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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껍질' 깨고 생명공학으로 탈바꿈

'전통껍질' 깨고 생명공학으로 탈바꿈

2001년 9월3일 대한제당 회장실. 대한제당이 출자해서 2001년 9월1일 법인설립 등기를 마친 생명공학전문 회사 아이씨젠(IC-GEN)의 윤세왕 사장(공학박사·대한제당 환경사업본부장 및 중앙연구소 소장 겸임)이 신설회사 사업계획 보고를 하기 위해 설원봉 회장을 만났다. 이 보고가 끝난 다음에 윤사장에게 던진 설회장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봐요. 윤사장, 이번에 처음으로 이 같은 첨단기업 사장을 맡은 셈이지요. 앞으로 아이씨젠 같은 첨단기업을 몇 개 더 세우고 또 맡아서 운영을 해야 할 겁니다. 한 개 가지고 되겠습니까.” 대한제당(대표 한동혁·www.ts.co.kr)이 변화하고 있다. 사실 대한제당의 변화시점은 지금부터 10년 전인 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설탕·사료·무역·유통 같은 전통산업만으로는 21세기 경제한파를 헤쳐나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중앙연구소 기능을 대폭 강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식품과 연관성이 있으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생명공학·바이오·환경산업 등을 사실상 TS그룹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제당의 신사업으로 정하고 이에 대한 연구투자를 강화했던 것이다. IMF 이전인 97년 3월에 서둘러 태양광발전의 세계적 권위자인 윤세왕 박사를 소장으로 영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상은 전 대한제당 부회장과 해군 학사장교 근무를 같이 한 윤박사는, 박 전 부회장과 대한제당측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여 22년간의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대한제당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그렇지만 대한제당을 보는 일반인의 인식은 예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 대한제당이 바이오산업·생명공학산업·환경사업 같은 다각화를 꾀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게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공통된 고백이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때만 되면 증권사들은 대한제당을 경기방어주니 환율수혜주니 하면서 매수추천하거나, 환율피해주니 하면서 매도추천을 하지만 일반투자자들의 손길은 도통 대한제당 주식에 와닿질 않는다. 주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하락선을 긋는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 ‘시장점유율 20%를 지닌 보수적인 설탕기업’이란 이미지도 한 몫을 한다. ‘소외주’라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대한제당은 이에 대해 ‘불만’이 많다. 실상은 일반인들의 인식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설탕기업 아니냐”고 하면 “천만의 말씀”이라고 답한다. 첨단 바이오, 생명공학 사업을 통해 누구보다도 빨리 21세기 미래를 준비하고 개척해온 중견기업이란 얘기다. 그래서 ‘진짜 모습’을 알리기 위해 대한제당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특히 한동혁 사장이 취임한 2001년 1월부터 대한제당은 두세 달에 한 번씩 ‘얘깃거리’를 펑펑 터트린다. 그런 얘깃거리의 백미는 아마 지난해 9월23일 용인 고등기술연수원에서 임직원 8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드림2010 비전 선포식’일 것이다. 근 반백년을 달려온 대한제당(올해 창립 45주년)이 가야 할 길을 명확히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한동혁 사장은 “향후 10년간 기존 종합식품사업을 비롯해 생명공학사업, 환경관련산업, 물류 및 이비즈니스 사업, 첨단 벤처사업 등 4대 신규사업을 주력으로 삼아 대한제당을 매출 2조5천억원, 경상이익 9백50억원의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대한제당이 현재 가고 있는 길은 한사장이 제시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10년 후 일이긴 하지만, 한사장이 제시한 대한제당 매출구조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올해 대한제당 매출목표는 약 7천3백억원. 