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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實기업 살리는 민간 전문병원 급성장

不實기업 살리는 민간 전문병원 급성장

일러스트 배진희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다 죽어가는 기업의 각종 질병을 고쳐 기업 살리고, 돈도 버는 부실기업 회생용 민간 전문병원들이 갈수록 인기다. 구조조정 전문회사인 이른바 CRC(CORPORATE RESTRUCTERING COMPANY)회사가 그들이다. 한국에 병원 간판을 내건지는 올해로 만 3년째-. 한때 첨단이다 싶어서 인지 여기저기서 새 간판을 내건 탓에 ‘부실병원’들까지 수두룩하게 생겨날 정도지만 휠체어 버리고 번듯하게 걸어나오는 환자들도 늘어가는 추세다. 지난 6월 초 현재 공식 등록된 이들 재생전문회사인 CRC회사는 101개사. 지난 99말 15개사에 불과했던 것이 3년 만에 그 수가 무려 6배 정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표참조> . 이들 병원들은 모든 환자들을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암말기 환자를 고치는 화타도 아니다. 모자라는 피 수혈하고 수술하고 살빼고 정성껏 보살피면 살아날 수 있는 환자만 골라 치료한다. 고칠 수 있는 환자만 골라내는 탁월한 안목과 정성스런 치료 관리가 이들의 주특기다. 이들이 눈을 밝히고 ‘환자 사냥’을 하는 곳은 주로 법원(민사 합의 50부)이나 은행의 부실기업 창고. 오죽하면 이곳 막장까지 왔겠냐 싶겠지만 이들 전문병원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흠집난 ‘숨은 진주’가 ‘기업 쓰레기’ 도처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일들은 기업에 돈 빌려 준 은행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외국에선 투자은행들이 이런 일들을 도맡아 한다. 모건스탠리나 골드먼삭스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업부실의 징후가 나면 앞뒤 재지 않고 빌려준 돈 떼일까 회수부터 신경 쓴다. 병이 난 환자의 목을 더 죄는 꼴이다. 결국 그 기업은 죽고, 은행은 돈 떼이고-. 이것이 한국의 은행과 기업간의 되풀이해 온 관계다. 부실기업에 대해 신규 자금 지원하는 은행을 본적 있나. 답은 없다다. 물론 예외는 있다. 청와대 고위층의 전화나 거액의 돈봉투가 오가는 뒷거래. 또는 워낙 덩치가 커 국민 경제에 영향이 큰 대마들은 은행 금고가 거덜날까봐 죽이지 않고 신규 자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이는 극소수의 VIP 환자들의 경우다. 나머지 일반 환자들은 일단 부실딱지나 징후가 보이면 영락없다. 여기서 부실딱지 떼고 기사회생하기란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부실기업을 살려 빌려준 돈 회수하고, 그 기업에 돈 더 빌려 주고,그렇게해서 기업고객을 확보하는 일에는별 관심이 없다는 듯한 표정이다. 입만 열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위아래가 외치지만 실제 현장에선 정작 말뿐이다. 물론 은행도 기업부실채권이 생기면 나름대로 애는 쓴다. 돈 받을 요량으로 구조조정하라고 닥달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소극적이다. 기업병을 고치기는 커녕 악화시키기 일쑤다. 책임질 사람도 없고, 전문인력도 없고,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은행은 부실기업 입장에선 방관자다. 어떤 의미에선 저승사자일 뿐이다. “은행에서 부실기업에 신규 자금 지원을 기대하기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금고에 아무리 돈을 많이 쌓아도 어느 누가 책임지고 옥석을 가려 자금을 더 넣겠는가. 부실 책임 회피에 바쁜 마당에….” 한 은행 간부는 앞으로 얼마나 달라질지는 몰라도 현재 은행 시스템이나 분위기로 봐선 부실기업 회생을 은행이 잘 할 수 있을 것이란 것은 기대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쌈지돈도 별로 없고, 덩치도 작은 민간 전문병원들이 돈 많고 덩치 큰 은행과는 달리 왜 이일을 잘할 수 있나.변변한 투자전문은행도 없지만 우선 은행과는 환자 접대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전문회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기업을 살려야만 자신도 돈을 번다. 그래야 또 소문이 나서 새 기업환자가 들어온다. 한두명이 맡는 둥 마는 둥 서류만 들추는 은행과는 달리 나름대로 각 파트의 전문가들이 많게는 15명까지 365일 들러붙는다. 심지어 전문경영인까지도 '재활도우미'로 영입한다. 종기가 악성인지 양성인지를 그저 청진기 하나로 진단하는 은행과는 달리 진단이 세밀하고, 처방이 종합적인 셈이다.한마디로 자세가 다르다. 이들이 손대는 환자의 덩치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에는 소규모 기업만 치료했지만 지금은 대기업도 손을 댄다. “최근엔 기업회생용 투자 금액이 1천억원대로 커졌다. 이 정도면 회사 매출 규모는 1조원대가 족히 된다” KTB 네트워크의 권오훈 구조조정 팀장은 “ 종전에는 소규모 부실기업밖엔 손을 대기 힘들었지만 이젠 어느 정도 큰 대기업의 회생도 가능하다” 고 말했다. 