다. 이런 강단 때문에 한국은행 총재 자리를 고사한 정운찬 서울대 교수는 “이헌재 금감원장은 아주 잘 된 인사”라고 평하기도 한다. 당시 李원장은“건전경영과 재무구조 개선이 신용평가회사의 사명”이라고 생각, 재벌도 그런 방향으로 유도해야 하는데 문제는 재벌의 경영과 재무구조를 파악할 길이 없었고 따라서 연결재무제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같은 생각이다. 물론 부실금융기관의 처리 문제가 우선 당면과제지만 금융기관들의 내부통제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美금융기관의 장(長)들이 자산 위험도와 이자율 등을 매일 챙기듯이 우리도 위험과 수익을 매일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기준 지표를 금감원이 만들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李원장은 이러한 부분적인 수술보다는 우리경제가 세계 및 아시아에서 어떤 기능을 해야 할 것인지 하는, 전반적인 한국경제의 방향에 대해 더욱 많은 생각을 하고있다. 가령 앞으로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의 허브 경제권(Hub-Economy), 즉 운송 및 물류, 금융중심지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이제까지의 재벌체제에 의한 대규모 생산투자는 한계가 왔으니 앞으로는 정보·통신 등 첨단 하이테크산업으로 구조조정이 돼야 하지 않을까 등에 관한 문제다. 이런 관점에서 재벌이나 금융기관의 개혁방안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 처리 방식은 위임형. 큰 줄거리는 자신이 짜되 나머지는 실무진에게 철저히 위임한다. 최종 결정은 자신이 하되 책임 역시 자신이 지는 보스형 기질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나게 처신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규성 재경부장관이 재무부 차관보로 있을 때 李원장은 그 밑의 재정금융심의관을 지냈고 이원장의 장인인 진의종씨(陳懿鍾)가 국무총리로 있을 때 李장관이 총리 행정조정실장을 지내 서로 인연이 깊다. 한양대 미대 교수이자 화가인 진진숙씨와 1남 1녀를 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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