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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는 개인파산의 주범

신용카드는 개인파산의 주범

여성 직장인 김모씨(21)가 고리사채의 덫에 걸린 것은 지난해 3월 말. 문제의 발단은 신용카드였다. 퇴근길 김씨는 휴대폰을 공짜로 준다는 길거리 카드 모집인의 말에 이끌려 카드 한 장을 발급 받았다. 난생 처음 써보는 신용카드는 ‘요술 방망이’였다. 갖고 싶은 물건을 카드 한 장이면 모두 가질 수 있었다. 이것 저것 사면서 불어난 카드 빚은 1백만원 남짓. 하지만 만기 내에 갚을 길이 없었다. 결제일이 지나자 카드사로부터 연일 전화가 왔다. “수일 내 갚지 않으면 신용불량자로 등록시키겠다”는 ‘협박성’전화까지 걸려왔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것을 두려워한 김씨는 결국 생활정보지를 보고 사채업자를 찾았다. 급한 마음에 10일에 30%씩의 고리(高利)가 적용되는 사채 1백10만원을 빌려 썼다. 생각 없이 발급 받은 카드 한 장 때문에 한 여성이 연 1천%가 넘는 ‘사채의 늪’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카드사용액 정부예산 4배 육박=신용카드 사용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에 따른 각종 부작용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카드 총 사용액은 4백20조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국가 전체예산이 1백12조원이니 지난 1년간 우리 국민들이 신용카드로 빌려쓴 돈은 국가예산의 3.75배에 이르는 셈이다. 신용카드 사용액은 지난 99년까지만 해도 90조7천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0년에는 2백24조9천억원, 2001년에는 4백20조원으로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카드 발급도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발급된 총 카드 수는 9천만장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55% 정도 늘어난 수치. 우리나라 성인(경제활동인구 2천2백50만명) 한 명당 평균 4장의 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셈이다. 비자코리아 관계자는 “외국의 경우 일인당 카드소지율은 평균 1.5∼1.8장에 불과하다”며 “성인 한 명당 4장의 카드를 소유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사용이 이처럼 급팽창한 이유는 정부가 세수(稅收) 확대를 위해 신용카드 소득공제·복권제 등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소비자 파산의 주범으로 꼽혀=카드 사용이 늘면서 각종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신용불량자의 양산. ‘빚을 얻어 소비한 후 책임지지 못하는’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신용카드와 관련된 신용불량자는 1백만명을 넘어섰다. 신용카드 전체 회원 4천7백54만명(11월 말 기준) 가운데 2.19%(1백4만1천명)에 달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은행연합회에 등록된 전체 신용불량자 수는 2백79만4천명. 이중 37.2%가 카드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카드 관련 신용불량자 수는 지난해 7월 말 62만5천명을 기록한 후 4개월 만에 무려 66.5%나 증가했다. 특히 10대 신용불량자의 경우 지난해 7월 말 6천1백94명에서 11월 말 7천4백56명으로 급증세를 보여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소득이 없는 10대들에게까지 카드를 남발해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신용불량자의 멍에를 져야 하는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게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카드 관련 개인 파산자 수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소비자 파산은 빚을 더 이상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이 채무를 변제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제도. 지난해 10월 말 기준으로 전국 법원에 접수된 소비자파산 건수는 5백72건(명)이었다. 보통 전체 파산건수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서울 지역의 개인파산 신청도 신기록을 세웠다. 지난 11월 말 기준으로 서울지법 파산부에 소비자파산을 신청한 사람은 모두 2백60명으로 역시 종전 최고치였던 2백57명(99년 신청자)를 상회했다. 소비자파산의 주범으로는 단연 신용카드가 꼽힌다. 서울지법 파산부의 한 판사는 “최근 개인파산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 정부가 신용카드 남발에 제동을 걸 움직임을 보이자 카드사들이 미리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도 마구잡이로 카드를 발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체 개인파산 신청자 가운데 신용카드로 인한 파산 신청자의 비중이 2000년 40%가량에서 지난해 70%쯤으로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신용카드가 아니라 신용불량자 양산 카드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리지도 모르는 일(서영경 YMCA 시민중계실 팀장)”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의 솜방망이 규제안=신용카드 부작용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정부는 지난달 카드발급 기준 강화를 골자로 하는 ‘여신전문금유업 감독규정’을 마련했다. 하지만 카드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개정안은 지금 빈껍데기만 남았다. 금감위는 애초 신분증 사본·소득증빙서류 등을 제출해야만 신용카드를 신규발급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반대, 이 방안은 백지화됐다. 금감위는 또 미성년자에 대한 카드발급 때 부모 등 법정대리인의 동의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내부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지나친 규제’라며 스스로 폐기했다. 이와 함께 개인부실의 주범인 현금서비스를 줄이기 위해 카드 결제·현금서비스 비율을 50대 50으로 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반대 여론에 밀려 이 역시 포기했다. 카드남발을 막겠다는 정부의 복안이 줄줄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된 셈이다.

◇카드, 그래도 써야한다=카드업계 관계자들은 신용카드가 신용불량자 양산의 주범이란 지적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A카드사의 한 관계자는 “신용사회에서 개인의 신용관리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라며 “개인의 무분별한 소비로 인한 피해까지 카드사에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신용카드 사용 확대로 소비가 활성화되고(내수진작) 세금이 더 걷히는 순기능도 있다”고 덧붙였다. 카드업계의 이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로 인한 신용불량자의 가파른 증가는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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