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한솔엠닷컴 사주조합, 때아닌 '돈벼락'
이동통신업체 KTF에 합병된 한솔엠닷컴 출신의 L과장은 요즘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2천만원 안팎의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로 지갑이 두둑해질 것을 생각하면 콧노래가 절로 난다. 런던중재법원(LCIA)이 지난 1월27일 옛 한솔엠닷컴 우리사주조합(이하 우리사주조합)이 고합과 쌍용건설을 상대로 낸 중재신청에서 ‘고합은 1백20억원을, 쌍용건설은 31억원을 우리사주조합에 배상해야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지난 2년 6개월간 진행된 국제재판이 모두 마무리돼 옛 한솔엠닷컴의 우리사주조합원 6백여명은 짭짤한 목돈을 만질 수 있게 됐다. 만일 1백50억원을 모두 받을 경우 우리사주조합원들은 1인당 평균 3천만원 안팎의 돈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소송비용, 로펌 성과보수(로펌은 법무법인 세종) 등의 각종 비용과 실제 배상금 지급을 위한 협의 과정에서 금액이 줄어들 것을 감안하면 1인당 평균 3천만원보다는 작은 금액을 받게 될 전망이다. 우리사주조합원들은 국제소송을 위해 1인당 3백만∼4백만원씩을 갹출, 20억원의 소송기금을 조성한 바 있다. 1인당 받는 금액은 각자 낸 소송비용 규모에 따라 안분 비례방식으로 결정된다. 이미 쌍용 측과 우리사주조합은 협상 내용에 대해 비공개를 조건으로 협의한 상태로 조만간 조합원들에게 배상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하지만 고합 측과는 여전히 협의 중인 상태다. 기업분할을 추진 중인 고합은 최근 대표이사 명의로 우리사주조합측에 ‘기업을 분할하더라도 분할된 회사가 연대해 배상금을 갚겠다’는 의사를 통보해 왔다. 하지만 우리사조합 측은 “법률적 효력을 검토해 본 결과, 분할된 회사가 갚을 의무는 없다”며 담보를 요구하며 회사 분할 무효 소송과 집행 판결 소송을 낸 상태다. 하지만 국제중재재판의 효력은 국내 대법원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고 있어 어떤 형식으로든 우리사주조합 측과 고합 측은 협상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소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당시 한솔PCS는 벨 캐나다사로부터 외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대주주들과 ‘주주간 계약서’를 체결했다. 이때 한솔 주식을 갖고 있던 고합과 쌍용건설도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 계약서에는 기존 주주가 보유 주식을 팔고자 할 때는 반드시 다른 기존 대주주들에게 먼저 매도 청약 기회를 부여하고 아무도 승낙하지 않을 때에만 제3자에게 팔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고합과 쌍용건설은 99년 5월 보유주식 각 2백10만주와 1백30만주를 팔겠다는 입장을 한솔PCS의 대주주인 한솔제지에 피력했다. 최종적으로 매도 의사를 밝힌 주식 중 1백50만주(고합)와 38만주(쌍용)가 한솔 우리사주조합에 배정됐고, 이 주식을 우리사주조합은 사겠다고 승낙했다. 그러나 장외시장에서 주식값이 폭등하자 고합 등은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고, 결국 이례적인 국제중재재판으로 비화됐던 것이다. 한편 고합과 쌍용건설과 같은 경우에 처해 있던 비락은 지난해 국제중재재판 후 우리사주조합 측과 협상을 벌여, 배상금을 지급한 바 있다. 삼성출판사·성지건설 등은 재판 없이 협의를 거쳐 매도 의사를 밝힌 주식을 전부 우리사주조합 측에 넘겨 주었다. 하지만 이번 재판에 승소한 우리사주조합원들은 대놓고 이 결과를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락과 고합 등이 협상 내용에 대해 비공개를 조건으로 배상금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법인이 아닌 우리사주조합이 법인을 상대로 국제재판 소송을 걸어 승소한 사례는 국내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 배상금 금액도 1백20억원·31억원으로 보기 드문 규모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결국 돈을 물어주게 된 고합과 쌍용건설 측에겐 아픈 결정이지만 우리사주조합원들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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