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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에 불만 제기…코헨 제일은행장

한국 정부에 불만 제기…코헨 제일은행장

지난 3월5일 오전 10시20분. 로버트 코헨 제일은행장이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기자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덥수룩한 수염 위로 미소를 지으며 일일이 기자들과 악수를 나눈 코헨 행장은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이날 회견은 코헨 행장이 직접 요청해 마련됐다. 최근의 무리한 풋백옵션(사후 손실 보상)을 요구한다는 보도를 보고 발끈해서 이를 바로잡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 은행 홍보담당자들은 “그래봐야 역효과만 난다”며 만류했지만 행장의 뜻을 꺾지 못했다. 질의응답까지 1시간가량 진행된 회견에서 코헨 행장 특유의 프랑스식 영어 발음은 여느 때와 달리 격앙돼 있었다. 특히 한국 언론이 ‘엉터리로(worngly)로, 정치적 목표를 갖고 공격한다’는 대목에서는 분노의 표정이 역력했다. “이러면 외국투자자들이 싫어한다”는 식의 은근한 협박도 섞였다. 다음날 각 신문에는 예금보험공사의 입장을 인용해 무리한 풋백옵션 요구를 지적하는 기사가 실렸지만 그는 “내 할말을 다 했으므로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코헨 행장의 이런 행동은 무척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모든 행동과 발언에 극도의 신중을 기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결정을 내리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강단이 있는 사람이라는 분석도 있다. 코헨 행장은 지난해 10월23일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호리에 행장이 전격 사퇴하면서 후임 행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이미 1년간 제일은행의 사외이사로 리스크관리위원장을 맡아왔지만 금융계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은 사람이라는 것 말고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1948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튀니지에서 태어나 파리의 도핀대에서 재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25년간 기업·국제금융 전문가로 일해왔고 97∼99년 리퍼블릭 내셔널 뱅크 오브 뉴욕의 부회장을 지냈다. 취임 직전에는 투자자문사인 조라넬 LLC의 대표이사와 제일은행 비상임 이사를 겸임했다. 호리에 전 행장이 일본의 소비자금융사에서 잔뼈가 굵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은행계의 엘리트 코스를 두루 거친 셈이다. 그래서 그의 임용을 두고 위축된 기업금융을 살리려는 의도라는 둥, 매각이라는 큰 딜을 성사시키기 위한 실무자라는 둥 이런저런 추측이 난무했다. 코헨 행장은 일하는 스타일도 호리에 전 행장과 상당히 다른 편이다. 특히 대주주와 관련된 일은 직원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고 혼자서 처리한다. 한 제일은행 관계자는 “심지어 임원들에게도 뉴브리지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아 합병설에 대해 은행 밖에서 듣고 오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또 형식이나 이벤트를 싫어하는 편이다. 호리에 전 행장은 전국 지점을 돌면서 직원들과 맥주파티를 가졌다. 간단한 파티가 아니라 상당한 준비와 자금이 필요한 이벤트를 연 것. 하지만 코헨 행장은 최근 마무리한 전국 지점 순회 방문에서 간담회만 가졌을 뿐 전혀 이런 행사는 없었다. 또 지점장들과 간담회를 할 때도 형식적인 연설이나 의견청취로 끝나지 않고 질문이 나오면 담당 임원을 세워 답변하게 하고, 본인도 직접 질문 공세를 퍼붓곤 해서 임원들이 곤혹스러울 정도다. 이와 함께 한국에서의 마케팅은 한국 사정을 가장 잘 아는 한국 사람이 담당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태생이지만 미국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온 경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코헨 행장은 술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 점 또한 폭탄주를 즐겨 마셨던 호리에 전 행장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대신 업무를 마치면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있는 집으로 달려가 가족들과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은행에서는 모든 일을 혼자서 결정하는 제왕이지만 부인의 말에는 꼼짝 못하는 ‘애처가’라고 주변 사람들은 전한다. 코헨 행장은 현재 기로에 서 있다. 뉴브리지 인수 후 계속 줄기만한 자산을 다시 불려나가야만 시점에 하나은행과의 합병설에 휘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는 “자산을 키우기 전까지 합병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합병은 은행장의 손을 떠나 대주주간 협의로 진행된다는 관측도 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자산을 40조원 수준으로 키워 성공한 CEO가 될지, 아니면 그야말로 합병 실무자로 판명날지는 좀더 지켜봐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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