물론 수혈할 있는 피(자금)는 은행보다 턱없이 적지만 여기에 돈 대는 일반투자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 이젠 제법 덩치 큰 환자의 수술도 맡아 볼 정도로 일부 병원의 규모가 커진 탓이다. 부실기업 장사 3년째인 이들 병원도 초창기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부실로 생사가 오늘 내일인 판에 웬 사기꾼이냐”는 소리도 무수히 들었다는 후문이다. “회생 가능한 부실기업주를 찾아가 새로 돈 지원하고, 은행빚 탕감 받고 불필요한 자산매각하고 나면 근사한 회사된다”고 설득하면 “왜 남의 회사빚을 탕감하느니 마느니 하느냐”부터 “ 그렇게 되면 내 가치는 없어지는 것 아니냐”까지 온갖 소리를 들었다. 심지어 “회사 사람 모두 쫒아내려는 것 아니냐”는 색안경 낀 경영진들도 적지 않았다는 것. 흔들리는 기업엔 이해당사자가 많은 법이다. 별탈 없이 잘 돌아갈 때는 보이지도 않던 사람들이 회사가 힘들어지면 득달같이 나타난다. 은행빚·회사채 등 금융채권자들은 물론이고, 영압상 채권자들도 한둘이 아니다. 법정관리나 화의 등에 있는 기업들은 더 늘어난다. 환자 치유 전에 이들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는 일이 더 크다. 법정관리 중에 있는 부실기업 명단은 이들 병원의 단골 사냥터. 찾아 보면 괜찮은 회사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병원의 ‘환자 사냥’엔 판사들이 최대 적이다. 철강회사인 모 회사의 일이다. 법정관리 중인 이 회사는 환자 유치 1호로 떠올랐다. 이리저리 환자 상태를 따져 보니 1천억원만 신규 지원하면 부채는 제로가 될 회사로 판단했다. 주거래은행 등에선 부실회사지만, CRC회사 입장에선 우수고객이 될만 했다는 판단이 섰다. 신규 자금지원 예상금액 1천억원을 들이면 2백억원 정도는 그 회사 자산을 담보로 추가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상태. 나머지 신규 자금도 회사채 발행 등으로 상당 부분 조달 가능한 상황. 이리저리 따져 보니 꼭 필요한 신규 자금 1천억원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도 회사를 살릴 수 있었다는 판단이 섰다. 채무 탕감받고 5~6년 후면 회사 살려내고, 투자수익도 상당히 날 것이란 계산이었다. 그러나 칼자루를 쥔 법원측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유는 부채를 갚는 자금 1천억원을 몽땅 네 회사 돈으로 하라는 게 법원의 주문. 조그만 민간병원 금고 크기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주문. 이 병원은 간단한 계산도 용납치 않는 법원의 옹고집과 무지에 손 들고 말았다는 후문이다. 모 구조조정회사 임원은 “판사들은 재무적으로나 사업적으론 귀머거리나 마찬가지다. 법정관리 중인 부실기업을 우리 같은 민간 CRC회사들이 회생시키는 데는 법원의 이해와 전향적인 자세 변화가 무엇보다도 아쉽다”고 말했다. 법정관리인들도 골칫거리. 부실기업을 회생시키려면 히딩크 같은 우수한 외부 CEO 영입이 필수적이지만 법정관리인은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길까봐 적극적인 기업회생에 결사반대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10이면 9는 비슷하다는 게 이들 구조조정 시장에서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렇게 힘도 들고 품도 들지만 이 시장은 향후 유망시장이다. 이쪽 시장에 신규 자금 유입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99년 처음으로 문을 연 기업구조조정 투자조합은 3개. 2천4백53억원 규모. 이러던 것이 매년 꾸준히 규모가 커져 지난달 말 68개 조합, 8천8백15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이후 증가세는 더욱 커졌다. 지난해 1분기의 경우 4개 조합, 2분기와 3분기 각각 8개 조합이 새로 생겼지만 4분기에는 19개나 결성됐다. 올해도 이같은 증가세는 이어져 지난 1분기에만 16개가 결성됐으며 지난달 말까지 11개의 조합이 추가 결성됐다. 아울러 조합투자를 포함한 CRC의 구조조정 투자액(누계 기준)도 지난해 말 2조7천4백1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0년 말 1조7백80억원보다 154.2%나 급증한 수치다. CRC의 투자액은 지난해 말 2조5백11억원으로 210.9%, 조합의 투자액은 6천9백01억원으로 64.9% 각각 늘어났다. 방관자였던 시중은행들도 새로 이쪽 장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심지어 국책은행이던 산업은행도 올 하반기부터는 관련법을 고쳐서라도 이 시장에 뛰어들 태세다. 한국자산관리공사(KEMCO)도 조만간 민간 부실회생병원을 차릴 준비에 들어갔다. 1백개 가까운 민간 CRC회사들도 이제는 옥석이 가려지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부실기업 회생용 민간병원은 대형 병원들간의 전쟁터로 점차 바뀌어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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