경상이익 목표는 약 30억원이다. 치킨 프랜차이즈 파파이스를 포함한 TS그룹 전체의 매출은 약 1조원. 대한제당 매출의 구조는 현재 제당사업 35%, 사료사업 30%, 무역·유통사업 35%다. 그렇지만 2010년이 되면 기존사업이 전체 매출의 80%로 줄어든다. 그리고 생명공학사업, 환경관련산업, 물류 및 이비즈니스 사업, 첨단 벤처사업 같은 신규사업의 비중이 20%(예상매출 5천억원)로 크게 올라간다. 이같은 신규사업추진의 핵심은 바로 대한제당 중앙연구소다. 직원들이 인천시 중구 북성동에 있는 중앙연구소를 ‘5천억원짜리 회사’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제당에서 지난 1년간 일어난 굵직굵직한 ‘얘깃거리’는 상당히 많다. 가장 최근의 것은, 지난 9월 ‘백곰표’라는 45년 된 친숙한 상표를 버리고 ‘푸드림(Foodream)’이란 통합브랜드를 모든 식품류에 사용하기로 한 점이다. 종합식품산업을 강화하려는 의지와 함께 설탕과 각설탕·고추장·된장·참기름·칵테일후르츠·통조림 등에 푸드림을 붙여 소비자들에게 좀더 한발짝 앞으로 다가가려는 포석인 셈이다. 이외에 생명공학회사 2개를 세운 것도 주목할 만하다. 대한제당은 연세의료원 암센터와 공동으로 암 진단 및 암 전이 예측 DNA칩을 개발하기 위한 아이씨젠을 지난 9월1일 설립하고, 3년 동안 30억 이상을 투자할 생각이다. 또한 대한제당은 서울대 서종헌 교수와 함께 ‘아트자임 바이오텍’을 세워 DNA절단 인공효소의 상품화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2년 초에 상용화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지난 5월에는 양돈과 관련된 모든 제품을 취급하는 전문 B2B·B2C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베스트피그닷컴(www.BestPig.com)을 오픈하고 본격적인 이비즈니스에 나섰다. TS몰 사이트를 구축해 식육부문 B2C에 진출한 것도 이비즈니스 강화의 일환이다. 대한제당이 정부·창투사와 손잡고 바이오벤처투자펀드를 연내에 만들어 지속적인 벤처투자를 하려고 하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중앙연구소의 변신도 색다르다. 연구원들의 연구실적을 독려하기 위해 연구원 모두를 연구계약직으로 돌린 것이다. 실적을 내는 연구원은 보수를 올려주겠지만, 실적이 없는 연구원은 나가라는 무언의 압력인 셈이다. 이처럼 다각적인 신규사업투자의 발판은 유동성 확보다. 평소 설회장은 “대한제당의 미래는 풍부한 유동성에 숨어 있다”면서 “적어도 회사에서는 평균 7백억원 현금 유동성을 항상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벤처정신도 설회장이 좋아하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벤처정신이 없으면 기업을 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자신감을 갖고 일을 해야 합니다. 45년 전에 인송 설경동 창업주가 설탕 하나로 대한제당을 일으켰을 때에는 경제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외환통제 시절이라서 달러를 사용하는 게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웠었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을 극복하고 설탕사업을 일으켜 오늘의 대한제당을 키워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설회장은 고민을 한다. “설탕 사업이 45년간 대한제당을 지켜주었듯이, 앞으로 45년간 대한제당을 지켜줄 신규사업 아이템은 과연 무엇인가”하면서. 대한제당은 신규사업도 신규사업이지만, 감가상각을 다 끝냈기에 가격경쟁력을 갖춘 기존 설탕·사료사업 등에 대한 중요성을 잊지 않고 있다. 기존 사업의 매출을 향후 10년간 약 3배로 늘리겠다는 복안도 그래서 만든 것이다. 제당·사료·무역사업 매출 비중은 지금이나 10년 후나 비슷하겠지만, 서로 사업부문별 경쟁체제를 도입해서 무사안일주의 영업을 제도적으로 방지할 계획이다. 무역과 유통사업을 통합해 조직능률의 제고를 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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