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의 끝은 新관치?
| 위성복 조흥은행 이사회 회장 | | 김경림 前 외환은행장 | 조흥은행 판정승, 외환은행 판정패? 은행장 인사를 둘러싼 정부와 조흥·외환은행의 힘 겨루기 관전평이다. 정부를 상대로 조흥은 나름대로 잘 버텼지만 외환은 결국 백기를 든 셈이라는 평가에서다. 조흥은행의 경우 홍석주 은행장-위성복 이사회 의장 라인업으로 결론이 났다. 당초 위성복 의장의 연임 가능성이 컸던 만큼 얼핏 조흥측이 밀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조흥은행 행장추천위원회는 지난 3월5일 조선호텔에서 1차 공식 회의를 가졌다. 이날까지 위의장말고는 뽀족한 대안도, 정부 쪽에서 뚜렷한 요구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로선 올 상반기 5억 달러 규모의 DR(주식예탁증서)을 발행해 조흥은행을 민영화 시킬 계획이었다. 이를 무리 없이 밀고 나가려면 위의장을 연임시키는 게 낫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다만 거의 유일하게 금융감독위원회만 ‘연임 반대’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게 흐르던 분위기는 지난 3월8일 금감위의 청와대 업무 보고를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달라졌다(위성복 의장이 이미 2월 말 이사회 의장직을 제안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날 보고 때 금감위의 고위 관계자가 은행장 안건을 별도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흥은행 인사(이강륭·이완 부행장과 홍석주 상무)와 조흥은행 밖 인사(심훈 부산은행장과 박철 한은 부총재 등)로 나누어 보고했다는 것. 정부 쪽에서는 위의장이 공적 자금을 넣기 전에도 행장을 하다가 물러난 뒤 다시 맡아 임기 3년을 채웠으니 더 시키기 부담스러웠다. 남은 일이 많고 대과(大過)도 없지만 굳이 위의장 아니면 곤란하다는 법이 어디 있냐는 논리다. 결국 위의장은 3월11일 백기를 들었다. 위의장은 이날 “내가 연임하려고 노욕(老慾)을 부리고 있다는 오해가 있다”며 “39년 은행원 생활을 명예롭게 마감하고 싶어 사임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은행가에서는 그러나 다른 얘기가 나왔다. 위의장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일 욕심 많은 그가 오죽했으면 그런 말까지 했겠느냐며 정부측의 압박이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분석했다. 조흥은행 노조는 갑작스런 행장 퇴진 사태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노조는 정부가 특정 인사를 은행장에 앉히려는 사전 정지 작업이라며 반발했다. 예컨대 조흥은행의 경우 한동안 김상훈 前 국민은행장이 새 행장으로 유력하다는 루머가 돌았다. 금감원측에서 금융 기관장 인사 때 자기 몫도 챙기고 국민은행장 ‘경선’에서 탈락한 그를 배려했다는 것. 험악했던 기류는 3월12일 단 한순간에 잦아들었다. 뜻밖의 ‘카드’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홍석주 행장 후보-. 국내 첫 40대 ‘토종 은행장’의 탄생이었다. 조흥은행은 이날 행장추천위원회와 이사회를 열고 홍석주 상무를 새 행장 후보로 뽑았다. 홍 후보는 별다른 일이 없다면 3월29일 열릴 주주총회에서 행장에 오르게 된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홍석주 카드’로 정부와 위의장 모두 나름대로 명분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적어도 겉으론 ‘관치를 하지 않았다’는, 위의장은 ‘후배를 키우고 명예롭게 물러났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굳이 따지자면 위의장이 나름대로 ‘판정승’을 거뒀다는 평가다. 위의장 입장에서는 이번 인사가 내심 아쉬운 ‘한판’이었다. 은행 내부에서도 절대적으로 위의장의 연임을 바라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후보는 사실상 위의장이 키운 인물이다. 특히 위의장과 홍석주 행장 후보는 각별한 사이다. 전화 통화까지 노트에 기록하는 위의장은 지난해 이용호 게이트가 터져 조흥캐피탈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전 메모 노트를 홍후보와 같이 뒤졌다. 그만큼 신임이 두텁다. 그래서 심지어 위의장이 ‘섭정’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반면 ‘조흥은행 밖’에서 행장 후보를 고르려던 정부로선 뜻을 1백% 이루지 못했다. 더군다나 어찌됐건 ‘관치’ 흔적도 남았다. 