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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시멘트 '부활' 의 노래

토종시멘트 '부활' 의 노래

성신양회 박찬 사장
“중환자실에 들어가 사망이 며칠 안 남았다라는 소리까지 듣다가 이젠 퇴원해서 밥 잘 먹고 있고, 내일은 1백미터 달리기 시합을 준비할 정도가 됐으니 꿈만 같죠.” 박찬(53) 성신양회 사장의 이 한마디는 지난 4년간 회사가 겪어온 부침(浮沈)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성신양회는 생산 캐퍼 기준 국내 2위, 매출액 기준으로는 랭킹 3위의 시멘트 업체다. 그러나 토종 브랜드 가운데선 국내 최대다. 지난해 국내 1위 업체인 쌍용양회의 최대 주주가 일본 태평양시멘트로 바뀐데다, 2위인 동양메이저도 프랑스 라파즈 그룹과 손잡게 되면서 빅3 가운데 유일하게 토종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것. 증권시장에서는 이익 및 재무구조 개선 선순환에 진입한 대표적인 ‘턴 어라운드(Turn-around) 종목’으로 꼽히기도 한다. 성신양회는 지난해 5천6백73억원의 매출에 2백67억원의 경상이익을 낸 데 이어 올해는 매출액 6천억원, 5백억원의 경상이익을 바라보고 있다. 특히, 영업이익률은 업계 최고 수준(지난해 기준 24%)을 자랑하고 있다. 이는 성신양회가 지닌 가장 큰 경쟁력으로 재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00년 2천억원에 달하는 누적적자로 인해 침몰 일보직전까지 갔던 상황과는 1백80도 바뀐 모습이다. 이 회사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97년. 당시 국내 시멘트 수요는 6천만톤에 달했다. 업계의 생산캐퍼는 5천8백만톤 수준이어서 부족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산자부는 업계에 증설을 권유할 정도였다. 업계 또한 설비 확장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겼다. 성신양회도 이 같은 판단 아래 4천억원의 거금을 들여 연산 3백톤 규모의 키른(석회석 용광로) 6호기를 건설했다.

퇴출위기 자력으로 극복 하지만 97년 말에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상황은 급변했다. 시멘트 수요가 4천만톤 수준으로 급감한 것. 완공시킨 키른 6호기를 돌리는 것은 물론 투자 회수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이자비용도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급기야는 98년 말엔 부채 규모가 1조2천억원으로 불어났다. 98년 이후 3년간 적자가 내리 이어졌다. 결국 채권은행단에선 퇴출까지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어쨌거나 성신양회는 이같은 위기를 오뚜기처럼 극복했다. 요즘은 한술 더 떠 무차입경영 실현 등을 통한 초우량 기업을 꿈꿀 정도로 회사 살림이 탄탄해졌다. 사실 IMF 이후 퇴출위기에 몰렸던 기업들은 한둘이 아니었고, 이를 잘 극복해 부활에 성공한 사례 역시 수없이 많지만, 성신양회의 회생 스토리는 남다르다. 퇴출 위기를 자력으로 극복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저나 직원들 모두가 법정관리나 화의를 거치지 않고 자력으로 회생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죠. 아마 법정관리나 화의 절차를 통해 이자를 안 물었으면 더 빨리 회생했을 겁니다. 99년 한해 이자만 1천5백억원이었으니까요. 이자를 하루도 안 거르고 꼬박꼬박 제 날짜에 냈어요. 지금 생각이지만 하마터면 자력으로 살기는커녕 죽을 뻔했죠.” 박찬 사장은, 결코 쉽지 않은 ‘자력 회생’을 선택한 것은 비록 적자를 내고는 있지만 캐시플로상으론 부도는 나지 않겠다는 확신이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금융기관이 문제였죠. 당시만 하더라도 3분의 2 정도는 부정적인 입장이었죠. 이런 가운데 산업은행이 살리자는 쪽으로 결정을 내려준 게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이 점은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박사장은 구조조정도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구조조정에 착수할 때 택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직원들을 솎아내는 것이지만 그는 이를 피했다. “사실 지난 90년 초반부터 첨단 설비를 중심으로 캐퍼를 40% 늘렸지만 인력확충이 크게 이뤄지지 않았어요. 이런 터라 새삼스럽게 인력감축의 필요성은 느끼지 않았어요. 자발적으로 그만 둔 사람이 많았죠. 물론 퇴직금을 못 받을까봐 나간 사람도 있었고요. 대신 급여는 업계 최고의 수준을 유지했어요. 상여금을 줄이긴 했어도 6백% 지급하고 학자금 지원도 계속했습니다. 정상화되면서 줄어든 상여금은 모두 소급해서 돌려줬고요.” 3년간의 혹독한 경영위기 속에서도 박사장은 종업원의 안정적인 고용과 처우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했고, 이는 노조의 전폭적인 신뢰와 협조로 이어졌다. “강제로 직원들을 내쫓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었지만, 노조의 협조가 없었다면 회생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노조측에서 3년간 임금협상을 회사에 위임하는 용기 있는 결단을 보여줬습니다. 단양공장에 모인 1천여명의 직원들에게 회사가 적자를 내고 있지만 반드시 다시 일어선다고 말하고 건의할 게 있느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직원들은 수입이 작아지는 것은 참을 테니 회사를 살리는데 전력해 달라며 오히려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더군요. 이때 ‘아! 우리 회사는 살아나겠구나’란 자신감이 생겼죠.”

