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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털자”…때이른 에어컨 가격전쟁

“재고털자”…때이른 에어컨 가격전쟁

베이징(北京)에서는 벌써 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뜨거운 날이 계속되고 있다. 대륙성 기후로 여름이 워낙 찌기 때문에 이곳에서 에어컨은 필수품이다. 웬만한 아파트나 건물에는 창문마다 촘촘히 에어컨이 달려 있다. 그 정도로 많이 보급돼 있다. 이 때문에 이맘때쯤이면 에어컨 가격동향이 단연 언론의 최고 관심사다. 지난해에는 한여름까지도 가격인하가 계속되면서 7∼8월 성수기에 에어컨 값이 더 떨어지는 기현상으로 소비자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2천4백 위안(元)짜리 개별 에어컨 하나가 어떤 것은 1천6백 위안까지 무려 30% 이상 떨어진 경우가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올해도 이런 현상을 기대하며 에어컨 구매를 오히려 늦추고 기다리고 있다. 자연히 성수기는 다가오는데 도무지 에어컨이 팔리지 않는다고 업체들은 난리다. 얼마 전 궈메이(國美)의 본사가 있는 베이징 차우양취(朝陽區)의 펑룬(鵬潤)빌딩에서 극비회의가 열렸다. 궈메이는 중국의 대표적인 가전제품 양판점으로 유통업계의 대표선수다. 이날 의제는 올해 에어컨 가격전쟁을 조기에 발발시킨다는 것이었다. 이 보도가 나가자마자 다음날부터 궈메이는 에어컨 할인판매를 시작했다. 중국은 나라가 워낙 넓다 보니 무려 3백개 이상의 에어컨 메이커가 있다. 지난해 중국의 에어컨 생산량은 1천5백만∼2천만대 였지만, 실판매량은 겨우 1천만∼1천5백만대로 5백만대 이상의 재고가 남았다. 이런 재고 처분을 위해서도 대대적인 가격인하는 불가피한 실정이다. 시장에서 하이얼(海兒)·메이디(美的)·거리(格力) 등 ‘빅3’의 판매량은 전체의 40%선이 고작이다. 하이얼은 6년 연속 판매량 1위를 기록했으면서도 시장점유율은 겨우 20% 정도다. 한마디로 에어컨 업계를 좌우할 ‘초대형 기업’이 아직 없는 도토리 키재기로 보면 된다. 업계에서는 구조조정으로 2∼3년 내에 제조업체가 지금의 10분의 1인 30개사 정도로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자연히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시장점유율이 곧 생존의 바로미터로 간주돼 당장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밀어내기식 판매로 버티겠다는 게 대부분 업체의 전략이다. 요즘 에어컨 값이 얼마나 싸졌는가는 LG·내쇼날·히타치 등 중국 내에서 생산되는 외국 브랜드 제품이 중국 브랜드 제품과 거의 가격차가 없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예컨대 LG 0752CT형은 2천4백40위안 짜리가 1천6백99위안이란 특가로 팔리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올해부터 이런 에어컨 가격인하경쟁을 다름아닌 궈메이가 주도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예년 같으면 4월 하순은 돼야 비로소 에어컨 판매의 성수기로 들어가던 것이 당연시됐지만, 올해는 순전히 궈메이의 의도에 따라 무려 한 달 이상 앞당겨 판매경쟁이 불붙었다. 궈메이가 ‘조기점화’를 통해 노린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궈메이가 치밀한 분석 뒤 ‘3월’을 선택했다고 한다. 우선 당장 다른 가전양판점과의 경쟁에서 기선을 제압하고 자기들이 에어컨값을 주도한다는 것을 내외에 과시하겠다는 거다. 이것은 다른 가전제품에까지도 궈메이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비방이 될 수 있다. 궈메이는 얼마 전 선양(沈陽)에서 LG의 프로젝션TV를 놓고 현지 백화점들과 한판싸움을 벌일 정도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회사다. 전국적으로 거의 대부분 도시에 대형매장을 갖고 있어 시장지배력이 상당하다. 이 때문에 이 회사에서 결정한 가격이 제조업체들에게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져 사실상의 판매가격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미국 등 선진경제에서는 이미 월마트 같은 초대형 유통기업이 시장판매가를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유통기업 눈에 거슬리면 판매에 막대한 타격을 입기 때문에 제조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 궈메이에 납품되는 에어컨 값도 신문에 보도되면서 거의 시장기준가격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에어컨전쟁 가열 조짐을 보면서 중국 가전시장에서도 마침내 유통기업이 제조업체를 지배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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