행추위측에선 3월11일 저녁께 금감위에 행장 후보로 1순위 이강륭 부행장, 2순위 홍석주 상무, 3순위 양성룡 메릴린치 한국 지사장을 적어 보고했다. 금감위가 홍석주 상무를 낙점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다만 3월12일 오후 행추위의 대세가 갑자기 홍상무 쪽으로 기울었던 걸 보면 뭔가 교감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나름대로 경사 분위기인 조흥은행과 달리 외환은행은 침울한 모습이다. 외환은행은 조흥은행과 같은 날(3월12일) 이사회를 열었지만 사외이사 후보만 정하고 새 행장은 4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뽑기로 했다. 정부가 중간에, 그것도 갑작스레 달려드는 바람에 미처 새 행장 후보를 뽑지 못한 것. 물론 정부가 새 행장감을 고르지 못해 그런 건 아니었다. 자가발전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정부쪽에서는 정기홍 금감원 부원장을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또 다른 대주주인 독일 코메르츠방크측과 입을 맞추지 못해 3월29일 열릴 정기 주총에선 새 행장을 뽑지 못하게 됐다. 정기 주총에서 새 행장을 뽑으려면 늦어도 3월14일까지 공고를 내야 하는데 행추위 구성 등의 절차를 밟을 시간이 없었던 탓이다. 더 큰 문제는 임기가 1년 넘게 남은 행장을 갈아치려는 점이다. 위성복 조흥은행장의 경우 3월 말로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꼭 중도 퇴진만은 아니다. 반면 김경림 외환은행장의 경우는 다르다. 김행장은 워낙 현대 계열사에 시달린 탓에 가끔 “한은 시절이 좋았는데 너무 재미가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김행장은 임기가 끝나기 전에 물러날 생각은 아니었다. 김행장의 스케줄만 봐도 그렇다. 3월14일 중국 출장이 잡혀 있었고, 5월에는 경향신문 주최 마라톤 대회에도 나가기로 했었다. 이런 가운데 갑작스레 물러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정부와의 힘 겨루기에서 ‘판정패’를 당한 셈이다. 더구나 김행장의 사퇴로 외환은행은 1997년 말 외환위기 뒤 3명의 행장이 잇따라 중도 퇴진하는 불명예도 안게 됐다. 홍세표 前 행장은 금융당국의 충북은행 인수 요구를 거부하는 등 마찰을 빚다가 임기 1년 6개월 만인 99년 2월 퇴진했다. 이어 이갑현 前 행장도 경영 부진과 현대건설 처리 미진 등의 책임을 지고 2000년 4월 1년여 만에 물러났다. 정부쪽에선 “김행장은 무능 케이스로 코메르츠도 못마땅하게 여긴다”며 김행장의 퇴진 배경을 전했다. 만일 그렇더라도 정부로선 관치 흔적을 지우긴 어려운 상황이다. 정황도 그렇다. 정기홍 후보설은 재정경제부-금융감독원-한국은행 사이의 인사구도에서 나왔다는 관측이다. 금감원에서 조흥은행의 반발로 행장을 내려보내기가 어려워지자 외환쪽으로 방향을 바꿨다는 것. 대신 재경부는 한국은행 총재와 3명의 금통위위원 쪽에서 지분을 챙기고 한은쪽에 조흥은행 자리를 배려한다는 게 당초 시나리오였다. 새 한은 총재 후보로 재경부쪽인 박승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이, 외환은행장 후보로 정기홍 금감원 부원장이 거론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물론 정부 쪽에선 개입설을 극구 부인한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3월11일 “행추위에 모든 걸 맡겼다”고 밝혔다. 진념 부총리도 증권업계 간담회에서 “내가 재임하는 동안 관치는 없으며, 관치의 정의도 다시 내려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안충영 조흥은행 행추위 위원장도 “정부 개입은 없었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 게 뻔하다. 심지어 조흥 케이스를 보면 겉으론 내부 승진이라 관치의 흔적을 애써 지웠지만 이 또한 표리부동한 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조흥·외환 은행장의 사퇴 파문이 관치 논란으로 번지자 ‘홍석주 카드’를 뽑아 한쪽의 급한 불은 끈 것으로 보인다. 홍후보의 경우 당초 조흥은행장 후보로 그다지 거론되지 않았던 점과 관치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는 점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외환은행도 ‘깜짝 행장’을 내더라도 관치 논란은 여전할 것”이라며 “금융개혁의 끝이 이런 거냐”는 어느 시중은행 임원의 자조 섞인 말이 한국 금융계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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