노조가 부활의 1등 공신 박사장은 “노동조합이 회사 부활의 1등 공신 역할을 했다”고 주저없이 말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서글픈 일도 있었다고 회상한다. “99년 당시 제천시내 음식점에서는 성신양회 작업복을 입은 사람한테는 외상을 주지 않았습니다. 진짜 가슴이 쓰리더군요. 그러던 게 작년부터는 다시 외상 줘도 된다로 바뀌었고, 올해는 얼마든지 먹어라 할 정도가 됐습니다.” 성신양회의 원만한 노사관계는 박사장 특유의 캐릭터와 이 회사 기업문화가 낳은 결과물이다. “부하 직원들과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대화도 자주 갖고 의견수렴을 하는 털털한 스타일이죠. 그래서 직원들이 잘 따라요. 아마 그런 친화력과 원만한 대인관계가 회사가 어려울 때 금융기관의 도움을 받아내는 데도 일조했다고 봅니다.” 회사내 한 중견간부의 말이다. 이때 한 직원이 “우리 사장 별명이 뭔 줄 아세요”하면서 ‘고슴도치’란 답까지 알려줬다. 왜냐고 묻자 그는 “아, 자기 새끼 끔찍하게 사랑하는 게 고슴도치 아닙니까”라며 웃는다. 인터뷰를 하면서 혹시 별명이 뭔지 아냐고 물어봤지만 박사장은 자신에게 닉네임이 붙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런 박사장은 ‘실력’과 ‘의리’를 가장 중시한다. “직장이든 어떤 조직이든 상사나 부하직원들에게 잘보여 승진하겠다는 사고방식으로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자기가 맡은 분야에 전문적인 능력이 없으면 도태되는 것 아닙니까.” 실제로 박사장이 몸소 실천하는 것은 바로 ‘맡은 일만큼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해 회사에 이익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첨단시대에 의리를 강조하면 뒤떨어진 사고방식 같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봐요. 아무리 과학과 경영기술이 진보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이게 무너지면 되는 게 없어요.” 그는 상사들에게는 간도 빼 줄 것같이 행동하면서 뒤돌아서서는 욕하고 부하직원에게는 쌀쌀맞게 대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 성신양회는 요즘 신입사원을 뽑고 있다. 최종 합격자 선정과정만 남아 있는데 박사장은 각 부서 담당자들에게 전형에 통과한 응시자들과 함께 술을 마셔보라고 주문했다. ‘인간 됨됨이’가 되어 있는지, 즉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인지 살펴보라는 뜻에서 이런 주문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박사장이 자랑으로 삼고 있는 것은 대리점이다. “30년 이상 인연을 맺고 있는 데도 많고, 대를 걸쳐 운영하는 곳도 많아요. 모두들 회사가 어려울 때 자기 발로 나간 곳은 없어요. 이게 바로 회사의 색깔입니다.” 성신양회의 자랑거리는 또 있다. 바로 학연·지연·혈연이란 게 없다는 점이다. 당연히 낙하산 인사도 없다. 직원들도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는 회사라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사장도 그 ‘누구나’에 속한 케이스이다. 지난 78년 단양공장의 평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입사 22년 만인 지난 2000년 3월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올랐다. 박사장은 “실제로 역대 사장들 모두가 말단 직원에서부터 시작해 사장자리에 올랐다”며 “이런 회사의 색깔이 회생의 원동력인 동시에 경쟁력”이라고 덧붙였다.

역대사장들 모두 말단직원 출신 성신양회가 정상화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박사장의 말대로 ‘노사화합’이었지만, 이것으로 만사가 풀린 것은 아니었다. 알토란 같은 회사 재산을 팔 수밖에 없었다. 박사장은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절묘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쳤다. 주변에서 팔자고 주장하던 키른6호기는 끝까지 팔지 않았다. 대신 시멘트를 제외한 자산과 부동산은 과감히 처분했다. “처참했죠. 대부분 시가나 장부가격의 3분의 1 가격으로 제시하더군요. 잘해봐야 절반이고 심지어는 10∼20% 가격으로 협상을 시작해요. 특히 코리아정공 등 계열사를 매각할 때엔 인수자측에서 계열사를 사주면 연쇄부도를 막아주는 게 되니까 오히려 돈을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6개월 동안 힘겨운 줄다리기 끝에 간신히 말 그대로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아낸 적도 있고요. 울산공장도 시가의 절반 가격에 팔아야 했고, 강남사옥도 장부가의 60%에 팔아야 했어요. 우리만 그랬던 게 아니라 그 당시 위기에 처했던 모든 기업들이 다 그런 식이었죠.” 성신양회는 이 같은 계열사와 자산을 매각한 자금으로 차입금을 상환, 1조원을 넘었던 차입금 규모를 지난해 말엔 6천3백억원으로 줄였다. 올해엔 5천억원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부채비율은 1백80%로 낮아지게 된다. 성신양회는 지난해 말 신세계에 성북동 부지를 매각하면서 사실상 자구계획을 일단락 짓고 내실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박사장은 “회사가 지난해부터 수익구조가 급격해 개선돼 영업이익만으로도 차입금을 상환시켜 나가는 선순환 구조로 진입했지만 올해까지 한번 더 내실과 체력을 다져 내년에는 달리기 대회서 입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또 현재의 흑자전환에 만족하지 않고 향후 초우량기업으로 발돋움해 주주 및 직원들과 풍성한 과실을 나누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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